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우리 Aug 23. 2023

진정

주제 이래도 되냐?

"안돼"

단호한 결론이었다. 물론 질문의 형식을 갖춘 문장을 건넸지만 진짜로 '묻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주장에 당위성을 얹기 위한 동조가 필요했던 것이었을 뿐. 확신이 서지 않는 선택은 어쩌면 그 순간 가장 필요치 않은 '불안'이라는 옵션을 데리고 나타났다. 불안이라는 불안요소를 해소하기 위해 미약한 발버둥을 쳐봤지만 강한 반작용으로 들이쳤다.


심장이 울린다.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는 그것이 갑작스레 의식된다면 무언가 템포의 변화가 생겼을 때이다. 멈춰선 안되지만 너무 빨라져도 곤란하다. 평온한 일상에서 계산되지 않은 변수가 등장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것이 일으키는 파동은 불규칙하며 고저가 크다. 심장에서 시작된 것이 다른 신체기관으로 이어진다. 뇌는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대안을 찾으려 애쓴다. 통제가능한 오감은 익숙한 것들로 대체하려 하고, 변수의 대한 생각을 배제한다. 심장이 조금씩 평상시 박자를 찾아가면, 박동이 의식되지 않는 상태로 돌아간다.



하루와 일주일, 한 달이 계속 이어진다. 매 순간이 달랐지만 큰 차이는 없이 일상이라는 단어로 가볍게 품어진다. 어느 정도의 차이까지 품어지는지는 마땅한 기준이 없다. 최소한 의식하지 않던 것이 계속 의식되지 않는다면.


기상천외한 사건들이 매일 보도된다. 유행처럼 번진 칼부림들이 하루가 다르게 일어나고, 나의 상식을 벗어난 사람들이 참신한 방식으로 문제를 일으킨다. 그러나 그것들이 실제로 나의 일상으로 침범하지 않는다면, 그저 일상적인 뉴스 내용으로 치부될 뿐이다. 그러한 것들에 나를 크게 할애하지 않는다. 생각의 어느 한구석에서 일종의 흥미로서 남겨지는 정도가 될 순 있겠지만, 나의 세상의 범주에 들어오지 않기에 거기까지다. 


악역에게 서사를 주지 않는다는 어느 영화감독의 말이 떠올랐다. 관객들이 악역에게 공감하는 부분이 생긴다면 주인공과 악역의 대결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천인공노할 역을 맡겨둔 캐릭터에게 알고 보니 안타까운 사정이 있었다는 동정이 개입된다면, 주인공이 악역을 물리쳐도 개운하지 못할 것 아닌가. 그래도 난 그 서사가 궁금하긴 하다. 원인 없는 결과로만 존재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최근엔 두통을 느낀 적이 거의 없다. 항상 챙겨 다니던 두통약이 떨어진 지 이주가 지났지만 아직 약국에 들르지 않았다. 몰두하지 않고 부산스럽지도 않다. 나름의 균형을 맞춘 채로 우연이 배제된 안정적인 상황을 유지 중인 것이다. 얼굴 근육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이 표정의 변화조차 거의 없었나 보다. 다행스럽다.


손가락의 움직임이 어색하고 옆구리에 물린 모기자국이 간지럽다. 이마에서 오른쪽 눈으로 흐르는 땀은 유달리 느리다. 버스의 경적소리가 살짝 찢어져있고 입에서 새어 나온 담배연기가 니코틴과 타르의 냄새를 일깨워준다. 태양의 존재감이 유달리 강해 눈살이 약간 찌푸려졌다. 우연을 접하기엔 너무나 적당하지 않았다. 심장이 뛴다. 원래도 뛰고 있었겠지만 존재감이 새롭게 느껴지는 것이 위험하다. 지어지려는 미소와 반갑게 올라가려는 손에게 정지신호를 보낸다. 기대감을 찾는 뇌에게 단호한 처방을 내린다. 진정하라며 되뇌이는 나의 혼잣말에 진정 그럴 수 있을까 라며 되묻는다.



작가의 이전글 일단은 독후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