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을 했는데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말처럼 바쁘다. 나이 들어 몸은 느려지고 있으나 하고 싶은 일은 그대로여서 그런 걸까. 직장 생활하느라 제대로 못 챙겨 주어 늘 미안해했던 아들 대신 손녀도 챙겨주고 싶고, 여행도 다니고 싶고, 그동안 개인적으로 하고 싶었던 일들도 하고 싶다.
가끔은 ‘몸이 두 개라도 되면 좋겠다, 하루가 24시간이 부족하다.’고 생각될 때도 있다. 내일은 짬을 내어 모처럼 제주도 여행을 출발하는 날이지만 정신없는 하루가 될 것이다. 성경공부모임 봉사자 활동을 시작하는 날인데 아침 10시에 개강미사를 하고 올 한 해 동안 함께 할 그룹원들을 만나 교재도 배부하고 인사를 나눈 후 제주도로 떠나야 한다.
여행 다녀 올 동안 못 돌봐줄 것이니 오늘 하루라도 손녀를 돌봐주기로 했다. 작은애 집에서 손녀와 놀아 주느라 정신없을 때 남편의 전화가 왔다.
“제주도 렌터카 회사에 보내야 하니 운전면허증을 사진 찍어 보내줘요. 빨리 줘야 해.”
“네.”
마침 갖고 있던 운전면허증을 사진 찍어서 보내었는데 잠시 후 다시 전화가 왔다.
“여보, 운전면허증 갱신기간이 한참 지났어. 당신은 제주도에서 운전 못해요.”
나의 2종 운전면허증, 다시 살펴보니 10년 만에 갱신해야 하는 최종 기간을 한참 지나버렸다.
“이럴 수가!”
먼 후일 일이라고 생각했던 그 기간이 이렇게 빨리 지나가 버렸을 줄이야.
1년 하고도 3개월 10일 무면허운전을 했다. 그동안 지인들도 태워서 자신 있게 장거리운전 하면서 천안도 다녀오고 이곳저곳 멀리멀리 다녀오기도 했었다. 모두가 무면허운전일 줄은 감쪽같이 몰랐을 것이다. 그 누구도 나의 운전면허증을 의심하지 않았다. 가족들도 내가 운전하는 차에 태워 운전하며 온갖 곳을 다녀왔다. 남편과 나들이는 정말 수도 없이 많이 했다. 고향 안동 장거리 여행은 또 얼마나 많이 했던가. 손녀들을 태워서 다니기도 했다. 물론 나는 운전을 모범적으로 한다. 음주운전도 하지 않았고, 신호위반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슬아슬하게 교통사고가 날뻔한 적도 있었다. 그동안 교통경찰에게 한 번도 걸리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다.
그나저나 당장 내일 아침 제주도로 내려가면 렌트해 놓은 차를 운전해야 하는데 무면허를 알고는 운전대를 잡을 수 없다. 운전하기 좋아하는 내가 운전대 잡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남편 혼자 운전하게 하고 싶지는 않다. 수시로 운전해서 손녀도 보러 가야 하고 코**코에 장 보러도 가야 하고 모임에도 나가야 한다. 당장 운전면허증을 갱신해야 한다. 손녀를 보면서 어떻게 해야 하나 궁리만 하고 있었다.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침 9시부터 운전면허시험장에서 당일 발급하고 있다 하니 어쩌면 내일 해결할 수 있을 수도 있겠다고 한다.
“대신 과태료를 내어야 할 거요.”
과태료가 문제인가 당일 발급해 준다고 하니 얼마나 반가운지 감사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일찍 가서 제일 먼저 받을 수 있도록 해 보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했지만 10시 개강미사에 도착해야 하는데 과연 그때까지 발급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일단 성경공부 봉사자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사정을 이야기했다.
“내일 아침 8시쯤 제일 먼저 가서 운전면허증 발급을 받아보고 안되면 그냥 되돌아올게요. 혹시, 좀 늦을 수도 있으니 양해해 줘요.”
“10시 미사 전에 상황을 알려는 주세요.”
--------------------------------------------------------------------------------------------------------------------
다음 날 아침 제주도행 짐을 모두 꾸려서 준비를 해 둔 후, 8시가 좀 넘는 이른 시간에 남편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운전면허시험장으로 갔다. 더 이상 무면허운전을 할 수는 없었다. 도착하니 8시 45분?이다. 남편은 자기가 주차하는 동안 빨리 들어가서 하라고 재촉했다. 아직 시간여유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제일 먼저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막 뛰었다. 벌써 여러 사람이 나처럼 급한 일들이 있는지 새 면허증을 받기 위해 무언가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안내해 주시는 분에게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면허증 갱신....?" 물어보니 창구 하나를 가리켰다.
가서 죄인이 된 마음으로 이실직고했다.
“운전면허증 갱신받으러 왔는데 기간이 한참 지났어요. 과태료도 내어야 한다고….”
“저쪽 운전면허증 갱신 신청서 작성 코너에서 써서 번호표 뽑고 기다리세요.”
무심한 듯 말해주었다. '이런 일들이 흔한 일인가?' 하는 의문까지 들었다.
사람들이 서서 무언가 열심히 쓰고 있는 곳으로 가서 경쟁적으로 써 내려갔다. 웬일인지 긴장해서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듯한다. 면허증을 잠시만 주의 깊게 살펴보았으면 당장 알 수 있는 일을 몰랐다. 그 긴 기간 동안 알아야 할 것을 모른 채 1년 넘도록 무면허운전을 했으니 큰 죄를 지었다. 죄짓고는 살기 힘들겠다.
"번호표를 빨리 뽑아야 해."
작성하고 있는데 남편이 들어와 번호표를 뽑아 갖고 왔다. 내 번호가 12번이다.
정각 9시가 되니 거의 10개 정도의 은행 창구처럼 된 칸막이에서 순서대로 번호가 떠드니 금세 내 번호가 보였다. 작성한 것을 제출하니 20분 정도 기다리면 끝부분에 있는 창구에서 이름을 부를 것이란다. 과태료 부과 용지도 함께 주었다. 16,000원이다. 얼마나 감사한지 곧바로 내어버렸다.
성경공부모임 봉사자 대표에게 자신 있게 문자를 보내었다.
「10시 전에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른 시간이어서 인지 20분이 아니라 10분 정도 지나니 내 이름이 떴다. 곧바로 따끈따끈한 운전면허증이 발급되었다. 속전속결, 빨리빨리 문화, 우리나라 최고다. 오늘 제주도로 날아가서 운전도 할 수 있겠다.
곧바로 성당으로 왔다. 도착하니 9시 50분, 주차는 남편에게 부탁하며 큰소리로 말했다.
“자동차는 성당에 두고 집엔 걸어가세요. 차는 내가 운전해서 갖고 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