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챗 GPT

속지 않는다.

by 이경란


문자가 왔다. ‘챗 GPT 300% 즐기기’ 무료 특강 강좌가 있다고 한다. 우리 집 바로 옆, 목동의 방송회관 2층 코바코홀에서다. 강좌를 듣고 싶은 사람은 회신 링크로 답하란다. 집 가까이 예술인회관과 방송회관이 있고 SBS방송국, CBS방송국도 있어서 가끔 유명 연예인이 오는 날인 듯 한때엔 어린 소녀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진풍경이 있기도 했지만 그곳에 들어가 볼 기회는 없었다. 물론 궁금하기 짝이 없는 곳이다.



‘내가 은퇴한 사람이긴 하지만 챗 GPT에 관심 있는 사람인 줄은 어떻게 알았을까? 흠, 나 정도면 이런 교육받을 필요가 있긴 하지. 조금은 할 줄 알지만 300% 즐기기 아닌가. 사람 알아보고 연락을 주나 보네.’


링크를 클릭해서 전화번호를 입력하고 이름도 입력했다. 남편도 요즘 관심 있는 듯 보이고 같이 강의를 들으면 좋을 듯해서 문자를 전달했다. 회신해서 같이 가 보는 게 좋겠다고 했다. 이런 일에 늘 부정적이었던 남편도 문자를 보더니 흔쾌히 같이 가자고 한다. 우리 부부는 디지털을 좀 아는 선진 노부부이다.



강연정보 회신으로 입장 시간, 장소, 주소 안내가 왔다. 강연장 입장에 대해 엄격한 내용의 문자로 시간엄수이며 늦으면 입장 불가란다. 회신도 전화로는 불가, 문자만 된다. 성인을 위한 강좌이니 미성년자는 입장 제한이다. 신청해 놓고 No-Show 하면 다른 분이 기회를 잃게 되니 다시 확인 문자를 보내라는 것이다. 확인 문자를 보내었다. 내가 왜 안 가, 당연히 잊지 않고 간다.



‘좋은 강좌 무료 특강이니 엄격하게 하나보다.’ 남편 회신도 확인했다. ‘둘 다 문제없이 강좌를 들을 수 있겠구나.’ 설레는 마음으로 그날을 기다렸다.



드디어 당일, 남편과 나는 예술인회관 옆 건물 방송회관 2층에 처음 발을 디뎠다. 우리 나이쯤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하나 둘 2층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다. 대부분 의상도 깔끔하게 입고 학구적으로까지 보인다. 챗 GPT 300% 활용에 관심 있는 분들이니 대부분 어느 정도 배움 의지도 있는 사람들로 보인다. 입장하기 전 전화번호와 서명을 하라 하고 자기들이 보낸 문자를 확인하고 입장시킨단다.

회신 문자가 없는 사람은 입장 불가라면서 문자 있는 사람들 먼저 들어가고 맨 마지막에 혹시 안 온 사람 있으면 그때 가서 들여보낸단다. 나는 문자를 받았다. 서명을 하고 유유히 입장했다. 사인한 볼펜은 갖고 들어가라고 한다. ‘선물인가 보다.’하며 무심코 가지고 들어갔다. 코바코홀이 꽉 차게 입장했다.



강의를 잘 들을 수 있도록 앞쪽 자리에 앉았다. 무대 커튼에 방송회관 와이파이와 비밀번호까지 확대해서 잘 볼 수 있게 해 두었다. ‘역시, 챗 GPT강좌는 다르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기대가 되었다. 그다음 구절은 본 강좌를 시작하기 전에 무료강좌이기 때문에 70분간 홍보 영상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길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영화관에서 영화 상영 전에 보는 영상이나 드라마 전에 광고하는 영상 정도겠지. 좀 지루하겠지만 눈감고 있어야겠구나.’ 기다리기로 했다.



잠시 후, 깔끔하게 스튜어디스처럼 보이는 예쁘고 우아한 여성이 올라와 사전 홍보를 하겠다 하면서 영상을 틀더니 강의까지 이어갔다.


