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일을 보러 화장실을 들어가다 잠시 멈춰 화장실을 한번 스윽 둘러본다.
지금 안방 화장실은 건식으로 사용 중이라 바닥은 뽀송하고 따뜻한 온기가 느껴진다. 그레이색 정사각형 타일이 깔려있고 은색으로 줄눈처리를 해 두어 정갈하고 조금은 고급진 분위기도 있다.
문 오른편에는 비데가 설치되어 있는 변기가 설치되어 있고 그 위로는 전면 거울이 달린 수납장이, 벽면에는 핸드폰 거치 및 충전할 수 있는 조그마한 선반도 하나 설치되어 있다. 문 정면에서 보면 안쪽으로 투명한 유리로 된 샤워부스가 설치되어 있고 샤워부스 천장에는 무수히 많은 물구멍들이 박혀있어 언제라도 내 샤워를 준비하고 있다.
이제는 10원이나 30원을 내지 않고 언제든 볼일을 볼 수 있다.
상전벽해: ‘뽕나무밭이 변(變)하여 푸른 바다가 된다.’는 뜻으로, 세상일(世上-)의 변천(變遷)이 심(甚)함을 비유적(比喩的)으로 이르는 말.
“에이, 거짓말도 정도껏 해야지. 무슨 저기 아프리카 이야기를 갖고 왔냐”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나는 진지하게 이야기했는데 당최 믿어주질 않으니. 믿어주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나를 허풍쟁이로 몰아가는 이 분위기는 참... (평소의 행실을 이럴 때 되돌아보게 된다...)
“아니 진짜라니깐, 작은 건 10원 큰 건 30원!”
“야, 그러면 그건 어떻게 확인하는데? 작은 걸로 말하고 들어가서 큰 거면? 아님 큰 거라고 얘기하고 들어갔는데 작은 거면?”
친구가 낄낄거리며 다시 물어본다.
“아니 30원에는 휴지 가격이 포함된 거라고!
초등학교 들어갈 무렵 우리 집은 시장통에 있었다. 시장 근처가 아니라 진짜 시장통 말이다. 포항에서 가장 크다는 ‘죽도시장’ 안에 살았었다. 지금이야 현대화가 많이 진행되어 점포 사이 간격도 넓고 깨끗해졌고, 천정도 만들어져 있어 깔끔하지만 그 옛날 시장통이라 하면 정말 영화에 나오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시장통에 웬 집이냐고? 당시 부모님은 시장통에서 시장 상인들을 상대로 조그맣게 밥장사를 하셨는데 낮엔 장사를 하고 밤엔 우리 가족이 그 안에서 잠을 자는 식이었다.
건물은 다 낡아서 비가 오면 당연히 대야에 떨어지는 빗물을 받아야 했고, 그때는 쥐가 왜 그렇게 많았는지 자다 보면 얼굴 위로 뭐가 지나가는 느낌을 받는 경우도 많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어려운 환경이었지만, 부모님은 당시에는 자신들의 최선이었고 다행스럽게 나는 어렸으니 나름 재미있고 행복했던 기억이었다.
대화의 주제는 바로 화장실이다.
정말 정말 나는 지금부터 사실만을 이야기한다.
시장통에 살던 집(?)은 엄밀히 말하자면 용도는 주택이 아니었다. 지금으로 생각하면 상가 개념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시대가 시대인 만큼 상가라고 해서 화장실이 다 있는 건 아니었다. 시장통에 있는 다른 집들도 마찬가지였고 그래서 시장 중간쯤 삼거리에는 공중 화장실이 있었다. 우리들 포함한 시장 상인들은 당연하게도 공중화장실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공중화장실이다 보니 분명 냄새도 났을 텐데 너무나 자연스럽게 바로 옆에는 좌판에 찌짐을 부쳐 파는 아주머니가 장사를 하셨고 또 바로 옆에는 생닭을 장만해 파는 가게도 있었다. 갓 잡힌 닭들은 항상 부들부들 떨며 좌판에 올라가 있곤 했다. 그 삼거리가 아마 시장에서 가장 붐비는, 지금의 핫플이었지 않았나 싶긴 하다.
공중화장실 정면에는 옛 영화관 매표소처럼 돈을 받는 할아버지가 한 분 앉아계셨다. 혹시나 공짜로 볼일을 보려는 무법자들을 미리 차단하려는 아주 강직해 보이시는 분이셨다. 말수는 없으셨고 앞에서 큰 것과 작은 것을 말하면 아무 말 없이 돈을 받고 휴지를 주시던 분이시다.
