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깝게도 나는 영어를 잘 못한다. 아니 못한다 정도가 아니라 울렁증이 있다가 더 맞는 것 같다.
누군가가 옆에서 영어로 이야기를 하면 어지럼증이 생기며 왠지 도망치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리고 민망하게도 실제로 그런 경험 또한 있었다.
지금 같이 일하는 형님께서 몇 해 전 소개팅을 해 주신 적이 있었다.
다른 이도 아니고 자신의 사촌동생을 말이다. 가족을 소개해 준다는 것은 웬만큼 나에 대한 믿음이나 신뢰가 있었다는 얘기인데 결과적으로 나는 그 형님을 실망시켜 드리고 말았다.
이놈의 영어 울렁증 때문에 말이다.
광화문 근처 한 카페에서 그 형님과 사촌동생 그리고 나, 이렇게 세 명이 만났다. 나는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라 형님은 안 나오신다는 걸 억지로 우겨 세 명이서 보게 되었다.
사촌동생은 상당히 미인이었고 조금은 서구적인 스타일이었다. 역시나 스타일대로 얼마 전까지 외국생활을 하고 한국에 왔다고 했다.
참고로 소개팅을 시켜준 그 형님은 나랑 같이 일하는 영어 선생님이다.
카페에서 서로에 대한 찰나의 탐색을 끝내고 맥주를 한잔 하러 갔다.
문제는 여기서부터였다.
술이 한두 잔 들어가면서 어느 정도 분위기가 자연스러워졌나 보다. 사촌동생분이 외국생활을 하고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런지 중간중간에 슬슬 영어가 나오기 시작했다.
맙소사...
덩달아 형님도 취기가 오르셨는지 거기에 영어로 대꾸를 하시기 시작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 형님은 영어선생님이었다.
“솰라솰라 솰라솰라”
“uh, 솰라솰라 솰라솰라”
갑자기 꿔다 논 보릿자루가 된 느낌이랄까...
말을 하고 싶은데 할 수 없는 그 답답한 느낌은 지금 떠올려도 썩 좋은 느낌은 아니었다.
그렇게 나는 열심히 술만 먹었고
그만... 취기에 그 자리에서 슬그머니 도망치고 말았다.
참 부끄럽고 민망한 소개팅 경험이었다.
알고 있다 알고 있어. 내가 영어 울렁증이 왜 생겼는지가 궁금하단 거. 그래서 지금 말하려고 한다.
때는 바야흐로 1999년도 수능 날
나는 수능날 시험을 보고 그 고사장에서 두 번째로 빨리 나왔다. 어떻게 그것을 기억하냐고?
나 이리 봬도 MBC 문화방송과 인터뷰한 사람이다!
"올해 수능은 어땠나요? 어떤 과목이 특별히 어려웠나요?"
"쉽던데요?"
MBC 기자의 상투적인 질문에 아주 쿨하고 조금은 재수 없는 답을 하곤 종종걸음으로 집에 왔던 기억이 있다. (참고로 소싯적에 공부를 못하지는 않았다. 믿거나 말거나)
사실 그때까지 나는 내가 시험을 잘 봤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집에 와서 교육방송으로 채점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지금처럼 EBS가 인터넷으로 상용화되기 전이라 수능 채점은 실시간 정답으로 맞춰봐야 했다. 그래서 집에 와 교육방송을 틀어놓고 채점 준비를 시작했다.
1교시 언어영역. 한 개 틀렸다. 오케이
2교시 수리탐구 1 영역. 다 맞았다. 오 좋았어!
3교시 수리탐구 2 영역. 두 개 틀렸다. 음 나쁘지 않아.
나름 기고만장했던 나는 방문을 빼꼼히 열고 밖에 계신 엄마한테 말했다.
"엄마, 내 서울대 가겠는데?"
엄마는 피식 웃으시며 대꾸도 안 하시고 저쪽으로 휑하니 가셨다. 결말을 벌써 아셨나 보다.
대망의 마지막 4교시 외국어영역. 평소에 영어를 완전 못하지도 않았기에 뭐 그래도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충격과 공포가 시작되었다. 듣기 문제가 17문항이었는데 그중 절반이상이 틀린 것이었다. 그리고 뒤로 갈수록...
