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나이가 되는 길(2)

by 질풍가도

“엄마, 봐봐라. 내 반에서 4등 했다.”

난 씩씩하게 엄마에게 성적표를 보여주었다. 중학교 2학년을 올라가 첫 시험에서 반에서 4등을 하는 기염을 토했다. 1학년 때 반에서 중간등수 정도였는데 4등이면 정말 대단한 성과였다고 생각한다. 물론 과외는 수학만 했으니 전적으로 과외의 탓이라고만은 볼 수 없을 것이지만 그것을 토대로 나머지 학습에 자신감이 붙은 것은 사실이었다. (수학이 제일 어려운 과목이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것 같기도...)


신기한 것인지 당연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2학년 첫 시험에서 어느 정도의 성과를 내어 보니 학교생활이 뭔가 달라졌다.

뭐랄까... 세상이 환한 노란빛으로 변했다고 해야 할까?

학교 가는 것도 재미있고 반에서 친구들과 노는 것도 재밌고 심지어 시험 보는 것도 재미가 있었다. 더욱이 학교선생님들이 더 이상 무섭지가 않았다. 지금 또 가만 생각해 보면 좀 슬픈 현실인 것 같기도 하다. 만약 내가 성적이 좋지 않았다면 느끼지 못했을 감정이었을 테니깐.

합리적인 것은 떠나 분명했던 건 수업시간에 조금 떠들어도 분명 1학년때와 2학년 때 선생님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는 분명 달라졌다는 것이 느껴져 몸서리치게 좋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변화된 것이 있었다. 더 이상 누군가가 나에게 시비를 거는 일이 안 생기게 된 것이다. (아 물론 내가 복싱을 배워서 다른 애들을 다 줘 패고 댕겨서 그런 건 절대 아니다...)

단지 무리가 생겼을 뿐이다. 물론 1학년때도 주변 친구들은 있었지만 무리라고 부르기엔 소수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대략 10명 정도로 항상 뭉쳐 다니는 친구들이 생긴 것이다. 처음 2학년을 올라가서는 서로 쭈뼛쭈뼛하다 시험성적이 나오니 서로를 스캔하기 시작했다.


‘아, 저 뒤에 키 큰 아가 이번에 1등 한 놈이네.’


‘와, 점마 공부 못하게 생겼는데 내보다 앞이네?’


누가 1등이고 누가 몇 등인지를 말이다. (웃기다고 표현하는 게 맞는지 뭔가 슬프다고 표현하는 게 맞는지 자꾸 애매하다.) 아무튼 그렇게 시험이 끝나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성적순으로 무리가 형성되었다. 그러다 보니 사소하게 시빗거리가 생길 틈이 없었다. 그리고 그때 이후로는 영화 문구 ‘함께 있을 때, 우린 아무것도 두려울 것이 없었다!’로 학교생활을 압축시킬 수 있었다. 남녀공학이었지만 반은 남자반 여자반으로 구별되어 있었기에 남자들끼리의 찐한 우정을 마음껏 느끼고 발산해 볼 수 있었다.




한 번은 반에서 도난사건이 일어나 복도에 반 전체가 엎드려뻗쳐를 하고 있었다.


당시 눈썹이 없어 ‘모나리자’라는 우아한 별명을 가지고 있었던 담임 선생님께서는 범인이 나올 때까지 계속 이렇게 있어야 한다고 엄포를 놓으시며 우릴 닦달하셨다. 한참을 엎드려뻗쳐를 하는 와중에도 우리는 서로 눈빛 교환을 하였고 그중 한 녀석이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제가 훔쳤습니다. 샘”


이 친구의 멋진 멘트에 우리는 서로 먼저 일어나지 못함을 후회했고 곧 담임선생님이 이 멋진 광경을 보고 용서해 줄 것이라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인생은 반전 드라마 아니던가.


“마, 장난하지 말고 다시 엎드려”


예상치 못한 전개였다. 물론 먼저 일어난 녀석이 우리 반 반장이라 선생님도 일부러 총대 매려는 것을 눈치채셨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일단은 예상 밖이었다.


“샘, 사실 제가 훔쳤습니다.”


좀 전에 그 녀석이 다시 엎드리고 얼마 안 있어 우리 무리 중 또 다른 녀석이 일어났다. 이 녀석이 전교 1등인 녀석이었다.


