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 사진 보여 드릴게요.”
“침대 위로 올라가 바지를 내리세요.”
“헉!”
올 들어 가장 추운 날, 강원도로 여행을 떠났다. 일행 8명은 용산역에서 만났다. 정년퇴직을 하기 전 함께 만나 오카리나와 우쿨렐레를 배웠던 팀이다.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중산층은 부의 축적 정도를 따진다고 했지만 서양에서 바라보는 중산층은 악기 하나쯤은 다룰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 어느 강사의 말이 생각난다. 꽤 설득력 있다.
나도 악기하나쯤은 하고 싶은 마음으로 오카우크팀과 만나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악기를 배웠던 시절이 있었다. 비록 제대로 연습할 시간도 갖지 못한 채 만나곤 했지만 악기를 조금씩 다룰 때는 문화인이 된 듯, 나의 품격이 좀 올라 가는듯한 기분이었다.
정년퇴직 한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나고 만남이 뜸해지면서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던 것이 지금은 일 년에 몇 번 여행이 중심이 된 정기 모임만 하고 있다. 해외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던 이 모임의 여행이다.
이젠 기차여행을 주로 한다. 목적지 기차역에 도착하면 여행사 가이드가 피켓을 들고 나와서 기다려준다. 그럴 때면 마치 기차를 타고 왔지만 비행기를 타고 해외 어느 여행지에 도착해서 피켓 든 여행사 가이드를 만난 기분이다. 마치 해외여행을 온 듯 느껴지는 여행의 묘미가 있다.
우리 팀은 한 명 외에 모두 은퇴했으니 싫어도 노년기에 접어든 사람에 속한다. 갑자기 몰아 온 한파에 나들이를 삼가야 했지만 다시 일정 잡기도 힘들다 보니 그대로 추진했다. 우리 또래 보다 조금 어려 보이는 부부가 1박 2일 일정의 여행에 동행하게 되었다. 그 부부와 서로서로 사진을 찍어주기도 하고 친근감 있는 대화도 나누게 되었다. 하루가 지나자 너무 춥다고 하면서 손난로를 하나씩 선물로 주었다. 외투 주머니에 넣어 놓으니 따뜻하고 좋았지만 장갑과 핸드폰을 양쪽 주머니에 넣고 보니 손난로까지 어느 한쪽에 함께 넣으면 물건 하나가 빠져나올 것 같아 손난로는 바지 주머니에 넣기로 했다. 주머니 하나에 물건 하나만 넣어야 혼돈이 덜 된다. 안심이 되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뜨거워졌다. 좀 뜨겁기는 했지만 손으로 약간씩 들추어 가면서 바지 주머니에 그대로 넣고 하루 일정을 따뜻하게 보내었다. 덕분에 훈훈한 하루를 보낸 기분이다. 기차역에서 그 부부와 헤어질 땐 “손난로 덕분에 따뜻했어요. 고마워요.” 인사도 깍듯이 했다. 감사한 마음이다. 서울로 돌아오는 KTX기차에서도 손난로는 여전히 내 바지 주머니에서 따뜻한 열을 뿜고 있었고 약간 뜨거웠지만 그 정도는 참을 수 있었다. 1박 2일 일정이지만 빡빡한 일정이었다. 기차에서도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어 손난로를 조금씩 들추어 가면서 그대로 비몽사몽 하다 보니 밤늦은 시간 청량리 역에 도착했다.
이번 여행도 악기 연주의 시간 없는 1박 2일의 수다방 모임이었지만 건강하게 잘 다녀올 수 있어서 감사했다.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기 위해 바지를 벗고 내복차림이 되었을 때 바지주머니 위치에 손이 닿으니 폭신한 무엇인가가 느껴졌다. 살펴보니 볼록하게 튀어나온 것이 보였다. “이게 뭐지?”
바지를 내리고 피부를 보았더니 물집이 제법 크게 부풀어 올라 있었고 주변은 넓은 부분이 울긋불긋 얼룩져 있었다. 물집은 엄지손가락 마디만 한 것과 조금 작은 것 둘이 누런색을 띠고 있었다. 그제야 화끈거리는 느낌이 들고 건드리면 터질 것 같다. 터지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며 몸이 갑자기 긴장하고 있었다. 샤워하려던 것을 그만두고 간단히 닦은 후 ‘내일 아침에 병원 가야겠구나.’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그 위치를 사진으로 찍었다. 좀 더 누런색이 짙어져 있었다. 위치가 위치인지라 병원에 가서 바지를 내리고 싶지는 않았다. ‘사진 찍은 것을 보여주고 약을 받아오면 되리라.’
진료 시작 시간에 맞춰 피부과 병원으로 갔다. 벌써 많은 사람들이 와서 대기하고 있었다. 차례를 기다려 진료실로 들어가니 나이가 지긋한 남자 의사 선생님이 있었다. 화상 입게 된 내용을 설명한 후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보여드리려고 했더니
“요즘 저온 화상을 입고 오는 환자가 많아요. 이게 더 힘든 겁니다.”
상처부위를 보고 치료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진은 아예 볼 생각도 하지 않고 의료용 침대가 놓인 방향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간호사는 빨리 들어오라는 듯 기다리고 있었다. 나도 외투를 벗고 끌리듯 따라 올라갔다. 바지를 최소한으로 내리려는 생각만 하면서 자칫 팬티까지 내릴 뻔했다. 내 손가락이 위쪽 옷 모두에 걸쳐지고 있었나 보다.
“속옷은 그냥 두고 겉옷만 내리면 돼요.”
깜짝 놀랐다. 나의 계획이 완전히 빗나가 당황하고 있었다.
“저온 화상은 오랜 시간 동안 열기가 몸속 깊이 들어가기 때문에 조금만 더 심했으면 큰 병원으로 가야 하는 거예요. 전기장판도 조심해야 하는데 잠잘 땐 전기를 꺼야 해요.”
결국 다음날도 치료받으러 가야 했고, 이틀에 한 번씩 두 번씩이나 더 치료를 받으러 갔다.
저온 화상 조심 하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