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단언컨대 중학교 1학년과 2학년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너무 빠른 것 같은가? 하지만 나에게 그 사건은 세상의 냉정함과 나름의 합리성을 느끼게 해 준 계기가 되었다.
중학교 1학년때 나는 그저 그런 학생이었다. 체격도 중간, 성적도 중간. 그래서 딱히 반에서 발언권이 있지도 않았고 친구들 앞에 나서지도 안 또는 못했다.
뭐 그래도 성격은 유순해서 주변 친구들과는 사이좋게 지내긴 했지만 그것 말고는 학창 시절을 딱히 설명할 것도 큰 에피소드 없이 지냈던 것 같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말이다.
우리 반 실장이 있었다.
‘문’군이라고 칭하겠다. 이 친구는 통통한 체격에 성격도 별 무리 없었고 성적도 고만고만했다. 어떻게 반 실장이 되었는지 기억도 나질 않지만 떠도는 소문에는 엄마의 치맛바람이 장난 아니라는 이야기가 많이 돌았다. 어린 나이에 그런 세세한 것까지 신경 쓰기엔 내 지성이 따라가질 못했었다.
내 인생의 흑역사라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는다. 왜 그런 일이 발생했는지에 대해서는.
일단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와 ‘문’군은 싸우게 되었다. 단순히 말싸움에 그친 것이 아니라 교실 중간에서 치고 박으며 싸웠다. 당시 반 친구들은 말리기보단 주변에 책걸상을 물려주고 둥그렇게 둘러싸 있었다. (돌이켜보니 참 거칠게 자란 세대다.)
한참을 싸우다 수업 종이 울려 그친 뒤 서로 ‘수업 끝나고 보자.’는 상투적인 멘트를 던지며 일단 자리에 앉았다. 잠시의 휴전상태인지라 수업이 집중될 리 만무했고 계속해서 내 심장은 빠르게 뛰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피 끓는 사춘기 학생이라도 50분의 텀은 나를 흥분에서 벗어나게 하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아마 ‘문’군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야 너네 둘이 담임이 교무실로 오란다.”
쉬는 시간에 한 녀석이 이야기한다. 누가 그 새를 못 참고 고자질을 했나 보다.
자연스레 휴전상태를 지속하며 우리 둘은 교무실로 갔다.
처음으로 들어가 본 교무실. 하지만 ‘문’군은 실장이다 보니 익숙하게 교무실 문을 열고 있었고 내가 그 뒤를 따라가려니 왠지 패배감이 들어 좀 울적했다. 그리고 역시 슬픈 예감을 틀린 적이 없다는 노랫말 같은 말은 사실이란 것을 곧 깨닫게 되었다.
“야 니가 실장 말을 잘 들어야 할 거 아이가. 왜 반에서 친구들끼리 싸우는데?”
“교실에 선생님 없으면 실장이 선생님이랑 같은 거 아나 모르나?”
순간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엄석대가 생각이 났다. 아니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선생님이 저런 말을 하다니 너무 억울하고 이해가 되질 않았다. 이유는 묻지도 않으시고 저런 식으로 학생들 사이의 일을 처리하시다니. 하지만 내 성격상 그 자리에서 선생님에게 대들 용기는 없었기에 속으로 그냥 울분을 삼키고 교실로 돌아왔다.
나는 그날 집으로 돌아온 후 한 동안을 이불속에서 펑펑 울었다.
억울했다. 분했다. 내가 실장이 아닌 것이 분했고, 우리 엄마는 학교에 왜 안 오는지가 분했다.
그런 후 내가 조금 더 공부를 더 잘했더라면, 내가 좀만 힘이 셌더라면 이런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 내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그 일이 있은 후 내 내면을 감싸던 무언가가 깨어진 느낌이었다. 데미안의 싱클레어도 이런 경험이었을까?
“엄마, 내 과외 딱 한 번만 시켜주면 안 되나?”
우리 집 형편상 사교육은 엄두도 못 낼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나는 어렵게 엄마에게 말을 꺼냈다. 그리고 엄마도 내가 어렵게 꺼낸 말이란 걸 아셨는지 몇 날을 고민 후 나의 소원을 들어주셨다. 그리고 처음으로 중학교 1학년 겨울방학 동안 2달간의 과외를 시작하게 되었다. (2달간의 과외도 참 재밌는 이야기가 많지만 이건 나중에 따로 한 페이지를 차지할 예정이다.)
그리고 내가 또 시작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복싱.
어린 내가 내린 결론은 공부도 잘하고 싸움도 잘하는, 요즘 말로는 육각형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동네에서 이름이 가장 멋지고 강해 보이는 ‘구룡체육관’을 겨울방학 동안 등록해서 열심히 몸도 만들었다.
(체육관에 등록하면 티셔츠를 하나 주는데 흰색 티셔츠 뒤에는 용 아홉 마리가 똬리를 틀고 승천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고 그 아래엔 구룡체육관이라 적혀있었다.)
이렇게 만반의 준비를 하며 중학교 1학년 겨울방학을 보낸 후 나는 자신감 있는 모습으로 2학년을 맞이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