외국어영역 최종점수는 44점. 80점 만점에 반타작을 했던 것이었다.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그리고 생각났다. 내가 마지막 영어 시험 때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나는 사실 마지막 교시 전까지 내가 시험을 잘 본 것을 알았다. 정답이 헷갈리는 문제가(소위 별표를 치는 문제) 몇 개 없었다. 그 문제들을 다 틀리더라도 평소보다 더 잘 보는 것이란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나는 4교시가 시작될 때쯤에는 너무 신나 있었다. 시험을 잘 보고 있는 것도 알았고, 마지막 교시만 끝나면 이 지긋지긋한 수험생 생활도 자유라는 생각에 과흥분한 상태였던 것이었다.
그런 상태였으니 스피커에서 나오는 영어로 솰라솰라 하는 것들이 내 귀에 들어올 턱이 있나.
끝나고 친구들하고 뭐 하고 놀지, 여자친구도 빨리 만들어야지, 여행은 어디로 갈지, 당장 오늘 저녁엔 엄마한테 뭐 먹고 싶다고 얘기하지 등이 생각들이 내 눈과 귀를 뒤덮어 버린 것이었다.
채점이 끝났다. 방문을 열고 나가니 엄마가 웃으며 물어보셨다.
(그때 엄마는 별 기대도 없이 물어보셨다고 하셔서 나중에는 약간 서운하더라.)
"어떻게 됐노? 서울대 가나?"
"아 몰라, 서울대는 서울 사람들이 가는 거고. 내 나갔다 올게"
괜스레 엄마에게 짜증과 시답잖은 농담이 섞인 말을 내뱉고 나는 나와버렸다.
그날 이후 나에게 영어라는 것은 떠올리기 싫은, 피하고 싶은 1순위가 되었다. 하다못해 대학시절 나는 그 흔한 토익 한번 본 적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순수한 토종 한국인이 되어 버렸다.
작년에 친구와 단둘이 일본 여행을 다녀왔다.
둘 다 일본어는 못했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친구가 영어로 의사소통은 가능했기에 나는 친구를 졸졸 따라다니며 편안하고 즐거운 여행을 즐겼다. 어차피 내가 아무 말을 안 해도 친구가 다 알아서 해 줄 것이라 생각했기에 아무 생각 없이 즐겼다.
하지만 일본에서조차 나에게 시련이 닥쳤다. 친구와 교토를 걸어서 돌아다니다 작지만 분위기 있는 갤러리가 보여 들어가게 되었다. 그곳에는 다양한 형태의 수묵화가 전시되어 있었고 특히 내 눈길을 끄는 작품이 있었다. 수묵으로 표현된 추상화였는데 점하나 달랑 찍혀있는 작품이 나름 내 흥미를 돋구는 작품이었다.
“もしかしてこの作品が気に入りますか?”
갑자기 빨개진 얼굴... 급작스런 일본어 질문에 나는 얼어버렸다.
내가 굳은 채로 가만히 있자 일본말로 무언가를 물어보신 여성분이 또 말을 거셨다.
“Do you speak English?”
“um... a little bit”
“oh, I drew this picture. Nice to meet you.”
“Sorry”
그리고 친구를 데리고 후다닥 갤러리를 빠져나왔다. 솔직히 거기까지는 알아 들었지만 그 이후부터 알아들을 그리고 대꾸를 할 자신이 없었다.
아주 배꼽은 잡는 친구와 달리 나는 정말 많이 아쉬웠다. 흥미가 생긴 작품의 작가를 만나기도 쉽지 않은데 그 천금 같은 기회를 언어의 장벽에 막혀 도망쳐 버린 내가 바보 같고 부끄럽고 안타까웠다.
그 일을 계기로 귀국 후 바로 일본어 수업을 등록을 했다. 히라가나 가타가나부터 쓰고 들으면서 일단 시작했다. 과거는 과거일 뿐, 겁난다고 계속 웅크려있기엔 아직 나는 살 날이 너무 많이 남았다. 재밌는 것도 많이 남았고 해보고 싶은 것도 많이 남았다.
지금이라도 두려움은 버리고 새롭게 시작해 봐야겠다. 또 누가 알겠나. 내가 몇 년 후엔 미국이나 일본에서 활동을 하고 있을지 말이다.
앞으로 도전하는 나와 당신에게 행운이 깃들기를...
*왜 영어가 아니고 일본어를 시작했냐는 질문엔 나는 이렇게 말한다. 일단 일본어부터 좀 시작할게요... Step By Ste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