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코로나가 뭐여?

아부지

by 이경란

큰딸이 울며 내가 있는 곳으로 들어오고 있다. 뒤따라 들어오는 사위도 보인다. 오랜만이다. “울지 말거라. 이미 늦었다. 내가 가장 힘들었던 마지막 시간, 꼭 오리라 믿고 기다렸건만….”

내가 한 말이 들리는지 안 들리는지 반응이 없다. 가까이 가서 말해도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눈길도 주지 않는다. 내 말을 듣지도 못하는구나.

딸이 울고 있는 건 정말 보고 싶지 않다. “슬퍼하지 말아라.” 한마디라도 전하고 싶건만 이렇게 너희들과 말 한마디 못하다니, 이제 너희들과 함께 할 수가 없게 되었다니.




아침까지 밥 잘 챙겨 먹고 내 집에서 잘 살고 있었는데 할망구가 비틀거리며 넘어지더니 둘째 딸이 와서 병원으로 함께 갔다. 밥상은 널브러져 있고,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서울서 큰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버지, 엄마가 허리를 다쳤어요. 입원해서 오래 계셔야 한대요. 당분간만 아버지 요양병원에 좀 계셔야 할 것 같아요. 엄마 퇴원하면 곧바로 모시러 올게요. 저는 내려갈 수가 없어요. 거기 다녀오면 별도로 보고 해야 하고 복잡해져요.”

그리곤 사위들이 들이닥쳤다.

나를 양쪽에서 부축하더니 갑자기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병원 입구에서 인사하고 떠났다. 그래야 한단다. 병실 안 까지 함께 가지도 않았다. 이럴 수가 있나.

교장선생님인 둘째 사위도 그럴 사람이 아닌데 그냥 떠났다. 더구나 자상하기로 최고인 막내 사위는 나랑 자주 바둑을 두기도 하고 나를 우러러보기까지 한다고 했던 사람인데, 병실까지 와서 내 침대가 어딘지 살펴보지도 않고 그냥 떠났다.

“이놈들아, 자초지종이라도 알아야지. 갑자기 이게 무슨 경우냐.”



밤새도록 잠이 오지 않는다. 대장암으로 병이 들긴 했지만 할멈과 나는 별 탈 없이 지내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게 뭔가. 이 낯선 병원이 뭔가, 보호자도 없이. 옆에는 똑같은 침대가 있고 산송장 같은 영감도 보인다. 낯선 나를 바라보는 눈도 싫고 불쌍하다는 듯 마음 써 주는 말 한마디도 싫다. 안심시키려는 듯 말 붙이는 의사도, 간호사도 돌봐주는 이도 싫다. 이곳이 싫다. 집에 가고 싶다. 내 집 두고 여기가 어딘지 도대체 모르겠다. 애들은 오지도 않고 전화만 자꾸 한다. 큰딸은 알지도 못하는 상황을 자꾸 설명한다. 모든 사람이 마스크를 쓰고 다녀야 하고 병원에 병문안도 한 달에 한 번이란다. 이런 경우는 없다. 이런 경우는 없어.



울화통이 치민다. 병원에 입원하면 면회도 할 수 있을 텐데 면회 오는 이도 없다. 아들 딸 2남 4녀에 며느리, 사위까지, 손자 손녀도 많다. 그런데도 말이다. 나만 그런 게 아니고 병원 환자들 모두 사정이 다르지는 않은 듯 보이지만 속상한 건 이루다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툭하면 전화질만 하고 어쩌다 면회라고 와서는 창문 밖에서 얼굴 마주 보고 핸드폰 전화로 말하란다. 그리고 뭐 코비라는 둥 나를 설득하려 한다.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이다.


코로나가 뭐여?

딸들이 병원 앞에서 창문을 사이에 두고 전화로 말할 때 속이 상해서 웃을 수가 없었다. 너희들을 어떻게 키웠는데 안을 수도 없고, 손도 잡을 수 없는 곳에서 창밖에서만 이야기하다니.

내가 만들어 준 썰매로 눈썰매를 타던 밝은 너희들의 모습, 함께 스케이트장에서 스케이트를 타면 아버지 멋쟁이 최고라고 하던 너희들, 내가 대상포진으로 아팠을 땐 너희 집 근처 병원에 입원시키고 돌봐주기도 했던 큰딸이었지 않았니? 나의 사랑, 육 남매는 너희 엄마와 나를 데리고 여행도 자주 다녔고 ‘엄마 좋아하는 온천’도 많이 갔었다. 아들, 사위들과 목욕탕에 들어갈 땐 내 어깨에 힘이 들어가기도 했다. 내 몸을 씻겨주기도 하고 다른 노인들보다 효도 많이 받았다. 그랬던 너희들이 내가 진짜 힘들 때, 나를 만날 수 없다 하니 이해할 수 없었다. 서운함이 컸다. 내가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게 되었을 때 그 자체가 싫었고, 기저귀를 차는 것도 인정할 수 없었으니 자괴감마저 들었다.



내 몸이 없어진 지금 마음이 편안하다. 너희 엄마는 나에게 시집와서 고생을 많이 했지만 가족을 위해 나를 위해 최선을 다해 주었다. 장례식날도 내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고 지켜주었다. 내가 가장 힘들 때 항상 나와 함께였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정말 고마운 사람이다.



장례식 마지막 날 막내사위와 너희들이 해 주었던 진정한 이별 식은 내 서운한 마음을 좀 누그러트려 주었다. 한 명씩 나와 내게 절하며 마음속의 하고 싶은 말들을 해주었지.

“아버지 나 어렸을 때 계란 먹고 싶었는데 나에겐 한 번도 안 주시고 혼자 드셨어요.” 했을 땐 당황스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아버지가 늘 자랑스러웠어요.” 했을 땐 뿌듯했다. 해외에 있어서 못 볼 줄 알았던 막내를 내가 땅에 묻히기 직전에 도착해서 만날 수 있었던 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그날은 몹시도 추운 날이었지, 귓불이 얼어 빨갛게 된 듯 달려온 막내가 오열할 땐 정말 내 몸이 다시 살아나서 안아주고 싶었다. 너희들이 서로 따뜻하게 해 주려고 애쓰는 모습에 안도감도 생겼고 반갑게 보고 있었다. 나도 너희들 모두에게 작별 인사로 답하고 있었단다. 알고 있었니?


내 삶을 돌아보니 이생에서 중요하다고 여겼던 것, 아웅다웅했던 건 정말 아무것도 아니더구나. 그래도 가장 소중한 건 나의 아내 금순 씨, 그리고 사랑하는 아들, 딸 너희들이다.

“서로서로 사랑하며 몸과 마음 건강하게 잘 지내 거라. 내 사랑하는 금순 씨 잘 부탁한다. 먼 훗날 웃으며 다시 만나자.”





아부지, 가장 힘드신 마지막을 함께 해드리지 못했습니다. 너무 죄송합니다. 제 마음을 위로하려는 이글도 용서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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