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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란 Jul 21. 2023

오해


  교정을 들어서니 아이들의 시끌시끌한 소리가 정겹다. 신나게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표정도 밝다. 줄지어 세워 둔 재배 상자에는 학년별 표시가 된 상추, 가지, 고추, 방울토마토… 가 물을 머금은 채 야들야들 여린 색으로 매달려 있다. 작은 화단엔 꽃잔디, 팬지, 봉숭아, 여름꽃들이 ‘나 여기 있소’ 싱그러움을 뽐낸다. 후문 쪽 작은 연못에는 예쁜 쿠피가 활기차게 몰려다닌다. 아파트 단지에 파묻힌 학교지만, 학교 건물이 예쁘고 정원이 잘 가꾸어져 가끔 촬영장으로 사용하고 싶다는 연락이 오기도 한다.  이 아름다운 학교에서 근무하고 있으니 참 좋다.


  어제는 출장이었고, 나는 오늘 편안한 마음으로 교장실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런데 뒤따라 들어오는 교감의 표정이 굳어있다. ‘나 없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약간의 불안한 마음을 떨치며, “어제 수고 많았지요?” 인사했다. 40 학급이 넘는 학교라 언제나 긴장감을 가지고 있다. 학년별로 운영되는 프로그램들이 쉴 틈 없이 이루어지고, 방과 후 프로그램, 돌봄 운영까지 운영되니, 운동장도, 학교 곳곳에서도 쉬는 공간 없이 늦은 시간까지 빼곡하다. 힘이 들었을 것이다. 


   “어제 학교에서 일이 좀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나요?”

   “학부모가 찾아올 거예요. 동영상을 한 번 보아주세요.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어제 학부모가 찾아와서 CCTV 보여 달라고 해서 보여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교육청에서 장학사로 근무하며 온갖 일들을 경험하다 학교로 온 교감이 이렇게 말할 때는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큰 문제 아니기를 기도하는 마음과 걱정되는 심정을 억누르며 교감이 USB에 담아 온 동영상을 살펴보았다. 엘리베이터에 타자마자 아이는 다시 나가려고 하는 듯하고 교사가 아이를 끌어안는 모습인데 팔로 목과 얼굴을 감싸 안고 있다. 


   아이가 집에 와서 엄마와 학교 이야기를 하다 “선생님이 엘리베이터에서 목을 졸랐다”라고 말했다 하니 그대로 믿고 보면 그렇게 보일 듯하다. 학부모는 또 얼마나 놀랐겠는가? 선생님이 아이 목을 졸랐다고 하니 확인해 보고 싶을 것이다. 당장 학교로 달려와 CCTV를 보자고 했을 것이다. 아이의 말을 믿고 흥분한 마음으로 들여다본 동영상이니 그대로 선생님이 아이 목을 조른다고 믿어졌으리라. 

 

 요즘은 아이 문제로 힘든 상황이 되는 교사들이 많다. 선생님이 아이 목을 왜 조르겠는가? 엘리베이터뿐 아니라 학교 곳곳에 CCTV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교사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그대로 믿고 보면 그렇게 보인다. 다소 흐리게 보이지만 천천히 다시 들여다보았다. 아이도 버둥거리느라 힘들어 보이고, 아이를 진정시키느라 애쓰는 교사의 모습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 교사가 아이들에게 어떻게 해 주고 있었는지가 먼저 떠올랐고, 오해라는 생각이 든다. 


   학부모가 오기 전에 먼저 담임을 만나 자초지종을 들어봐야 했다. 담임은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내려왔다. 여윈 얼굴이 더 여위어 보인다. 어젯밤을 뜬눈으로 새운 듯하다. 애처로운 그녀를 안심시켜 주고 싶은 마음이 몰려온다. 연신 죄송하다고 하면서 아이에게 절대로 목을 조르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이가 흥분된 상태라 감싸 안았다는 것이다. 그대로 믿고 싶었고 믿음도 있다. 그러나 상황은 어떻게 될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그녀는 그해 처음 우리 학교로 발령받아 왔고, 함께 한 기간은 짧지만 신뢰가 되는 몇 가지 일을 보여주었던 교사다. 먼 거리에서 출퇴근하고 있지만, 항상 이른 시간에 출근해서 일찍 오는 아이들과 함께하고 있었고, 아이들을 대하는 모습이 부드럽고 상냥해 보였다. 아이들과 선생님의 관계도 늘 좋아 보인다. 이른 시간 출근해서 학교를 둘러보다 보면 그 반은 벌써 담임이 와서 수업 준비도 하고 아이들과 함께 무언가를 하고 있다.


