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터(Master, 2016)
영화 초반부, 넓은 원형 경기장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연설로 좌중들을 홀리는 진회장. 사실 그는 ‘원 네트워크’라는 회사를 운영해 투자사기를 벌이는 범죄자다. 우스꽝스럽다가도 조직 내부 사정을 다 꿰뚫어 보고 있는 진회장. 언뜻 보면 <달콤한 인생(A bittersweet life, 2005)>의 백사장(황정민)이 떠오르기도 한다. 우스꽝스럽다가도 순간 섬뜩해지는 진회장의 모습이 마치 ‘날 아주 XX같이 봤구먼?’이란 말 뒤에, ‘인생은 고통이야 몰랐어?’라는 말과 함께 비치는 백사장의 모습과 같아 보인다.
희대의 사기꾼, 진회장에 대적할 수 있는 인물이려면 어떤 인물이어야 할까? 김재명의 대사처럼 ‘미친놈’이어야 할 것이다. 물론 좋은 의미에서. 그런 ‘미친놈’이기 위한 필수 조건을 나열하자면 이 정도 일 것이다.
1. 엘리트 출신(사법고시도 패스했다.)
2. 이성적인 판단
3. 상대보다 몇 수를 앞서 보는 통찰력
4. 정의감(영화 초반부 윈스턴 처칠의 일화를 말하는 장면)
5. 끈질김(몇 년을 기다려 진회장 체포작전을 구상했다.)
6. 잘생김(강동원으로 이미 끝났다.)
여기서 아쉬운 점은 김재명을 돋보이게 해줄 수 있는 매력이 없다는 것이다. 위에 나열한 필수적 조건 외에 김재명 만의 매력이 갖춰졌다면 더욱 빛날 수 있었다. 희대의 사기꾼에 대적할 수 있는, 너무도 뻔한 캐릭터가 등장해서 오히려 밋밋했던, ‘강동원이란 배우가 이렇게 안 보일 수 있는가?’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경찰에게 붙잡혀 수사협조를 종용받는 상황에서도 여유를 부리는 모습에서 박장군의 캐릭터는 관객들에게 분명히 다가온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여유로우면서도 능글능글한 캐릭터. 하지만 영화 중반부, 진회장에게 버림받은 뒤 김재명과 다시 재회했을 때, 눈물을 흘리며 서러움을 토로하는 장면에서 캐릭터의 정체성에 혼란이 왔다. 오히려 허세 부리며 김재명과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했어야 하는 게 박장군 다운 모습이 아닌가 싶다.
실제로 영화 관람객이라면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영화 초반부, 진회장이 ‘원 네트워크’를 통해 어떻게 사기를 쳤는지 설명할 수 있는가?’
아쉽게도 이 영화를 본 내 주위의 사람들 중 분명히 설명한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나 조차도 분명히 설명할 수 없었다.
영화는 ‘조희팔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다. ‘조희팔 사건’의 핵심은 ‘폰지 사기’다. 거액의 수익을 보장하겠다며 투자자들을 모아 받은 투자액으로 기존의 투자자들에게 약속한 배당을 주고, 또 다른 투자자들을 모아 위 방식을 반복하는 것. 젠가처럼 아랫돌 빼서 윗 돌 괴는 형식의 사기 방식이 ‘폰지 사기’다.
적어도 ‘조희팔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면 이것에 대한 최소한의 설명이 있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다 할 설명은 없었다. 한 없이 올라가는 ‘원 네트워크’의 가입자 수를 전광판에 보여주고 돈세탁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대사를 통해 전달을 했다 한들 그것이 관객에게 전달되지 않았다면 그건 의사소통의 실패다.
금융사기인만큼 금융 관련 용어에 대한 설명을 쉽게 하기 어려워서라고 반박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연출의 문제로 회귀된다. 금융 관련 용어를 재밌는 비유와 연출로 효율적인 설명을 해낸 <빅 쇼트(The Big Short, 2015)>만 봐도 그렇다. 그 정도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범죄 장르의 영화라면 범죄 과정에 대한 성의 있는 설명이 있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든다.
스타성 있는 배우들을 모았지만, 평범한 캐릭터로 영화를 이끌기 위해선 연출이 무엇보다 중요한 비중을 차지할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범죄 영화이면서도 어떤 식으로 범죄를 저지르는지 분명한 설명도 없는,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삼았음에도 진지하게 접근하지 않은 영화다. 마지막 장면을 통해 관객들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줬을 진 몰라도, 관객들에게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영화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