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brunch
"야들은 그런 아들 아니라니깐"(1)
by
질풍가도
Mar 31. 2025
"다들 손 짚고 돌아서!"
우린 너무 놀라서 자동반사적으로 다들 돌아서 담벼락에 손을 짚었다. 심장이 쿵쾅쿵쾅 거리며 진짜 터질 듯하다는 것을 실제로 느껴볼 줄이야...
시간이 천천히 흐르며 영화 속에 들어와 있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지금부터 절도용의자 현행범으로 체포한다."
두둥...
때는 바야흐로 1997년 여름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나는 그때 고등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우리 학교의 기숙사 이름은 뭔가 웅심이 솟구쳐 올라 이 사회의 밑거름이 되고 싶어질 것 같은
이름하여 '청운학사'.
당시엔 기숙사 들어가는 기준에 성적이 있었기에 기숙사에서 생활한다는 것은 나름 자부심을 가질 만한 요소였고,
기숙사에서 계속 머무르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성적을 유지해야 하는 사항들이 있었기에 다들 나름 열심히 공부를 했었다.
물론 나는... 나름 선택적인 열심을 유지하면서 생활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1학기 기말고사가 한창 치러지는 시기였다.
원래 기숙사는 자습공간과 자습시간이 엄격하게 통제가 되는 시스템이었다.
정해진 시간과 정해진 자리, 그리고 항상 눈에 불을 켜고 돌아다니시는 사감선생님.
(사실 사감선생님이라 해도 할아버지였는데, 나중에 보니 친구 외할아버지였다. 뭔가 억울했다...)
하지만 그 루틴에 예외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시험기간.
시험기간에는 늦게까지 공부하는 학생들도 있고 학교 수업이 일찍 끝나다 보니 자습시간을 따로 통제하지 않았다.
학교에서도 당연히 기숙사 학생들은 알아서 공부할 것이라 생각했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것은 착각이었을 것이다.
나뿐 아니라 대부분의 기숙사 학생들은 시험기간이 어찌 보면 조금 더 자유롭고 행복한 학교생활을 누려 볼 수 있는 시기였다.
시험기간에는 통제가 따로 있지 않았고, 당연히 기숙사다 보니 부모님의 통제 또한 없었으니 얼마나 홀가분한가.
"야 머리도 식힐 겸 한 판 땡기러 가자"
나는 내 옆자리 녀석에게 사감선생님의 눈을 피해 뻐꾸기를 날렸다.
"콜"
자습도중 눈빛을 주고받은 몇 명의 개척자들은 사감선생님의 눈을 피해 보무도 당당하게 기숙사 밖으로 나왔다.
나는 배가 아팠고, 옆자리 용훈이는 방에 책을 가지러 가는 거였고,
대각선 자리에 있는 현동이는 잠을 깨러 화장실을 가는 것이었다.
기숙사에서 나온 우리를 후덥 하지만 약간의 청량감을 머금은 밤공기가 맞아주었다.
우리가 신나게 향한 곳은 바로
'오락실'
혹시 뭐 우리가 나쁜 짓이라도 하러 가는 줄 알았는가???
"야, 근데 괜찮겠나? 우리 잡혀가는 거 아이가?"
"장난하나? 대한민국 경찰이 그래할 일이 없나"
얼마 전 바뀐 법 때문이다.
청소년은 밤 10시 이후에는 유흥업소(?) 출입이 제한이 된다는 법이 막 시행되던 시기였다.
그리고 유흥업소라는 카테고리에 오락실도 포함이 되어 있었다.
오락실은 두뇌향상과 청소년들의 유대감 향상, 사회성 증진 등 여러 역할들을 수행하는 아주 중요한 장소였는데
뭔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게 아닌가 싶었다.
어릴 적 잠시나마 오락실 주인을 꿈꿔 온 나로선 아주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우린 야간에 공부를 하다 나온 상황이라 시간이 밤 10시를 조금 넘기고 있었지만
그래도 우린 신나는 마음으로 학교 근처 오락실로 뛰어갔다.
우린 딱 1시간만 놀기로 생각했기에 그 시간을 아주 알차게 쓰려고 열심히 움직였다.
격투게임의 백미인 '킹 오브 더 파이터',
비행기 게임은 이걸 빼고 말할 수 없는 '1942'
그리고 영원한 누나들 '핑클'과 'SES'의 노래들로 우리는 시간을 모두 소진했다.
"야 이제 가자"
아쉬움이 남은 우리의 엉덩이는 생각보다 무거웠다.
가야 한다는 사실과 한 판 더 하고 싶다는 마음의 충돌을 다 엉덩이가 지고 있는 듯,
엉덩이 근육이 자꾸 씰룩씰룩거렸다.
하지만 그 엉덩이의 미적거림이 이 사태를 가져왔는지는 모르겠다.
순간 우리는 서로 불안함과 억울함이 교차하는 눈짓을 주고받았다.
...
갑자기 2층 오락실 출입문으로 경찰 2명이 들어온 것이다.
빠르게 뛰기 시작하는 심장, 축소된 동공, 팽팽하게 긴장하고 있는 전신의 근육들
우리가 있던 오락실은 생긴 지 얼마 안 되었다. 그래서 넓고 깨끗했다.
그랬다. 오락실이 좀 컸다.
들어온 경찰들은 잠시 멈칫하더니 출입문에서 왼쪽으로 시작해서 사람들을 한 번씩 훑으며 천천히 순찰을 시작하는 중이었다.
얼굴을 보고 학생들을 찾는 것인가?
다행히 우린 사복을 입고 있어 멀리 서는 아직 눈치를 못 챘을 수도 있다.
신대륙 인디언마냥 겁에 질린 개척자들은 경찰들과 반대쪽으로 슬금슬금 움직였다.
그리고 눈치를 보며 출입문 쪽으로 다가갔다.
다행히 경찰들은 우리와 반대편에 있었고 우리에겐 아직 눈길을 주지 않고 있었다.
출입문에 어느 정도 가까이 왔다고 판단되었을 때, 우리는 출입문으로 냅다 뛰었다.
계단을 서너 개씩 붕붕 날아서 내려왔는데 농담이 아니라 아마 2층에서 1층까지 내려오는 데 걸린 시간은 1초 남짓이지 않았을까 한다.
(당시 무협지에 심취해 있던 나는 책에서만 보던 경공이 드디어 체화된 것인가 라는...)
건물에서 나와 우리는 전력으로 뛰었다.
"야 저쪽으로"
우린 일단 학교와 반대편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왜냐?
오락실 근처에 학교는 우리 학교밖에 없었고, 학생이라 의심하면 당연히 학교 근처를 순찰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봐도 나름 합리적인 생각인 듯하다.)
우린 어느 정도 뛰었다 생각했고 어둠을 머금은 어느 주택가 담벼락에 기대어 멈춰 숨을 돌렸다.
우리를 보호하기 위한 아드레날린이 서서히 제 역할을 다 했고 우리의 어벤져스급 신체능력은 원래 제 자리로 돌아왔다.
To be continued
keyword
시간
오락실
12
댓글
2
댓글
2
댓글 더보기
브런치에 로그인하고 댓글을 입력해보세요!
질풍가도
직업
강사
학원에서 학생들과 치열하게 드잡이질 하고 있는 강사 겸 작가지망생입니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행복과 기쁨, 그리고 옛날 추억들을 여러분과 함께 공유 해 보고 싶습니다.
팔로워
16
제안하기
팔로우
작가의 이전글
큰거요. 30원!
보고 싶은 얼굴
작가의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