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고향이 어디신지요?”
“왜요? 대구요.”
퉁명스러운 대답이었다. 너무 닮은 그녀, 어린 시절 친구였던 옥이이모와 꼭 빼닮았다. 그러나 고향이 대구이라 하니 할 말은 없었다.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닌가 보다. 혼자 소리처럼 말했다.
“외가가 예천인데 옥이 이모랑 너무 닮아서요. 큰 외가는 영희 이모도 있고.”
그 순간, 그녀의 표정이 확 바뀌더니 외마디 소리를 터뜨렸다.
“누구야? 누구야? 경란이?”
골프연습장에 다니고 있었던 때다. 며칠 전부터 이모를 닮은 그녀가 내 눈에 들어왔다. 아무리 봐도 닮았는데 나를 전혀 알아보지 못하고 있고 눈길도 주지 않았다. 내가 사람을 잘못 보았을 수도 있다. 아닐 수도 있겠지만 너무 닮았다. 정말 이모가 맞을지 의문을 가진 채 주변을 몇 번 살피다 그냥 집으로 왔다.
‘혹시, 이모 일 수도 있다. 내일 만나면 물어보아야지.’
그렇게 만났다.
시골의 외갓집과 큰 외가는 동네 입구 느티나무가 있는 곳에 위치한 마을 어귀에 있었고 앞집은 큰 외가이고 바로 뒤에 있는 뒷집이 동네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외가였다. 외가 담장 너머로 보면 작은 마을이 모두 보였고, 약간 오른쪽으로 보면 큰 외가도 훤히 들여다볼 수 있다. 외가는 양쪽에 출입구가 있었다. 오른쪽 출입구에서 밖으로 몇 발자국 걸어 나와 약간 아래 경사진 곳으로 내려가면 곧바로 옥이 이모가 살고 있는 큰 외가로 이어지기도 했다.
큰 외가는 그 동네에서 가장 큰 집이다. 아래채, 본채, 사랑채 넓은 마당, 방들이 많이 이방 저 방 돌아다니며 놀기도 했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우리보다 좀 큰 영희 이모 방에 들어가면 한쪽 벽은 예쁘게 수놓은 옷 커버가 걸려 있었고 수를 놓고 있기도 해서 신부 수업을 하는 듯 보였다. 동생인 동갑내기 옥이이모는 엄마의 사촌 9남매의 막내딸이지만 이모라고 불렀다.
엄마가 외가에서 나를 낳았으니 어렸을 때부터 함께 놀며 자랐을 것이다. 각자 학교에 입학하게 되자 방학에만 가서 놀았던 친구다. 목화밭에서 목화를 따기도 했고, 동네 어귀 느티나무 아래 평상에서 놀기도 했다. 이모의 언니 영희 이모와 나의 동생 문숙이와 함께 어울려 돌아다니기도 했다. 아마도 나와 여동생이 이모들을 따라다녔을 것이다. 외삼촌이 소 먹이러 뒷산에 오르면 함께 따라다니기도 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외가에 가면 함께 놀았으니 내게는 가장 오래된 친구이기도 했다.
나도 사회초년생 갓 초임 발령받은 때였고 결혼은 생각지 않았던 때인데 갑작스럽게 이모의 결혼 소식이 들려왔었고, 큰 외가에 갔을 때가 서울로 떠나기 전날 밤인 것으로 생각된다. 이모부가 좋은 사람으로 여겨지긴 했지만 아직은 좀 더 직장 생활하며 자유롭게 지내고 싶어 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했다. 결혼과 동시에 서울로 갔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모른 채 4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다.
그 후 한 번도 연락을 주고받을 수 없었다. 핸드폰이 있었던 시절도 아니었고, 편지를 주고받을 생각도 해 보지 못했다. 못 만나리라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만날 기약도 해 보지 못했다. 나도 결혼하게 되었고 바쁘게 살다 보니 잊고 지냈다. 가끔 외가 이야기가 나올 때면 그리움처럼 스치듯 기억하고만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그 이모를 꼭 빼닮은 사람을 골프연습장에서 보았다. 주로 저녁시간에 연습장을 가곤 했는데 평상시와 다르게 오후 낮 시간에 삼사일 여유가 있어서 나갔다가 만난 것이다. 오후 낮 시간에 연습장을 오는 것으로 사흘째가 된 날, 그곳에 들어서자 그녀는 연습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락카를 정리하고 있었다. 나는 또 저녁시간만 가야 하니 그날 물어보고 확인해 보지 않으면 다시는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렇게 만나고 몇 번 연락을 나눈 후 종종 연락하며 지냈다. 그러다 또 뜸해졌다. 일전에 우연히 또 다른 지인과 연락이 닿아 이야기하다 보니 이모를 알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곧바로 전화통화로 대화를 나누었고 다시 만나 점심을 먹으며 오랜만에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잊었다고 생각했던 사람인데, 마음속 깊은 곳에는 여전히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그리운 인연은,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도록 마음이 마음을 이끌어주는 걸까.
오래전 읽었던 론다 번의 《시크릿》이 떠오른다. 간절한 마음과 따뜻한 기억은 결국 서로를 끌어당긴다. 마을 어귀 느티나무 아래에서 시작된 우리의 인연은, 다시 그늘을 틔워 주고 있었다. 잊히는 듯했지만, 결코 잊히지 않았던 이름. 옥이 이모.
그녀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