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교사 흉기로 찌른 20대, 교사가 학교에서 목숨을…. 연이은 교사 관련 뉴스가 나온다. 나의 교사 시절이 떠오른다. 나는 내가 잘해 주었던 아이들이 먼저 떠오른다. 그러나 나에게 혼났던 아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물론 나는 그 아이들에게 모든 게 너희들을 위한 것이었다고 말했고, 학급 규칙을 만들어 그에 합당하게 혼을 냈기 때문에 바르게 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정말 오래전 이야기이지만 말이다. 일일이 기억에 남아 있지도 않는 그 일들이 오늘날에 있었다면 나는 아동학대로 곤경에 처했을 수도 있다.
그때도 쉽게 교사 노릇을 한 건 아니지만 지금, 교사가 아니기에 감사한 마음이다. 먼저 교사로 묵묵히 자리 지키는 그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나의 부끄러운 이야기와 감명 깊었던 강의 내용을 소개해 본다.
오랫동안 서로 연락하며 지내고 있는 학부모가 있다. 물론 그 학부모의 자녀인 나의 사랑하는 제자도 가끔 연락한다. 그러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담임했던 그 아이의 주례를 여러 번 거절 끝에 하게 되었다. 결혼식을 앞두고 미리 제자와 제자의 신부가 함께 만났던 날은 아찔했다. 나는 제자의 좋은 성격과 학급 임원을 맡았던 일을 떠올리며 신부 앞에서 신랑을 자랑하려는 마음으로 나갔다. 제자와 신부는 너무 이쁘고 서로 잘 어울려 보여 기뻤고, 제자가 자랑스러웠다.
그런데 갑자기 성격 좋은 제자가 나에게 혼난 이야기를 꺼냈다. 학년별 담임들께 혼난 이야기도 꺼내서 내가 부끄러워졌다. 제자는 선생님들이 혼낼 때 특징을 자세히도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내가 잘했던 일만 떠올리고 있었는데 제자는 혼난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부끄러운 마음을 뒤로하면서, 제자의 주례에 더욱더 마음을 다했고, 지금도 잘 지내고 있는 제자의 앞날을 위해 늘 기도하고 있다.
힘든 요즘 세상의 스승과 제자를 위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내가 교직 생활을 하면서 가장 가슴에 울림을 주었던 분의 강의 내용을 풀어 본다. 나는 이 강의를 들은 후 힘든 아이들을 위해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현장에서 애쓰는 선생님 한 분 한 분의 역할이 얼마나 큰지 명심해야 하는 강의였다.
“편지를 보며 후회 많이 했습니다.”
떨리는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나는 그의 목소리에 진정성을 느낄 수 있었고 두 손을 꽉 잡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의 이야기를 마음속에 새겼다.
그는 신혼의 고등학교 남교사다. 그가 다니는 학교는 농어촌에 위치한 고등학교로 문제의 아이들이 많은 학교다. 수업 시간이면 아이들은 대부분 엎드려 있거나 잠을 잔다. 교사는 수업을 진행하기 어렵다. 그나마 교실에 앉아만 있어도 감사하다. 교실 밖을 배회하며 학교에 오지 않는 아이들도 많다. 말썽을 일으켜 보호자 대신 파출소에 불려 간 일도 부지기수다.
‘이 아이들을 어떻게 하면 잘 돌볼 수 있을까?’
점심시간이 되자 털래털래 그는 학교 앞 보금자리로 가서 아내와 함께 점심을 먹기 위해 교문을 나선다. 그런데 한쪽 귀퉁이에 학급 아이 한 명이 보인다. 점심을 못 먹고 돌아다니던 녀석이 틀림없다. 녀석을 불렀다. 도망갈 듯하더니 멈칫거린다.
“P야, 점심은 먹었니?” “아뇨….” “그래, 나랑 같이 우리 집에 가서 라면이라도 먹을래?”
그 녀석은 말도 없이 따라온다. 배가 고팠던 모양이다. 그런데 한 명이 아니다. 한 녀석이 더 있다. 둘이 세트가 되어 따라온다. 아내는 깜짝 놀라며 아이를 맡는다.
