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짐
경로대학 학생으로 1년을 다녔다. 하루도 빠짐없이 가기 위해 혹시 깜빡할까 봐 어딘가에 써 두어야 안심이 되었다. 눈에 가까이 보이는 휴지통 박스에 기록해 두었다.
"아침 8시 안동교외 간다."
육 남매 학교에 보낼 때 아침마다 닦달하며 제시간에 보내었듯이 스스로 단근질 하며 간다. 학교 다니는 기분이다.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친구들이 학교 갈 때 부러워했던 마음이 다 녹는다. 90을 바라보는 나이에 이보다 더 신나는 일이 있을 순가.
어딘가를 가야 하는 날이 있으면 나의 엄마 금순 씨의 재촉은 유난했다. 일찍 서둘러야 하고, 준비할 게 많았다. 지각이라는 것은 감히 생각하지 못한다. 성격일 수도 있다. 육 남매가 엄마와 함께 나들이라도 할라치면 너무 서둘러서 성가시기조차 했고, 닦달로 느껴진다. 분명히 경로대학에도 제일 먼저 가는 사람들에 속했을 것이다.
‘어린 시절 다니고 싶었던 학교를 지금에야 다닌다.’
생각하면서 그날들을 하루하루를 손꼽아 기다렸을 것이다. 혹시, 깜빡하고 단 하루라도 못 가게 될까 봐, 눈에 잘 보이는 곳에 써 놓아두었으리라. 엄마의 그 철저함이 보이는 메모박스다.
나의 어린 시절, 아침에 몇 번을 깨워야 일어나니 늘 상 엄마의 까칠한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빨리 일어나라 카이, 인나라. 어서."
이 소리와 함께 시작하는 시끄러운 아침이 싫었다. 아마, 조용히 말했으면 지각을 밥 먹듯 했을지도 모른다. 힘들어했지만 덕분에 학창 시절 대부분 지각없이 개근상을 쭉 받았다. 한 학년을 마치고 받아오는 통지표에도 근면 성실은 자주 등장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직장생활을 하는 내내 제시간에 일어나 출근을 잘해 내었던 것 또한 그 덕이 아닐까 싶다.
아버지가 직장을 갑자기 그만두고 다른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 힘든 시기가 한동안 있었다. 부모님은 6남매를 키워야 하니 앞이 캄캄했을 것이다. 엄마가 얼마간 새벽에 일어나 공장에 다녔다.
늦은 밤 같은 새벽, 추운 겨울이었다. 부엌에서 달그락달그락 도시락 싸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가 큰소리로 깨우지 않았다. 작은 소리로 조심스럽게 “경란아” 불렀다. 나도 “응” 단번에 일어났다. 간단히 요기를 한 엄마가 두꺼운 겨울 옷차림과 모자, 장갑, 목도리로 단단히 무장을 한 후, “엄마 댕기 올 게.” 소리를 남기고 도시락 가방을 손에 든 채 캄캄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매일 새벽 같은 시간 일터로 향하는 엄마다. 육 남매 키우며 집안 살림만 하던 엄마가 돈을 벌기 위해 추운 겨울 첫새벽에 일하러 나가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온몸으로 무거운 짐을 지고 가고 있는 듯 보였다. 저러다 쓰러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되었다.
나에게는 남은 가족들과 함께 아침 식사를 하고 동생들 챙겨서 학교에 보내는 임무가 주어졌다. 내가 일찍 일어나지 않으면 모두가 지각하고 등교를 못 할 수도 있다. 엄마가 나간 후 다시 누워서 잠들지 못했다. 앞으로 엄마께 잘하겠다고 다짐했던 때이다.
금순 씨의 다짐이 보이는 글씨 속에서….
어려운 시기에 육 남매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목소리가 낮아진 금순 씨, 한 번도 직장 생활해 보지 않았던 그녀가 매일 새벽시간 힘든 몸을 이끌고 시간 맞춰 나갔던 모습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