  올해 그 반을 맡은 후, 그녀는 체중이 7kg이나 빠졌다고 한다. 학년별로 순회 회의를 하게 되었을 때, 그 반에 힘든 아이가 있어서, 애로 사항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수시로 관심 가지게 되었고, 보결 수업을 해야 할 때 한 시간 들어가서 아이들과 수업하며 진땀을 빼기도 했다. 그런데도 그녀는 늘 웃으며 아이들과 친밀해 보인다.  

  그녀는 체육수업 중 직접 시범을 보이다, 운동 기구에 다리를 다치는 일이 생겨 반깁스 상태로 출근했고, 병가를 내지 않았다. 힘든 아이가 있는 학급이라 담임이 출근하지 않으면 그 아이가 더 힘들까 봐, 웬만하면 출근해야 한다는 거다. 담임으로서의 책임감과 아이들을 위하는 마음이 커 보여 내심 고마워하고 있다.      

  담임이 교실로 올라가고 얼마 안 있어 학부모가 이모라고 부르는 한 사람을 대동하고 굳은 표정으로 들어왔다. 두 사람이 함께 화를 내면서 따지듯이 큰 소리로 말한다. 가시 돋친 심각한 항의 표시의 감정이 들어간 말이다. 


  “교장선생님, 동영상 보셨나요?”

  이모는 아이의 학부모가 아니니 상담에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을 알려 주고, 행정실에서 기다리게 했다. 아이의 개인적인 이야기까지 하게 될 수도 있으니, 상담은 학부모와 하는 것이 원칙이다. 나는 차를 준비하면서 격앙된 마음이 풀어질 때까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모두 쏟는다면, 마음을 헤아리며 듣겠다는 각오를 한다. 그래야 대화가 될 듯하다.


  “저도 동영상을 보았습니다. 여러 번 반복해서요. 아이가 또 목을 졸랐다고 했으니, 목 조르는 것으로 오해하게 되었을 것 같습니다. 얼마나 속상하셨어요.”

 “오해요?”, “편들지 말아 주세요.” 

험악한 분위기가 되었다. 

 “올해 온 선생님인데 다른 학교에서는 어땠는지 알 수 없는 것 아니에요? 교장선생님은 그 선생님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는 건가요? 그전 학교에 알아보기는 했나요?”

 “네, 제가 겪어 보고, 신뢰하게 되었어요.”


 가시 돋친 말을 쏟아내기도 하고,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기도 한다. 나도 점차 진이 빠지는 것 같다. 그 무렵, 학부모 사이에서 갈등을 못 이겨 극단 선택을 했다고 한 어느 교사 이야기도 떠오른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두 시간 이상을 이야기하게 되었고, 담임에 대한 나의 신뢰를 확고하게 이야기할 필요도 느끼게 되었다. 

  나는 그녀가 우리 학교에 처음 올 때보다 너무 여위어 안타까워하고 있다. 이른 아침 시간에 보아왔던 그녀의 모습은 늘 아이들과 함께하고 있고, 상냥하다. 아이들도 그녀를 좋아한다. 일 전에, 체육 시간에는 시범을 보이다 다리를 다쳤지만, 아이들을 위해 붕대 투혼 출근하고 있다. 


  그녀에 대해 이야기하며 붕대 투혼을 말하자 학부모도 잘 알고 있다 한다. 표정이 누그러지는 모습도 보인다. 학급에 보결 수업을 들어갔을 때 다루기 힘든 아이가 있어서 선생님의 힘들어하는 모습을 본 것도 이야기도 하게 되었다. 

  “아이는 선생님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요?”

  “저도 이 일이 있기 전까지는 선생님을 좋아했고, 아이는 지금도 선생님을 좋아해요. 선생님도 자기를 좋아해 준다고 믿고 있어요.”

  그러더니 눈가가 촉촉이 젖는다. 나도 울컥하는 감정이 올라온다. 나는 말없이 손을 잡아주었다. 선생님도 엄마도 어젯밤은 너무 힘든 시간을 보내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그 학부모의 마음 깊은 곳에는 담임에 대한 신뢰가 있었고, 아이의 마음에도 선생님을 좋아하고 따르는 라포가 잘 형성되어 있었다. 


  한참을 말없이 앉아있다. 그러더니, 선생님을 만나 뵙고 가겠다고 한다.      

   이 일이 있기 전 교직원 간담회에서 스스럼없는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을 때, 

 한 교사가 나에게 뼈 있는 질문 한 것이 떠올랐다. 


  “교장선생님은 학부모와 교사가 갈등 상황이 되었을 때 누구 편이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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