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만의 비타민이 있나요?

by 질풍가도

플라시보 효과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플라시보 효과란 가짜약이나 꾸며낸 치료법으로 환자의 긍정적인 믿음을 유도해 병세가 호전되는 현상을 일컫는다. 특히 이 플라시보 효과는 처방해 주는 사람에 대한 믿음이 클수록 효과가 극대화된다고 한다.

나는 엄마를 믿는다. 당연한 것 아니냐고? 맞긴 맞다. 당연하다.

예로부터 부모자식은 촌수도 따지지 않는, 피로 연결된 가장 가까운 관계라고 하지 않나. 당연히 믿을 수밖에


하지만 어찌 보면 그게 꼭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다.





“엄마, 내 배 아파서 좀 쉬어야겠는데?”


나는 유난히 어릴 때 배가 자주 아팠다. 그런데 딱히 병원을 가면 특별한 이상을 찾을 수 없었다.

꾀병이었냐고? 설마... 난 나름 어릴 때 순수했다. 믿거나 말거나.

아무튼 내가 배가 자주 아팠다는 것은 ‘사실적’인 사실이었다.

그래서 자주 가는 소아과에서는 의사 선생님이 충수염이 아닐까라는 의심을 하셨지만 수술을 하거나 그런 적은 없었다. 갈 때마다 무슨 약인지는 모를 무언가를 먹으면 한동안은 괜찮아졌던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5학년 월말고사를 얼마 앞둔 어느 하루 갑자기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그날도 공부 중 복통을 느꼈고 엄마에게 쪼르르 달려가 이실직고했다. 내가 이렇게 아프면 쪼르르 달려가 이야기하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쪼르르’라는 단어에서부터 어린이의 신남이 느껴지지 않는가?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 나는 소아신장염을 앓았다. 솔직히 너무 어릴 때라 얼마나 아팠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하지만 뚜렷하게 기억할 수 있는 것은 그때 날 걱정해 주던 엄마의 눈빛과 사랑이다. 당연히 추상적이기만 했다면 그 기억은 망각의 골짜기에서 꼼지락거리고 있을 수도 있었지만 그 기억을 특별하게 만들어 준 것은 바로 초코우유와 엄마의 따뜻한 포옹이었다.


“호야, 먹고 싶은 거 없나?”


“초코 우유”


내가 아프다고 할 때마다 엄마는 먹고 싶은 것이 없냐고 물어보셨고 난 그럴 때마다 초코 우유로 답했다. 그리고 우유를 다 마시면 항상 엄마는 나를 꼭 안아주셨다. 아마 어린 아들이 병에 걸린 것이 마치 자신의 탓인 양 마음이 많이 아프셨으리라.

가끔씩 엄마의 이런 사랑을 회상할 때는 가슴 한켠이 아릿해 온다.


헌데 문제는...

이게 은근 중독성이 있어 내가 끊지를 못했다.

파블로프의 개 실험에서

종소리가 나면 개가 침 흘리기 시작하는 것처럼 나 또한 이게 조건반사마냥 중독이 되어 버린 것이다.


‘내가 아프다고 한다.’ -> ‘엄마는 나에게 먹고 싶은 것을 물어본다.’ -> ‘초코 우유를 비롯한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먹을 수 있다.’ -> ‘그래서 난 아픈 게 싫지 않다.’


우리 솔직해져 보자. 다들 어릴 때 이런 경험 있지 않나? 솔직하게 말이다.


아무튼 그리하여 쪼르르 달려가 내가 지금 아프다는 소식을 기쁜 마음으로 전하게 되었다. 당연하게도 나는 후속조치가 어떤 것이 나올까란 즐거운 상상을 하면서 말이다.


"호야, 지난번에 약 받아 놓은 거 있다. 일단 이거 먹어봐라."


뭔지 모를 무언가를 받아먹고 나는 엄마의 다음 보상을 기다리는데 그날은 딱히 다음 보상이 없었다.


"엄마, 내 그라면 오늘은 공부 그만하고 쉰데이"


맛있는 것은 없었지만 그래도 나의 한 달간의 엄청난 과업인 '다달학습'을 쉴 수 있으니 그것만이라도 나름 괜찮았다.

그렇게 저녁 내내 빈둥거리며 놀고 있던 나에게 엄마가 오셔 물으셨다.


"호야, 배는 좀 어떻노?"


"엄마, 약 먹으니깐 이제 괜찮아졌다."


약리학적 측면에서 내가 먹은 약이 내 장기에 어떤 기전으로 작용하는지 알리도 없을뿐더러 알아야 할 필요성도 없다. 단지 나는 약을 먹었고 이러이러한 절차로 나는 괜찮아진 것이다. 그거면 충분한 것이었다.

순간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그 정적을 깬 아버지의 목소리


"봐라, 점마 꾀병이라 안 했나"


엄마 뒤에 계셨던 아버지가 엄마의 어깨틀 탁 치며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엄마도 같이 웃으시며 다가와 나를 꼬옥 안아주셨다. 그리고 내 귀에 이렇게 속삭이셨다.


"호야, 비타민도 몸에 좋은 거다."


'응? 뭐지 이 상황은?'


무슨 상황인지 몰랐던 나는 잠시 버퍼링에 걸렸다.



나는 비타민을 먹고 복통이 나았다. 과학계 의학계에 새로운 지평이 열린 것이다.

에잇...


나는 그 사건 이후로 아동기를 나 스스로 마무리했다. 더 이상 종소리에 농락당하는 침 흘리는 불쌍한 파블로프의 개가 아니었다.

조건반사에 반해 굳건한 의지를 가진 소년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물론 이 또한 믿거나 말거나다.


나중에 안 얘기지만 나는 엄마에게 한번 더 당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소고기라고 먹은 것이 알고 보니 고래고기 었다는 것이었다. 참 맛있게 먹었는데...

(그 당시 부모님은 잠시 고래고기 식당을 하신 적이 있었다. 자랑(?)이지만 우리 집은 유명한 프로그램인 '6시 내 고향'에도 출연한 집이었다. 물론 금방 망했지만...)




"자, 이거! 이거! 이거만 완벽하게 연습하면 이번시험 100점 나온다!


"이번에 샘이 얘기하는 거 말고 시험에 나오는 문제 있으면 방망이 들고 샘 찾아온나!"


"샘, 진짜죠? 저희 방망이 바로 구매합니다?"


'아니 이것들이...'


애들은 자기네들끼리 낄낄대면서도 열심히 받아 적는다.


나는 오늘도 학생들에게 나만의 비타민을 열심히 먹이는 중이다. 비타민이 복통도 낫게 하는데 이깟 학교 시험쯤이야.

내가 비타민을 먹고도 복통이 나았다고 생각한 것이나 내 말을 믿고 학생들이 시험을 준비하는 것이나 어찌 보면 '확증편향'에 가깝다.

비록 100% 사실이 아니더라도 확고한 믿음이 생긴다면 충분히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은 여러 임상을 통해서도 밝혀진 바 있다.

내가 시험 출제자가 아닌 이상 100% 시험문제를 맞힐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애들은 나를 믿음으로 자기 실력의 100%를 발휘할 수는 있을 것이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며 어떤 것들을 믿으며 살아간다.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이념이 될 수도 있으며 종교나 상황이 될 수도 있다.

세상에 100%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100%가 되길 원한다. 그래서 우리에겐 비타민이 필요할지 모른다.


예전에 내가 먹은 노란색 비타민이 말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사나이가 되는 길(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