허겁지겁 먹는 모습을 보니 잘 데리고 왔다는 생각이 든다. 그 녀석은 다음날도 점심시간이 되면 교문 앞에서 멈칫거린다. 또 데리고 간다. 점점 아이들 수가 늘어났다.
차츰 아이들이 교실로 들어왔다. 점심시간의 라면 한 그릇으로 아이들과 대화하게 된다. 어디든 마음 붙일 곳이 없는 아이들이다. 저녁 시간까지 함께 하게 된다. 좁은 아파트에 덩치가 어른 같은 남자아이들이 함께 있으니, 신혼의 아내 눈치가 많이 보인다. 그러나 어른들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살아가는 어려운 환경의 아이들을 내버려 둘 수가 없어 보살피다 보니 어느새 애들이 신혼살림에 함께 하는 식구처럼 되어버린다. 인내하며 받아 준 아내가 정말 고맙다.
할 일 없이 돌아다니며 싸움이나 하고 못된 짓만 하는 시간을 줄여주기 위해 집에 모여 있는 아이들에게 저녁 시간이 되면 공부할 거리를 갖다 준다. 녀석들은 공부라고는 하지 않던 아이들이었지만 학교 자체가 워낙 공부하지 않는 아이들이 모인 학교인지라 조금만 공부하면 성적이 쑥쑥 오른다. 성적이 쑥쑥 오르니 재미가 난 아이들이 공부에 맛을 들이는 모양이다. 작은 집에 아이들이 모여 있으니 너무 좁아 이사를 하기로 했다.
외곽에 넓은 집을 찾아 이사하려고 하니 주변에서 집을 주지 않으려고까지 한다. 선생님 집이지만, 문제가 많은 아이가 몰려다니고 있어 보이니 집을 주지 않으려는 것이다. 겨우 마을 사람들에게 사정사정해서 좀 떨어진 허름한 집을 구하게 되었고, 아이들과 함께 집수리해서, 지낼 수 있게 되었다.
아이들은 선배가 후배를 가르치기도 하면서 지내게 되었고 대학에 가는 아이도 늘어났다. 대학을 입학한 후에 대학생이 된 선배로, 졸업한 후엔 직장인이 된 선배로 그를 도와주기 위해 다시 찾아오는 제자도 있다. 아이들에게 한 일들이 너무 뿌듯하다. 그는 페스탈로치라도 되는 듯 느껴지기도 한다. 그가 했던 일들이 방송을 타며 알려지기도 했던 일을 영상으로 직접 보여주니 존경의 마음이 크게 다가왔다.
특별히 외로움이 크게 보였던 단 한 명의 아이만 아무리 애를 써 봐도 겉으로만 돌더니, 결국 어느 날 나가버렸다. 몇 번 찾아서 데리고 왔었는데 그도 힘들었던지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며 찾기를 멈추었다. 아니, 포기했다.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그는 낯선 편지 한 통을 받게 되었다. 자기를 위해 소견서를 써 달라는 내용인데, 교도소에서 온 거다. 함께 하기를 끝내 거부했던 그 녀석이다. 아무리 자기 주변을 살펴보아도 자기를 위해 소견서 한 장 써 줄 사람이 없었나 보다.
“저는 그 녀석을 떠올리며, 밤새도록 편지를 썼습니다. 후회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왜 그때 제가 좀 더 애쓰며 찾지 않았을까? 포기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내가 교직 생활을 하면서 들었던 가장 뭉클했던 강의이고, 힘든 아이를 대할 때마다 떠오르는 강의다. 그는 부연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제가 그 애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잘 보살폈다면 그 녀석이 사회에 끼친 일들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피해자도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히려 건실하게 자라서 사회에 기여했을 텐데요…. 그 차이는 너무도 큽니다. 금전으로만 따질 수 없는 문제이지만, 그가 끼친 피해액은 없었을 것이고, 사회에 기여했을 때의 이익도 사라진 겁니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 던 시절과는 멀어도 너무 먼 학교 현장에서 오늘도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선생님들께 존경과 위로의 마음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