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브(Drive, 2011)
낮에는 영화 스턴트 촬영, 카센터 직원이지만 밤에는 범죄자들의 도주를 도와주는 한 드라이버(라이언 고슬링)가 있습니다. 우연히 이웃인 아이린(캐리 멀리건)을 마트에서 도와주는 것을 계기로 서로에 대한 감정을 쌓아가고 있었습니다. 이후 아이린의 남편 스탠더드(오스카 아이작)가 감옥에서 출소하게 되고, 빚을 갚아야 하는 그를 위해 드라이버는 도와주기로 합니다. 하지만 이 선택은 드라이버, 스탠더드 그리고 아이린에게 불행으로 다가옵니다.
영화는 드라이버의 이중적인 삶을 대변하듯 빛과 그림자에 대한 활용이 탁월합니다. 오프닝에서 운전하는 드라이버의 모습이 도시의 가로등에 따라 비쳤다 가려졌다 하는 모습. 아이린과 드라이브하며 서서히 저물어가는 햇빛을 받으며 보이는 모습. 따뜻하면서도 때론 냉정 해지는 드라이버의 모습이 빛과 그림자로 잘 드러납니다.
또한 교차편집을 통한 전개도 훌륭합니다. 아이린과의 식사, 전당포 강도 준비를 위해 차량을 훔치는 장면, 쿡(제임스 비버리)과의 대화 장면 등의 교차편집을 통해 전당포 강도 직전의 긴장감을 증폭시켜줍니다. 이 교차편집은 마지막 부분에서 버니(앨버트 브룩스)와 드라이버가 웃으며 대화하는 장면, 버니와 드라이버가 칼로 서로 찌르는 장면이 교차되면서 보여주는 부분은 묘한 감정을 느끼게 해줍니다.
이 영화에서 드라이버와 아이린의 대화는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실제로 라이언 고슬링과 캐리 멀리건은 이 작품에서 대사를 많이 하는 것보단 그 분위기에 집중하는 것이 좋겠다고 느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영화 속 두 배우의 눈빛만 봐도 캐릭터의 감정이 느껴집니다. 마치 아이린의 아들과 눈싸움하던 드라이버처럼 화면을 사이에 두고 절로 즐거운 눈싸움을 하게 됩니다.
이런 절제된 표현은 영화 초반부와 중반부 전당포 강도 장면에서 더 훌륭하게 느껴집니다. 강도들의 총격전이라든지 긴박한 상황들을 직접 보여주지 않습니다. 드라이버의 시계 초침 소리만 들려주기만 합니다. 그럼에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시간에 쫓기는 것 마냥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합니다. 이후 보여주는 카체이스 장면 또한 긴장감을 계속 유지시켜줍니다.
하지만 느닷없이 샷건으로 전당포 강도 공모자의 머리가 터지는 장면은 이 영화가 그동안 유지해왔던 표현의 태도에 대해 의문을 들게 만듭니다. 그동안 억눌러왔던걸 터뜨린 것 마냥 잔인한 장면들이 연속해서 나옵니다. 면도칼로 섀넌(브라이언 크랜스톤)을 죽이는 장면, 엘리베이터에서 니노(론 펄만)의 부하를 밟아 죽이는 장면 등 갑작스러운 태도 전환에 한 방 맞은 듯 한 기분을 안겨줍니다. 이런 잔인한 장면들을 갑자기 보여준 목적이 무엇인지 궁금할 뿐입니다.
영화 후반부에 잠깐 언급되는 개구리와 전갈의 우화는 이렇습니다.
전갈이 개구리에게 강을 건널 수 있게 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개구리는 전갈이 독침으로 자신을 찌르지 않을까 두려워합니다. 이에 전갈은 독침을 찌른다면 개구리가 죽으면서 자신도 물에 빠져 죽게 될 테니 걱정 말라고 안심시킵니다. 그 말을 듣고 개구리는 전갈을 등에 태워 강을 건너기 시작합니다. 강을 반쯤 건넜을 때, 전갈은 개구리를 찌르고 둘 다 죽게 됩니다. 개구리는 전갈에게 왜 찔렀느냐고 묻자 전갈이 말합니다. “나는 전갈이야. 그게 내 본성이라고.”
이는 영화의 전체를 꿰뚫는 우화입니다. 영화에서 드라이버가 입는 재킷의 등에는 전갈이 그려져 있는데, 드라이버가 개구리, 범죄자들이 전갈인 셈입니다. 범죄자들은 드라이버를 안심시키기 위한 말을 하고 드라이버는 그 말을 믿고 차를 몰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드라이버에게 독침을 쏘죠. 우화의 끝처럼 결말 부분에서 드라이버는 서서히 죽어가면서 차를 몰고 어디론가 향합니다.
드라이버가 원하는 것은 그저 강을 건너는 것이었습니다. 범죄자들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기만 하면, 즉 강만 건너기만 하면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갈 것이란 부질없는 믿음이 그를 이 지경까지 몰아갔습니다. 그렇다면 그 믿음을 강하게 만든 것은 무엇일까요? 아마 그것은 아이린과 함께 했던 짧은 시간들의 행복으로 보입니다. 다른 무엇보다 가장 지키고 싶었던 것이 그것이었으니까요.
엘리베이터에서 니노의 부하를 죽인 뒤 드라이버의 곁에서 물러나는 아이린과 그것을 바라보는 드라이버. 그리고 서서히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 아마도 드라이버는 그때 알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강을 건널 수 없다는 걸요. 때문에 드라이버와 아이린과의 마지막 통화는 씁쓸하게 느껴집니다. 알 수 없는 눈빛으로 어디론가 향하는 드라이버의 마지막 모습도 그렇고요.
중반부 이후에 보여주는 폭력을 다루는 태도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큰 작품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라이언 고슬링과 캐리 멀리건이 보여주는 눈빛 연기는 단연 최고입니다. 두 배우가 주고받는 대화가 적어 늘어진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지만 이들의 눈빛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 느낌을 충분히 상쇄시킬 수 있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알 것만 같은 이 둘의 눈빛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히 즐길 가치가 있습니다.
★★★☆
1. 눈빛으로 이야기하는 라이언 고슬링과 캐리 멀리건
2. 빛과 그림자의 아름다움
3. 탁월한 음악 선택
1. 느닷없는 폭력성
1. 라이언 고슬링이 맡은 배역의 진짜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영화 크레디트에서 드라이버(Driver)로 나온다.
2. 니콜라스 윈딩 레폰 감독은 면허가 없다.
3. 라이언 고슬링은 전갈자리다.
4. 이 영화의 원작은 제임스 살리스(James Sallis)의 소설 <드라이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