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의 부모님과의 식사자리에서 나는 아버지의 정곡을 찔렀다. 장난스러운 아들의 말에 아버지는 뒤로 넘어가시듯 크게 웃으셨다. 옆에 계시던 어머니가 한마디 거든다.
"내가 니 엄마다. 엄마는 니를 낳자고 낳자고 그렇게 졸라서 낳은 거다."
아버지는 웃음반, 멋쩍음반으로 계속 웃고 계셨다.
"그래도 아버지가 교회 나가면 아들 자랑을 얼마나 하는 줄 아나? 내가 우리 아들 없었으면 지금 나이에 어디 가서 힘이라도 주고 다니겠나?"
아직 부모라는 단어의 감정을 제대로 느껴보지 못한 나는 지금의 부모님이 나를 바라보는 감정을 정확히 알 수가 없다. 단지 두리뭉실하게나마, 하지만 확실하게는 우리 부모님이 나를 많이 사랑하고 있다는 걸 느끼긴 한다. 어렸을 때부터 항상 사고뭉치였던 아들인데, 마흔도 훌쩍 넘었지만 철도 덜 들어서 아직 손이 많이 가는 아들인데도 부모님 눈에는 그냥 사랑스런 아들인가 보다.
특히 어릴 때부터 어려워(?)했던 아버지는 요즘 뭔가 순한 양이 되신 느낌이 들어 가끔 혼란스러울 때도 있다. 가끔 조카들을 대할 때의 모습을 보면... 나 어릴 때나 좀 그렇게 해 주시지 라는 약간의 원망 아닌 원망이 들 때도 있다.
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 전에 운수업을 하셨다.
우리나라에서 운전은 거의 1세대가 아닐까 한다. 그래서 어릴 때 아버지 차를 탈 때면 참 아버지는 운전을 잘한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 당시에 내비게이션도 없었는데도 길을 참 잘 외우셨고, 중학교 시절 어느 하루는 뭣 때문인지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지각의 위기에 놓였을 때 아버지께선 갓길로의 곡예운전으로 무사히 세이프시켜 주셨던 기억도 있다. 아버지가 운전하는 차에선 항상 안정감을 느끼며, 잠도 잘 잤던 걸로 기억한다.
얼마 전 아버지가 운전하는 차를 얻어 타고 가는 길이었다. 분명 좌회전 신호가 떨어졌는데 아버지는 움직이질 않으셨다. 그래서 조금 있다 아버지께 신호가 바뀌었다고 말씀드리니 그제서야 출발을 하셨다. 그러시며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호야, 이제 아버지도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상황판단이 느리다. 젊은 사람들이 1초면 인지하는걸 나는 5초 정도 걸리는 것 같네"
"에이 아버지, 나이 들면 그럴 수 있죠. 너무 마음 쓰지 마세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니었다. 문득 고개를 돌려 아버지를 보니 아버지 머리카락이 새하얗다. 나는 이제껏 아버지의 흰머리를 보며 참 멋있다는 생각만 했었지 아버지의 늙음에 대해 신경을 안 쓰고 있었던 것 같다. 이래서 아들 키워봤자 소용없다는 말이 있나 보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제서야 아버지의 늙음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어느 때부터 반응하시는 게 예전만 못하신 거나 말씀하실 때 단어를 잘 못 떠올리시는 것, 종종 주차장까지 가셨다 차키나 핸드폰을 가지러 다시 가시는 모습까지, 아버지의 늙음은 어느새 내 주변에서 벌써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나에게 아버지란 존재는 항상 어렵지만 든든한, 그런 존재였다. 그 옛날 부모자식 간 체벌이 너무나 당연시되던 시절에도 아버지는 나에게 한 번도 체벌을 해 보신 적이 없다. 아, 물론 체벌은 어머니의 몫이었기도 하지만 말이다. 신화 속 오이디푸스의 영향도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그래도 무섭고 어려운 건 항상 아버지였다.
내가 아는 아버지는 항상 원리원칙을 강조하시고, 당장의 손해가 있더라도 불의와 타협하지 않으시는 조금은 까칠한 분이셨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건 사고가 많았고, 어머니는 항상 아버지께 나서지 말라는 말이 습관이 되셨다. 그것 때문인지는 몰라도 고등학교 때 아버지는 '默言'이라는 한자가 적힌 패를 목에 걸고 묵언수행을 하시는 모습도 목격한 적이 있었다. 뭐 얼마 가지는 않았던 것 같지만 말이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어릴 때 느꼈던 어려움은 점차 든든함으로 바뀌었고, 핏줄이 뜨거움이 원래 다 그런 건지 무언가 안정감을 느끼며 살아왔던 것 같다. 그래서 이런 아버지의 늙음이 더 와닿지 않는다.
다시 아버지를 본다. 샤워를 마치시고 속옷을 입으시는데 엉덩이 부분이 헐렁하다. 몸에 근육이 많이 빠지신 것 같다.
얼마 전 단백질 보충제를 사두고 하루에 한 번씩 꼭 챙겨드시라 신신당부했다. 헬스장도 등록시켜 드리고, 아들한테 물려주실 돈도 없으시니 무조건 건강하셔야 한다고 농담반 협박반으로 말했다.
요즘 들어 아버지께 가장 많이 듣는 말이 "호야, 니가 이제 우리 집 가장이다."라는 말이다. 아직 상투를 틀지 않아 그런지, 아니면 아직 아버지의 든든함이 좋아서 그런지 뭔가 와닿지가 않는다. 와닿지 않는다기보단 뭔가 그런 상황을 늦추고 싶은 마음이 더 크리라.
생로병사가 자연의 이치라고 하지만, 그 자연스러운 이치라고 해서 우리의 감정 또한 당연하다고 느끼지는 못하는 것 같다.
나에게 얼마의 시간이 주어질지는 모르겠지만,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이 보인다.
생각해 보니 마음이 급해진다.
얼마 전 어머니께서 아버지와 단둘이 여행을 한번 다녀오는 거 어떠냐고 하셨다.
나는 뭔 남자들끼리 여행이냐고 대충 넘겼었지만, 조만간 아버지와 단둘이 여행을 한번 다녀와야겠다. 가서 같이 걸으며 얘기도 많이 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자기 전엔 조촐하게 술상도 봐서 속 깊은 이야기도 나눠봐야겠다.
그리고 이제는 더 미루지 않고 집안의 가장 역할을 인수인계받아야겠다.
그리고 이야기가 잘 된다면 이제부터라도 아버지가 이제껏 짊어지셨던 무언가도 내 어깨 위로 옮겨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