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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다반사 May 04. 2017

그려내지도, 소화하지도 못할 거면서...

미스 슬로운(Miss Sloane, 2016)


*브런치 무비패스를 통해 본 작품입니다.


 영화의 첫 장면, 차가운 인상의 엘리자베스 슬로운(제시카 차스테인)은 워싱턴에서 그야말로 잘나가는 로비스트입니다. 승리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완벽한 승리를 위해 동료들에게 계획을 숨길 정도로 무서운 여자이기도 합니다. 그런 그녀가 총기 규제 강화 법안을 위한 로비에 뛰어들게 됩니다.     


빅 픽처

 영화 첫 장면에서 슬로운은 로비스트의 조건을 말합니다.

‘로비스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통찰력이다. 상대방의 움직임을 예측하고 결정적 순간에 한 방을 먹이는 것이 중요하다.’

 로비스트에게는 소위 ‘빅 픽처’를 그려내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말이 됩니다. 그에 맞게 슬로운은 총기 규제 강화 법안 통과를 위한 빅 픽처를 그려내고 영화 말미에 완성을 합니다. 영화 내용 전반이 빅픽처인 만큼 그것이 얼마나 정교하게 그려졌는지가 중요할 것입니다. 아쉽게도 이 영화는 그렇지 못 하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슬로운이 그려내는 그림의 조각들(계획)을 한데 모아 보여지는 빅 픽처의 쾌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그 조각들에 대한 이해가 필요 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그런 편의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대사들이 그것입니다. 슬로운이 그려내는 그림들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대사들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하는데 제한된 시간 내에 이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로비스트의 치열함을 표현하기 위함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큰 맥락이 슬로운이 그려내는 그림의 조각들임에도 그 조각들에 대한 이해를 포기하면서까지 치열함을 표현하고자 한 것은 소탐대실이 아닌가 싶습니다. 쏟아지는 대사들을 극의 흐름으로 받아들이고 넘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영화를 보게 되면 조각들을 모았을 때 펼쳐지는 슬로운의 빅픽처에 대한 감흥은 분명 떨어질 것입니다.

 쏟아지는 대사들에 대한 이해과정을 거치지 않더라도 슬로운의 빅 픽처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장면은 스파이와 도청장치들에 대한 장면입니다. 그 장면들만 이해해도 이 영화의 결말 부분 이해는 충분합니다. 다시 말해 앞부분의 엄청난 대사량은 사실상 넘어가도 그만인 장면이 되버립니다. 영화에서 그렇게 강조하는 빅 픽처는 그리 대단하지도, 정교하지도 않습니다. 때문에 이렇게 마무리 지을 거면 굳이 2시간 가까이의 러닝타임이 필요했나?, 그 많은 대사량은 로비스트의 긴박함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캐릭터의 아쉬움

 슬로운은 거짓말로 점철된 인물입니다. 그녀와 비슷한 지점에 있는 사람은 그녀에게 돈을 받고 잠자리를 함께하는 포드(제이크 레이시)입니다. 그도 업무상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지만 슬로운에 비해 진실되어 보입니다. 적어도 자기 고객에게 만큼은 진실된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죠. 그에 비해 슬로운은 포드에게까지 거짓말을 합니다. 비밀을 보장해준다는 포드의 말에도 불구하구요. 둘 다 거짓말이 직업이지만 진실됨의 정도를 놓고 보면 두 캐릭터는 흥미롭습니다.

 로비스트의 도덕성을 논하는 캐릭터는 에스미(구구 바샤 로)와 슈미트(마크 스트롱)입니다. 에스미와 슈미트 두 명 중에서 직업윤리에 대해 보다 직접적으로 논하는 상대는 에스미라는 것에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슈미트도 분명 슬로운에게 로비스트에 대한 직업윤리를 논하기는 하지만 그 정도는 상식적인 수준입니다. 때문에 오히려 슈미트는 극의 흐름을 위한(슬로운이 원래 회사를 그만두고 새 회사로 가기 위한) 기능적인 캐릭터로 보입니다.     


영화의 속임수

 영화 후반부. 슬로운이 의회에서 최종 변론하는 장면은 영화 기술의 정점으로 생각됩니다. 점점 슬로운의 모습을 클로즈업하면서 비장한 음악을 깔면서 관객으로 하여금 압도감과 카리스마를 느끼게 하였습니다. 중요한 장면이고, 슬로운의 캐릭터를 정점으로 끌어올려야 하기 때문에 온갖 영화적 기술을 동원했을 겁니다. 하지만 수많은 대사량을 영화 스스로 소화하지 못한데에 따른 결과로만 보입니다.

 영화 결말 부분에서 슬로운이 형량을 말하는 장면은 마치 '영화 초반부에 내가 냉정함을 잃은 건 빅 픽처의 일부였어.'라고 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이 대사 또한 슬로운의 엄청난 능력을 돋보여주기 위한 수단으로만 보입니다. 그 빅 픽처가 허술하기 그지 없는데도 말이죠.


맺으며...

 빅 픽처를 강조하지만 그 빅 픽처가 대단하지도, 정교하지도 않을뿐더러 그걸 그려낼 수 있을 정도로 감독이나 시나리오의 역량이 충분치도 않습니다. 스파이와 도청장치로 흐지부지 마무리 할 것이었으면 오히려 캐릭터에 집중했어야 하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여러모로 제시카 차스테인이 아깝기만 한 영화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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