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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우리 Aug 15. 2023

일단은 독후감

주제 혼자서 종이우산을 쓰고 가다

'혼자서 종이우산을 쓰고 가다' 제목이 맘에 들어 고른 책이었다. 집고 나서 작가를 보니 익숙한 이름이 적혀있었다. 에쿠니 가오리. 일본의 3대 여류 작가로 환갑이 가까운 나이임에도 아직도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대표작으론 '도쿄타워'나 '냉정과 열정사이'가 꼽히지만, 읽어본 적은 없다. 아, '도쿄타워'는 읽어봤었다. 그녀의 작품이 아닌 릴리 프랭키라는 다른 작가가 쓴 동명의 작품이었지만. 에쿠니 가오리 라는 작가를 좋아함에도 대표작을 딱히 안 찾아본 것은 나의 성향이 드러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인도를 2번에 걸쳐 9개월이나 머물다 왔음에도 '타지마할'을 사진으로만 봤을 정도이니 말이다. 좋아하는 작가라 해도 그 작가의 작품을 일부러 찾아보진 않는다. 그저 우연히 제목이 맘에 들어 집은 책이 그녀의 작품인 경우가 많았을 뿐이다. 대체로 그녀의 작품 제목들은 특별하지 않은 일상적인 단어들을 사용하지만, 매력적인 배치로 이루어져 강한 인력이 생긴다.


이야기는 도입부부터 흥미로웠다. 섣달 그믐날 호텔에 모인 세명의 노인들. 과거를 회상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 뒤, 호텔방에서 엽총으로 동반자살한다. 처음부터 짙은 물음표를 띄워두고 시작하지만, 구부러진 물음표가 느낌표로 펴져가는 추리물은 아니다. 노인들의 엽총 동반자살이라는 자극적인 키워드는 당연하게 뉴스에서 다뤄졌고, 뉴스 속 주인공이 자신의 가족이며, 친구이고, 지인이었던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 당연하게 받아들여지지 않기에 왜?라는 질문은 계속 그들 곁에 남아있지만, 이야기는 왜? 를 크게 신경 쓰지 다. 


에쿠니 가오리를 처음 접한 것은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이라는 책 덕분이다. 한국의 '공지영' 작가와 일본의 '츠지 히토나리'라는 작가가 쓴 의 이야기. 공지영은 한국여자서, 츠지 히토나리는 일본남자로서 써 내려간 하나의 이야기이자 두 개의 시선이 담긴 작품이다. 아는 사람들은 눈치챘겠지만 츠지 히토나리는 전에 이것과 아주 비슷한 포맷으로 작품을 집필한 적이 있었는데, 그 작 바로 '냉정과 열정사이'라는 히트작이다. 그리고 그때의 여자 쪽 이야기바로 에쿠니 가오리 였다. 일본어를 잘 모르던 시절임에도 이름이 확 꽂혀서 기억에 남아있었다. 작품 한편도 읽어본 적 없었지만, 작가의 이름 먼저 확실하각인되었다.


일본의 문학작품이나 영화들을 보다 보면 표현하기 힘든 오묘한 감성이 있다. 무언가 벌어질 것 같고 감정이 폭발할 것 같지만 그냥 흘러간다. 그렇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 라고는 할 수 없. 그 미묘한 경계선이 계속 끌린다. 새벽과 아침을 정확히 구분 지을 수 없는 시간 같고, 밀물과 썰물이 교차하는 해안가의 해수면 같기도 하다.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것 같기도 하고 물에 술 탄 듯, 술에 물 탄 듯 같기도 하다. 혼네(本音)와 다테마에(建前)로 구분 지어진다는 일본인들의 가치관과 연결 지어져서 그런 걸까. 정제 되어진 드러난 표현들 사이에서 느껴지는 감춰둔 본심이 섞인 것. 내가 매력을 느끼는 부분은 그런 모순들과 괴리감. 그러한 감정선을 그녀의 작품에선 마음껏 즐길 수 있다.


가끔 카페에서 옆자리 손님들의 대화가 들릴 때가 있다. 대체론 신경 끄고 내 할 일을 하지만, 가끔은 굉장한 흥미를 유발시킬 때도 있다. 그럴때면 나의 뇌는 여유가 남는 모든 리소스를 옆테이블로 옮겨서 그들의 대화를 즐긴다. 그들의 일행이 아니기에 어쩔 수 없이 백 퍼센트 참여는 불가능하지만, 나름대로 쏠쏠한 재미가 있다. 그러다 이야기의 흥미가 떨어지면 다시 나는 내 할 일로 돌아간다. 내가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을 읽을 때도 종종 느끼는 상황이다. 그녀의 작품은 내게 미칠듯한 몰입감을 주진 않는다. 순간순간 그러한 장면들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잠시일 뿐, 전체적으론 그냥 옆자리 손님들의 대화처럼 그냥 흘러간다. 어떤 책들은 첫 장을 여는 순간, 넌 이 이야기의 끝을 봐야 한다며 압박을 준다. 장거리 기차에 떠밀려 올라타진 느낌이다. 그런 책들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마을버스처럼 내키는 대로 오르락내리락 할 수 있는 그녀의 책이 나는 조금 더 좋다.


 이 책을 읽고 어땠냐 묻는다면 '재밌었다'라는 대답 밖에 할 말이 없다. 그 한 단어에는 정말 한 가지 감정만 담았을 수도 있고, 모든 것이 담겨 있을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 설명하기 위해 읽은 것이 아니었기에, 내가 할 수 있는 말도 딱 그 정도이다. 굳이 보태자면 마지막 방법에 엽총자살이라는 옵션이 하나 더 추가되었다는 것일까. 옆자리 손님들의 이야기가 아무리 재미있었어도, 난 그들에게 다가가진 않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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