“야 이ㅅ ㅔ ㄲ ㅣ들아. 장난하지 말고 엎드려”


아니 범인이 자수하겠다는데 왜 안 믿어 주는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아마 표면적으로(?) 모범생이라 그렇지 않았을까 짐작만 한다. 그렇게 우리는 돌고 돌아 10명이 다 일어났다 다시 엎드리는 촌극을 연출해 보았다. 이 정도면 학교생활 재미나게 한 거 아닌가?



갑자기 자랑 아닌 자랑 한번 해 보려고 한다. 사실 난 예전에 경상북도에서 1등도 해 봤다. 나 혼자 1등은 아니고 우리 무리가 다 1등이었다. 다 올백이었으니깐 말이다. 일단 진짜는 진짜다. 물론 불법이기도 했...

당시에는 도별로 학력을 측정하는 ‘도학력 고사’라는 시험이 있었다. 학교 내신점수에는 들어가진 않지만 그래도 도별로 같은 시험을 본다는 것에 의미가 있었다. 학교 내신점수에 들어가지는 않는 시험이다 보니 공신력이나 시험관리 등에 대한 부분이 뭔가 허술했던 것 같다.

시험 하루 전날 친구가 다니는 학원에서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고 했다. 어찌어찌 시험지를 미리 구해놨으니 와서 보고 가라고 말이다. (30년이나 된 일이니 들추진 말자...)

그래서 그 친구는 어렵사리(?) 시험지를 구했고 우리는 그날 밤에 시험지를 미리 풀어볼 수 있었다. 그러니 당연히 다음날 시험을 다 맞을 수밖에...


시험이 끝나고 다음날 우리는 모여 나름 진지하고 정의로운 이야기를 나누었다.


"야, 아무래도 이건 사실대로 말하는 게 안 낫나?"


"근데 그러면 우리 ㅈㅗㄴ나 맞을 거 같은데?"


"그래도 나쁜 건 나쁜 거지. 그냥 우리 다 같이 가서 사실대로 얘기하자. 그라믄 또 아나? 샘이 용서해 주실지"

우리는 이런 대화를 나누면서 속으로 다들 뿌듯함을 느꼈다. 비록 잘못을 저질렀으나 반성하고 바로잡으려 하는 모습이 왠지 영화의 한 장면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다 같이 모여 교무실로 갔고 모나리자 선생님에게 사실을 고했다.

하지만 역시 영화와 현실은 다르다. 우리는 그날 정말 정말 많이 맞았다...

모나리자 선생님의 주 무기는 '주걱'이었는데 본연의 목적은 잊은 채 다른 용도에 더욱 제격이었다.

우리는 책상 위에 무릎 꿇고 앉아 허벅지며 발바닥이며 나중에 걷기도 힘들 정도로 많이 맞았다.


"야이 ㅅㅣ바, 봐라. 내가 그래서 가지 말자 했잖아. 모나리자한테는 안 통한다니깐!"


가기 전 끝까지 버티던 녀석이 투덜거렸고 우리는 낄낄대며 서로 바세린을 발라주었다. 그리고 그날의 일은 그렇게 마무리가 되었다.




당신은 세상을 언제 알았는가?


나는 단언컨대 중학교 1학년과 2학년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한때는 공부를 잘하면 학교생활이 편해진 것처럼 사회에서도 주어진 역할만 잘한다면 세상은 살 만한 것이라 결론을 내린 적이 있었다. 남자들끼리는 힘의 논리도 존재해 싸움을 잘하면 그 무리에서 발언권이 세지고 그것이 당연한 결과라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본질이 아니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모습은 아니다.


주인공!


맞다. 바로 주인공이다.

중학교 1학년 때 내 영화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었다. 되짚어보면 나는 배경이었고 엑스트라였다. 하지만 2학년 때의 모습은 내 영화의 주인공이었다.

엑스트라에서 주인공이 되더니 내 삶이 재미있어지고 세상이 화려하다는 것을 느꼈다. 모든 것이 나의 이야기가 되었고 모든 것이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되었다.


우리는 다들 살아가는 영화의 장르는 다를 수 있다. 코믹이 될 수 있고 멜로가 될 수 있고 아니면 히어로물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장르 불문 그것은 나의 영화이고 내가 주인공이란 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비로소 세상을 알게 되었다.


'영화는 무엇이 프레임 안에 있고, 무엇이 프레임 밖에 있는지의 문제이다.' -마틴 스콜세이지


프레임 안으로 들어가 나의 영화를 만들어 갔으면 하는 바램이다. 장르는 바로 내 결정에 달려 있으니깐!



참고로 나는 코믹으로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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