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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란 Sep 02. 2023

영어 난독

                                                               

  나는 책을 소리 내어 낭독하기도 좋아한다. 전화하면 사람들은 내 목소리가 참 좋다고 한다. 나는 목소리에 자신 있는 사람이다. 그 말에 심취해서 대학졸업 후 발령대기 하는 동안 아나운서 시험을 보러 가기도 했으니 말이다. 물론 떨어졌지만. 

  전화로 상담하면서, 귀부인 대접을 받은 적이 있다. 전화상담을 먼저 한 후 직원을 찾아갔더니, 직접 일어서서 좋은 볼펜을 준비해서 주면서 서류를 준비하고 상담을 마치고 일을 잘 마무리 짓기도 했다. 그런데 이후, 그 직원을 만날 때부터는 그냥 입구에 있는 볼펜으로 작성하게 해서 실망한 적도 있다. 겸손하게 말하자면, 겉모습에 비해 목소리가 이쁘다고 해 두겠다. 나는 어쨌든 목소리에 자신이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공부시간에 선생님이 “책 읽을 사람?” 하면, 어느 선생님이든지 무조건 손을 들었다. 서서 낭독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이다. 고등학생이 되어 영어시간에도 낭독은 해 대었다. 발음이 좋다고 하니 진짜 그런 줄로 알았다. 책을 읽으면서 곧바로 해석은 자신 없었지만 스팰링에 맞추어 읽는 것은 좋아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영어시간이다. 그날도 그 영어선생님은 독해 부분을 “읽을 사람?”했다. 우리 반 아이들은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나는 앞뒤를 둘러보다 누구라도 손을 들어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내심 읽기는 그냥 영어 스팰링대로 읽으면 되니 읽어 보고 싶기도 하다.

 

  “저요.”

  살짝 손을 들어 읽겠다고 했다. 

  “응, 그래 읽어 봐.”

  “~~~~~~~~~~~~~”


  나는 아주 신나게 읽었다. 뜻은 모르겠지만 ‘스팰링 따라 읽는 것이야 뭐~~’

  자신 있게 읽고 뿌듯한 마음으로 자리에 앉았다. 이젠 편안한 시간이다. 그런데 영어 선생님의 다음 말이 뒤이어져서 깜짝 놀랐다.  


  “응, 발음 좋아. 그렇게 발음도 좋으니 뜻도 잘 알 거야. 해석도 해 봐.”

  엉거주춤 다시 일어섰다. 비실비실거리며 책을 다시 펴 들고.

  나에게로 향하는 친구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조용한 교실에서 100개가 넘는 까만 눈이 모두 내게로 쏟아지고 있었다. 너무 난감했다. 해석은 자신 없었다. 


  내 변호를 하자면, 그 시절 우리들이 하는 영어는 대학 졸업생들도 중학교부터 대학까지 영어를 공부했지만 외국인과 대화는 잘 안 되는 게 일반적이었다. 심지어 영어선생님들도 외국인과 대화 못하는 선생님들이 있었다고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

  엉터리로 단어를 꿰어 맞추며 떠듬거리고 있었다.  

 “그게 뭐야!! 뜻도 모르면서 ***”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었다. 먼저 책을 읽겠다고 손을 든 내 손이 너무너무 부끄러웠다. 아이들이 모두 말없이 조용해지면서 달그락 소리조차 없는 듯, 작은 숨소리만 들리는 듯했다. 모두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았다. 그 시간 이후 영어시간은 나에게 불편하기만 한 시간이 되었다.      

 예비고사 성적도 영어가 가장 낮았던 것으로 안다. 영어 공부를 하려고 하면 그 시간이 나에게로 다가온다. 왜 자꾸 그 시간이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영어를 잘 못하게 된 핑계를 나 스스로 대고 있는지 모른다. 


  나는 그 상황을 만든 건 선생님이 아니라 나였다고 객관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날의 상황이 떠올려지게 된 것도 선생님이 아니라 ‘나의 잘못이다.’라고 생각은 된다. 그런데 영어를 떠올리면 그날의 상황이 불편하게 다가온다. 바보처럼, 영어 난독으로 빠지고 있다.


 ‘선생님, 해석은 아직 해 주시지 않았잖아요.’     

  교사로 발령을 받고 얼마 안 있어, 사람들은 우리나라 기업들의 무대가 세계화로 나아가면서 해외로 진출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휴가가 되면 여행도 해외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 

  나도 영어를 잘해 보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교사들이 하는 영어 연수가 있으면 찾아서 해 보기도 하고 그 외에도 영어 공부를 할 기회가 있으면 애쓰며 참여했다. 그러나 결과는 신통치 못하다. 영어 잘하는 사람들을 보면 부러움만 생긴다. 


  **스쿨이라는 온라인 영어 학습사이트에는 초창기 멤버로 참여해서 지금까지 평생회원으로 등록은 되어 있다. 평생회원은 꾸준히 하지 않으면 회원자격이 유지되지 않는다. 지금은 남편이 회원유지를 위한 만큼만 참여하고 있는 정도다. **스쿨이 남편에게 지워진 짐이 되고 있다. 그 틀을 깨고, 나도 영어 잘하고 싶다. **스쿨! 내가 갈 게. 영어 난독 타파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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