(이 할아버지는 돈을 내고 볼일을 보셨을지 갑자기 궁금해지네...)
아무튼 문제는 공중화장실을 이용하는 것이라기 보단 그 이용에 돈이 든다는 사실이었다.
무료가 아니라 유료! 소변은 10원, 대변은 30원. 대변은 조그마한 일회용 휴지 한 묶음을 같이 줬었다. 정말 우리(?)의 위생관념이 없었다기보단 그 시대적 배경에 녹아들어 간다면 소변은 그냥 수채구멍에서 처리가 가능했다. 하지만 대변은 그게 힘들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30원을 주고 이용을 해야 했던 것이다. 당시 30원이면 어른들에게는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아주 큰돈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해피’라면이 하나에 50원이었으니 큰 일(?)을 참을 수만 있다면 그냥 참고 싶은 마음도 항상 들곤 했다.
그렇게 나는 뭘 먹은 후에도 비용이 들 수 있다는 것을 어릴 때부터 알아버린 것이었다.
유럽에는 지금도 공중화장실이 유료이며 그것도 넉넉하지도 않다고 한다. 유럽이 선진국이지만 또 이런 건 신기하다. 물론 역사적 배경도 있겠지만 그래도 신기한 건 신기한 거다.
혹시 그거 아는가? 방이 700여 개나 있고 한 때 5000여 명이 살았던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에도 화장실이 없었다는 사실을? 나중에 페스트 이후 정비가 어느 정도 되었지만 그 정도로 유럽에선 공중화장실이 많지도 않았다.
유럽의 화장실 유료화도 역사가 깊다. 로마는 잦은 전쟁과 콜로세움 건설 등으로 재정이 바닥났고 위기 극복을 위해 고심하던 황제는 공중화장실의 사용료를 걷기로 하는 묘안을 찾아냈다. 이와 동시에 황제는 화장실 외의 곳에서 볼일을 보는 사람에겐 벌금을 아주 무겁게 해 이중으로 세금을 걷었다고 한다. 실제 화장실을 의미하는 영어 ‘toilet’도 이러한 역사를 반영하는 단어로 프랑스어 망토(toile)에서 유래되었는데 18세기까지도 공중화장실이 없었던 파리에서는 길을 가다가 화장실이 급하면 망토와 양동이를 들고 다니는 이동식 화장실 업자에게 돈을 내고,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도록 망토 안에 들어가 대소변을 해결했다고 한다. 이에 지금도 유럽의 공중화장실에서는 돈을 받는 곳이 많다.
이런 것 보면 뭐 우리나라도 그 당시에 벌써 선진국에 진입했다는 행복회로를 한번 돌려볼 수도...
가끔 주변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꺼내면 믿지를 못한다.
우리나라에서 화장실을 돈을 주고 사용한 적이 있었다는 사실이 믿기질 않는 모양이다. 아주 오래 전도 아닌 이야기인데 그만큼 우리나라가 빠르게 변했다는 증거 아니겠나 싶다.
이제는 나는 화장실을 가지고 있다. 물론 은행도 지분이 있으니 온전히 나만의 화장실이라고 하긴 그렇지만 그래도 이제는 10원이나 30원을 내지 않아도 되니 한결 마음은 편하다.
잠시 생각해 본다. 그 시절 그 시장 삼거리를 말이다.
날이 좋았던 날도 참 많았고 그때는 하늘이 왜 그렇게 높게 보였을까?
화장실 가는 길은 항상 마음도 급하고 몸도 급하니 쫓기는 마음이었지만 나올 때의 길은 너무 느긋하고 행복한 길이었다. 구수한 찌짐 냄새며 칼국수 냄새며... 옛말 틀린 것 하나 없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
삼거리 공중화장실 앞 지나가는 사람들, 옆에서 찌짐 붙이는 냄새, 펄떡거리던 닭다리, 옆 족발골목의 한방냄새들은 30원짜리 공중화장실과 뒤섞여 이제는 내 추억 속으로 스며 녹아버렸다.
그리고 난 오늘 화장실에 조그만 돼지 저금통을 하나 놓아두었다.
‘큰 거요. 30원!’
유럽 화장실 이야기는 <문화일보> 이현욱 기자님의 기사 일부를 인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