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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란 Jan 04. 2024

가출

                                                               

   퇴근을 하면서 집으로 들어가지 않기로 작정하였다. 그리고 대구를 거쳐 안동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어젯밤 일을 생각하면 도저히 집으로 가고 싶지 않았다. 남편이 남편이 아니다. 소리 지르며 호통치는데 무서워 반박도 할 수가 없었다. 무슨 일이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들이 눈에 떠올라 눈물을 찔끔거리며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어찌 되었든 오늘은 집에 들어가지 않으리라. 시누이는 내가 남편에게 혼나는 소리를 듣고 기분이 좋았을 것이다. 일방적으로 혼났다고 해야 맞다. 싸움 상대가 되지 않았다. ‘멀리서 아들을 봐주러 온 동생이니 얼마나 안쓰러우냐? 그런 동생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해 달라’는 말을 듣지 않는다며 일방적인 명령조의 말을 한다. 내 입장이 어떠한지는 안중에도 없다. 나는 학교에서 퇴근해 오면 빨래는 산더미, 저녁 준비에 아들을 안아보지도 못한 채 다시 된 시집살이 하는 것 같은 기분이다. 몸도 마음도 너무너무 피곤하다. 교실에서 수업 중에 서서 졸기조차 했다. 가끔 비몽사몽 헛소리도 나오는 것 같았다. 매일매일 속상하다. 그리고 남편에게 제대로 안 한다고 호통 소리만 듣는다.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시할머님도 와 계시지만 가출을 감행했다. 

  아직 결혼하지도 않은 바로 아래 시누이가 ‘장손인 손자를 남의 손에 키울 수 없다’고 하며 내린 아버님의 명령으로 조카를 봐주러 와 있다. 심술이 났을 것이다.      

  ‘집에서 편안히 있다가 이게 웬 날벼락인가? 시집도 안 간 내가 왜? 조카를 봐주러 머나먼 곳까지 와 있어야 한다는 말인가? 새언니는 옷을 차려입고 아침이면 출근하고, 내가 조카를 데리고 나가면 모르는 사람들이 엄마라고 말한다. 속이 상하다. 내가 엄마 소리까지 들어야 하는 건가? 온종일 조카와 노는 것은 재미가 있다. 조카가 귀엽고 사랑스럽다. 거기까지다. 엄마 소리를 듣는 건 싫다. 집안일이며 빨래는 더더욱 하기 싫다. 왜 내가 그것까지 해야 하나? 퇴근해 오는 새언니를 보는 것도 싫다. 퇴근하고 와서 빨래하고 밥하고 아기 보는 것 모두 하면서 힘들어해도 절대로 내가 해주기는 싫다. 심술을 부리고 싶다. 할머니가 와 계신다. 그래도 싫은 건 싫은 거다. 새언니는 돈을 주려고 했다. 싫다고 했다. 내가 식모냐고 소리 질렀다. 다 싫었다. 집으로 가고 싶었다. 그뿐이다. 그런데 토요일 퇴근 후에 새언니가 집으로 오지 않았다. 이건, 또 무슨 일인가?’     

  버스를 갈아타고 안동행을 탔다. 결혼 후 처음으로 하는 혼자의 여행이다. 아니, 평생 처음 하는 가출이다. 결단코 사춘기를 비롯한 학창 시절 내내, 그리고 결혼하기 전까지 집에 늦게 간 적은 있어도 가출은 한 적이 없다. 친정으로 가려고 하니 엄마가 또 난리 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갈 곳이 없다. 친구 집에 간다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내 결혼생활에 문제 있다는 것을 소문내는 지름길이다. 자존심이 상할 일이다. 여관에 들어가려니 혼자 가기가 무섭다. 이미, 마음은 좀 편안해진 느낌이다. 가출이라는 것을 했는데 남편, 시할머님, 시누이가 걱정할 것을 생각하니 은근히 기분이 나쁘지 않다. 내가 얼마나 몸과 마음이 힘들었는지 알아주기를 바란다. 이혼을 할 것인가? 절대 그건 아니다. 남편도 성실하고 아들도 너무 좋다. 아들이 보고 싶다. 어찌하는 것이 현명한 것일까? ‘그래, 차라리 시댁으로 들어가자.’ 

  시댁이 있는 원천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원천에 내려서 연락도 없이 갑자기 시댁으로 들어가니 깜짝 놀라며 맞아 준다. 두 분 다 눈이 휘둥그레진 모습이다.

  “어머니, 저 왔어요.” 

  “아이고, 어떻게 왔냐?”

  “그냥요.” 

  정말, 그냥 왔다. 이유는 있지만 이유 없다. 그래도 반갑게 맞아 주었다. 세세한 이야기를 묻지 않았다. 그냥 왔으니 그냥 하루 지내고 가게 해 주었다. ‘아기 잘 크냐?’ 정도로만 물어본다. 곤란해 보이는 질문은 하지 않았다. 조용히 하룻밤을 자고서는, 다시 집에 가겠다고 시댁을 나섰다. 과수원을 하는 시아버님께서 사과를 한 상자 실어 주며 ‘아기 기다릴 테니 어여 가거라’ 하신다. 다시 무거운 사과 한 상자를 싣고 집으로 향했다. 가슴에 쌓인 뭔가가 내려가는 느낌이다. 할머님의 걱정하실 모습이 떠올랐다. 이제야 미안한 마음이 좀 생긴다. ‘우리 손부, 우리 손부’하며 늘 칭찬만 해 주는 할머님이 좋다. 할머님께는 너무 죄송했다. 버스정류장에 내려 어색하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남편에게 전화했다.

  “버스정류장이에요. 사과가 무거워요.”

  “알았어. 갈게.”

  남편은 기다렸다는 듯이 반갑게 전화를 받고 서둘러 나왔다. 집으로 들어서니 아들이 막 매달린다. 아들을 안으니 눈물이 앞을 가렸다. 소리 내어 울었다. 

  할머님은 가까이 앉으시더니, ‘아기에게 물어보았더니 이마에 손을 갖다 대어서 이제 오고 있나 보다 했다.’며 연신 내 손을 잡아주신다. 시누이는 먼발치서 멀뚱멀뚱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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