00 상조 홍보였다. 강의를 너무 잘해서 모두가 빠져들고 있었다. 호응이 좋은 사람들에게는 별 땡땡 커피쿠폰을 선물로 쏟아붓듯이 주었다. 부부가 같이 온 사람 손들라 하더니 선물을 주었다. 네 팀이다. 우리 부부는 기쁘게 받았다. 이런 운 좋은 선물은 처음이다. 관심 갖지 않았던 상조에 관해 생각해 보게 되었고, 평소 관심 갖고 있었던 웰다잉에 관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어서 괜찮은 강의로구나 싶었다. 옆에 앉은 남편에게 아는 척하며 이야기도 나누었다.


요지는 목동방송회관 강좌에 참석한 사람에게는 직장인들에게만 해 주는 최고의 조건으로 가입을 할 수 있도록 해 준단다. 게다가 ‘목동 특강 단체 할인’으로 쓰면 70만 원이나 더 할인해 준다는 것이다. 그 대신 오늘 이 자리에서 작성해 주는 사람에게만 혜택을 준다는 것이다. 입장할 때 볼펜을 준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TV방송에서 무수히 많은 상조회사 광고를 보았었지만 늘 외면했었다. 그랬던 내가 남편도 하나 작성하라 하면서 작성하고 있었다.



내 영혼이 강의하고 있는 그 사람에게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사람들도 하나 둘 작성을 하고 있었다. 작성한 사람의 이름과 지역을 불러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홍보 강연자는 엄청나게 많은 계약서 종이를 들고 보여주었고, 계속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OOO구에서 오신 OOO님 O구좌 하셨습니다.”


내 이름도 빨리 불리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다. 가입해서 크루즈 여행을 가도 된다고 하니 은근히 여행 욕심도 났다. 나는 세 구좌 남편은 한 구좌 작성해서 서둘러 내고 있었다.



엄마가 연세가 좀 드시자 약장수에게 잘 속아 넘어가 비싼 약을 자주 사 왔다. 자취하다 모처럼 집에 가면, 건강식품을 사서 구석구석 무져 놓고 있는 게 눈에 보여 싫은 소리를 해 대었다.

“엄마, 그런 것 믿을 수 없어요. 함부로 좀 사 오지 마. 필요하면 처방받고 사든지 약국에서 알아보고 사야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모이는 곳에서 약장수가 온갖 선물을 주면서 선심을 쓰고 혼을 빼놓고는 물건을 안기듯이 팔기도 한다며 방송을 한 것도 보았다. 거기에 속아 넘어가는 이들이 한심해서 쯧쯧 혀를 내둘렀다.

결혼 후 나이가 좀 들자 찜질방을 좋아해서 자주 갔다. 일정 시간, 어느 방에서는 건강 강좌를 연다고 한다. 시간 맞추어 가보면 좋은 강의를 하고 있다. 집중해서 잘 듣고 답을 맞히면 선물도 준다. 화장지도 있고, 비누도 있다. 퀴즈를 내니 서로 맞추느라 정신없이 집중한다. '참 좋은 강좌이다.' 싶어서 끝까지 듣다 보면 결국 건강식품 선전 판매다.

“아~~ 저런 것! 우리 엄마, 속아서 건강식품 많이도 사 왔던데 나는 속지 않는다.”

마지막엔 속지 않고 선물도 받지 않고 유유히 빠져나왔다. ‘울 엄마와는 다르다.’ 장담했다.

교문 앞에서 홍보 전단지를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자녀 교육 초대장’이라는 이름으로 카드를 뿌리고 학부모를 유인하는 경우도 있었다. 초대장에 ‘4인까지 초대’라고 되어 있고 좋은 강좌를 하는 듯이 안내하고는 있지만 수상하다는 정보가 입수되어, 속아 넘어가지 않도록 급하게 ‘조심해야 한다.’는 내용의 안내 문자를 학부모들에게 발송하기도 했었다. 왕년 교장 시절 이야기이지만.




‘챗 GPT300% 즐기기’ 강의는 시들해졌다. 강의 내용은 모두 내가 알고 있는 범위 내의 것들이었다. 한 달 19000원, 커피 한두 번 안 하면 되는 돈이라 말하니 그런가 보다 했었다. 돌아오는 길, 252회를 계산해 보니 앞으로 21년간 꾸준히 넣어야 한다.


취소를 위한 전화는 쉽지 않았다. 여러 번 반복해서 끈기 있게 해야 했다. 취소하면 다시는 가입할 수 없다는 말까지 들으며.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옥이 이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