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질 당신에게

by 질풍가도

“샘, 저 병원 그만뒀는데요?”

“응? 왜? 아니 요즘 다들 취업 못해 난린데 왜 멀쩡하게 다니던 병원을 그만뒀어?”

멀쩡히 다니다 보니 제가 안 멀쩡해지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생각한 것이랑은 좀 달라서요.”


며칠 전 졸업생이 학원으로 찾아왔다. 일 년 정도만에 보는 녀석이었다. 나름 규모 있는 한방병원에서 물리치료사로 몇 년 근무하고 있었는데 얼마 전에 그만두고 지금은 컴퓨터 관련 공부를 하고 있다고 한다. 당차보이 기도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걱정도 된다.




사실 이 녀석은 처음 볼 때부터 나름 임팩트가 있었던 녀석이었다.


“샘, 저 학원 다니고 싶어서 상담받으러 왔는데요.”


고등학교 1학년 여학생이었다. 친구 소개로 왔다고 했는데 첫인상부터 가관이었다. 교복치마는 바짝 줄여 걸어 다니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고 얼굴에는 뭘 그리 발랐는지 희멀건 해 경극배우 저리 가라였다.


“미안한데 너는 등록 불가. 일단 화장하는 애들은 샘 수업 못 들어와. 다음에 오너라.”

그랬더니 다음날에 화장을 싹 지우고 나타난 녀석이 이 녀석이었다.

조금은 일진(?) 같은 첫인상과는 달리 성격도 털털하고 예의도 발라 나에게 소위 ‘그러한’ 학생들에 대한 선입견을 깨준 어찌 보면 조금 고마운 녀석이었다.

주말 아침 수업일 때면 항상 머리는 물에 널은 미역마냥 덜 말린 상태로, 슬리퍼는 아빠 것인지 발이 2개는 더 들어갈만한 그런 걸 급하게 신고 허둥지둥 수업에 오던 녀석이었다.

맨날 남자애들하고 누가 서로 못생겼는지 순위를 매기면서 깔깔거리며 고등학교 생활을 보냈었고 그래서 아직 내 핸드폰에는 ‘예림이 못생김’이라고 저장되어 있는 녀석이다.

고등학교 생활 3년간을 충고를 가장한 잔소리로 무장을 시켰더니 그래도 어엿한 사회인이 되어 지금은 아주 잘 살고 있다.

“샘, 근데 그때는 샘이 왜 그렇게 멋져 보였는지 모르겠어요. 하하 사실 지금도 멋집니다만...”


“너 이제 가야지? 안 가냐?”


농담을 주고받으며 근황토크를 하던 중 이 녀석이 나에게 예전에 멋져 보였다는 말을 하면서 사족을 달았다.


“샘은 그 당시에 직업에 대한 만족도가 진짜 높아 보였어요.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마 샘의 삶에 만족한다는 게 느껴져서 제가 그렇게 느꼈던 것 같아요. 근데 다른 애들도 다 그렇게 생각했을걸요?”

이 말을 듣고 나도 잠시 생각해 보았다. 생각해 보니 그게 맞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그 당시에 내 직업에 대한 만족도가 상당히 높았고, 수업 때도 애들한테 항상 다시 태어나도 학원강사 할 거란 말을 자주 했었던 기억이 있다. 심지어 수업하다 쓰러져 죽는 게 내 마지막 모습이었으면 좋겠다는 말도 좀 했던 기억이... (지금 생각해 보면 많이 오글거린다.)

만족감이 높았다는 것은 다시 말해 내가 원하는 방향과 현재 내가 가는 방향이 일치하며 그것이 자신감, 자존감등의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자신에 대한 만족감이 겉으로 드러난다? 그러면 멋져 보인다?’


간혹 주변에서 무언가 확실하다는 느낌을 주는 사람을 볼 때가 있다. 그런 사람들의 공통점은 스스로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고 그것이 밖으로 드러난다. 겉으로 그 자신감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와 그냥 느껴진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은 항상 자신의 말과 행동이 당당하다. 어떤 상황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항상 자신의 스타일대로 이끌어 나간다. 그래서 자연스럽고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하다고 느껴질 때도 있는 것 같다.

물론 경우에 따라 주관이 뚜렷하다와 고집이 세다, 세상물정 모른다가 혼용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조차 어느 정도 나는 존중해 주고 싶다.


유레카로 유명한 아르키메데스의 죽음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2차 포에니 전쟁당시 아르키메데스가 살고 있던 섬이 함락을 당했다. 해변가 모래사장 모래 위에서 문제를 그려놓고 고심하고 있던 그에게 로마 군인이 와서 잡아가려 했더니


"비켜, 문제가 가려지잖아."


그래서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이런 모습 또한 존중해 주고 싶다.


멋지지 않나?




앞으로 나의 ‘멋지다’라는 단어의 뜻은 수정해야 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외모나 능력이 아니라 얼마만큼 스스로에게 확신이 있느냐. 얼마만큼 그 확신으로 살고 있느냐로 말이다. 인생의 방향을 정하고, 확고한 믿음을 갖고 그 방향으로 뚝심 있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 ‘멋지다’의 기준으로 말이다.


“그래서 자격증은 얼추 다 준비됐고, 내년에 IT 쪽으로 취업하려고 해요. 공부하다 보니 생각보다 재미있더라고요. 내년부터는 멋지게 살 거예요 저!”


“그래, 인생은 멋지게 살아야지. 예림이 넌 야무져서 뭘 해도 잘할 거다.”


인생을 멋지게 준비하려는 스물여덟의 제자에게 이렇게 또 하나를 배웠다. 미적분할 때야 내가 선생이지 사회 생활하면 그런 게 어딨겠나. 멋진 제자 덕분에 조금은 더 멋지게 살아갈 수 있어 다행이다.


오늘도 자신만의 멋진 하루를 살고 있는 당신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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