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때부터인가 나이 든다는 것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다. 30대부터가 시작이었다. 20대를 기점으로 사람의 몸은 노화가 시작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가속화되니 30대보다는 40대에 더 잘 느끼게 된다. "나이가 드니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말을 심심찮게 듣게 된다.
몸은 이렇게 나이 들어가는데 신기하게도 정신적으로는 늙는 것 같지 않다. 내 뇌는 20대나 40대인 지금의 나를 같은 상태로 인지한다. 그래서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때 아빠 달리기를 하면, 달리다 넘어지는 사태가 발생한다. 몸은 20대가 아닌데, 갑자기 연습 없이 달리기를 하니, 마음과 달리 몸이 움직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웃기지만 슬픈 현실이다.
현대사회는 나이 듬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 동안에 열광하는 것이 단적인 예이다.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라는 말은 칭찬이 된다. 외모가 나이를 가늠하는 기준이 되니 보다 탄력 있고 좋은 피부를 위해 자외선 차단에 신경을 많이 쓴다. 중동도 아닌데 온통 얼굴을 가리고 산책을 하거나 등산을 하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나이 드는 것을 기피하다 못해 두려워하기까지 한다.
나는 30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어떻게 하면 멋지게 나이 들까?라는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준비하고 싶었다. 그 생각은 내가 캐나다로 오면서 더 확고해졌다. 멋지게 스키를 타면서 상급자 코스를 내려온 분이 헬멧을 벗으면, 은발의 멋진 할머니, 할아버지인 경우가 있다. 60, 70대는 되어 보이는 분이 자전거를 타고 헥헥거리고 있는 나를 앞질러 간다. 할리 데이비슨 바이크를 타고 멋지게 로드 트립을 하는 은발의 신사는 낯설지 않다. 이렇게 멋지게 노년을 보내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나이 들고 싶은 동경이 생겼다.
우리 몸은 나이가 들면서 여러 가지 변화를 거친다. 특히 피부를 통해 나이가 뜸을 표면적으로 가늠할 수 있다. 피부 탄력이 떨어지고, 주름이 생기기 때문이다. 움직임이 둔해지고, 관절에 통증이 생겨 활동에 제한이 생긴다. 기억도 예전 같지 않다. 들어도 자꾸 까먹고, 뭔가를 새로 익히는데 시간이 더 걸린다. 사람들은 이것이 노화의 신호라고 그려려니하고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나는 이 수동적인 태도를 경계한다. 우리는 나이 듬을 좀 더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평균수명이 80세인 현대사회에서 40대부터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말을 달고 살면, 남은 40년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노화를 막을 수는 없지만, 노력으로 늦출 수 있다. 보다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생각과는 달리 뇌와 근육은 나이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계속해서 사용할수록 시간이 지나면서 발달한다. 70대 80대 몸짱 할아버지, 할머니는 예외적은 케이스가 아니라, 누구라도 꾸준히 근력운동을 통해 만들 수 있다. 나이가 들면 경험이 더해지기 때문에 끊임없이 배우고 생각하면 사고력이 확장되고, 풍부한 경험이 더해져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
왜 우리는 유독 노화를 대하는 자세에서 수동적인가? 자꾸 회피만 하려고 하는가? 어쩔 수 없다고 손만 놓고 있는 것인가? 내 인생은 내가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언제든 인생 제2막을 멋지게 살 수 있다. 자신의 인생에 대해 좀 더 적극적인 자세를 가지고 살아보자. 은발의 멋진 인생을 살거나, 아픈 몸을 이끌고 힘겹게 병원의 힘으로 버티거나 선택은 온전히 나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