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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윤성 Oct 09. 2022

버릴용기

각자가 각자를 애도하는 방법에 관하여

곽지해수욕장

그 때의 악몽같던 겨울바다를 굳이 회상하지 않더라도, 매일같이 밀려드는 괴로움과 그리움은 결국 삶의 숙제가 되어버렸다.


술과 섹스로는 결코 해결되지 않는 원초적인 사랑에 대한 갈망과 관계에 대한 욕구는 사람을 지치게한다.


찬란했던 과거에 묶여서 나아가지 못하거나, 오지 않은 미래를 당겨서 현실에서 소모하는 것 어느 것 하나 바람직하다 할 수 없지만, 고통과 그리움같은 질병에 가까운 것들을 견디다 보면 중독은 필수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내가 하는 행동과 결정, 그리고 사고의 흐름, 나를 이끄는 자극의 정체, 주로 알게 되는 진실과 그것들을 이끄는 주체들과의 유대관계는 모두 연결되어있다. 내가 믿고싶은대로, 생각하고 싶은대로 가는 것. 알면서도 부정하고 싶은 그 실체가 바로 그것이지.


#1. 내 스승이자 멘토인 김태윤 선생을 하늘나라로 보낸지 2년.

푸른 하늘아래 그네에서 어떤 생각을 하면서 그 영겁과 같은 고통의 시간을 보냈을지, 죽음에 대한 공포심은 어땠을지 생각하노라면 가슴에 성게 한 마리가 굴러다니면서 심장을 찌르는 것 같다. 그래도 그 분의 고통과 공포에 비하면 산불앞의 폭죽놀이일 뿐이지.


#2. 목숨바쳐 일하던 IBM 이라는 일터에서 개팽겨쳐지듯 나오게 된 것도 나의 실수.

좀 더 의연했다면 달라졌을까?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그저 회사였을까? 사장까지 하라던 주변 사람들의 개소리를 믿어야 했을까? 아무도 없는 지금에서 생각해보면 역시 회사생활은 나 만큼 엉망으로 한 사람도 없었나보다. 


#3. IBM이라는 가면을 쓰고 진심이라는 합리화로 만났던 '취업컨설팅'의 실체

큰 회사에 다니다보니 착각에 빠지고, 나의 존재를 그림자로 착각하는 현상

6년 동안 착각에 빠진 것은 '바보'다. 합리화를 배격하고 곧 들이닥칠 단단하고 차가운 진실은 나에게 묻는다. 어떤 잘못을 했고

어떤 호도를 했고

어떤 잘못된 희망을 줬고

공부는 얼마나 못했고

경력을 얼마나 짧았고

역시 모든 것은 이유가 있다. 사람에게 지적할 일이 아닌 것.

자연의 섭리다.


유서를 쓴다.

꼭 의도한 죽음이 아니더라도, 한 번 죽음을 불러본다. 나에게 많은 것을 준 세상이지만 그래도 한 번 불러본다. 


우울증이다. 

먹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만나고 싶은 사람도, 가고 싶은 곳도

없다.

연락을 기다리는 것도, 다시 주목받는 것도, 삶에 대해 생각하는 것도 

지쳤다.

과거를 파먹는 것, 미래를 불러오는 것, 현재를 부정하는 것도

화가 난다.


나와 함께 했던 사람들은 진심이었으리라.

그리고 나는 그것을 평생처럼 믿고 혼자 바보같이 몇 년을 지내왔노라.


버리는 것은 어렵지만 버려야 하고

버리지 않으면 내가 버려지고

버릴 때가 왔을 때 버린다는 생각은 버리고

버리는 것은 나의 습관이며

버려지는 것도 과거가 있기 때문임을 알며

버리더라도 시간을 가져야 하고


아무도 나에 대해 기억 못할거라는 것


연습을 하자.

줄을 자르고 의연해 지는 것

연을 끝맺고 감정을 놓는 것

너를 보내고 사랑을 접는 것

나를 죽이고 자아를 찾는 것

피를 보면서 온기를 감는 것

우린 결국엔 안된다는 것


나에게 지금 필요한

가장 중요한


태도

그리고 의도.

아무도 모르게.


Br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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