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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란 Sep 02. 2023

후니

     

  교실 맨 뒤, 후니 자리가 비어있다. 아침 자율학습 시간에 후니를 본 것 같은데, 1교시 수업 시작하려고 보니 보이지 않는다. 그녀의 목소리 톤이 높아진다.

  “후니 안 왔니?”

  “책가방 있어요. 조금 전에 막 뛰어나갔어요.”

  ‘이 녀석 또 어딜 간 거야?’


  반에서 약간 부산스럽고, 말이 많은 아이다. 준비물을 안 가져올 때가 자주 있어서 “준비물 잘 챙겨 오자.” 여러 번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녀가 최대한 이해를 해 주면서 생각해 본다 해도, 대부분 학부모 도움이 필요했던 기록물 등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밤늦게 돌아오는 부모님이 아이의 알림장을 보고 챙겨주기 어려웠을 수도 있다. 그녀가 느끼는 후니는 초등학교 2학년이지만 어른스러운 말을 하기도 하고 반항기(?)가 작동하기도 하는 듯한 표현을 자주 하는 녀석이다. 어쩌면 이른 사춘기를 겪는 아이인가 싶은 정도다. 갑작스레 엉뚱한 질문을 해서 수업 진행이 다른 방향으로 갔다 오기도 한다. 가끔 ‘이 녀석이 선생님인 나를 놀리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러나 그 애는 영리하고 아이들과 잘 어울리며, 재미있는 표현을 자주 해서 교실 분위기를 주도할 때도 있다. 수업 시간 중에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해서 좀 부담스럽기도 한 녀석이다. 그 녀석 때문에 수업 상황이 혼란스러워질 땐 ‘초등학교 2학년 조그만 꼬마 한 명을 내 맘대로 할 수 없다니’하는 자괴감이 들 때도 있다.      

  그럴지라도 교실에서 자기 자리는 잘 지키는 녀석인데 갑작스레 없어졌으니 그녀는 걱정이 가득하다. 곧바로 수업을 시작해야 하니 빨리 찾아보기로 하고, 창문을 통해 운동장을 내려다보니 좀 전까지 공을 차던 아이들 몇몇 무리가 현관으로 하나둘 사라져 들어간다. 거기도 후니는 보이지 않는다. 운동장은 지우개로 지운 듯 점점 하얀 도화지처럼 바뀌더니 조용한 운동장이 되었다. 1교시는 대부분 체육 수업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화장실도 가 보았지만 보이지 않는다. 복도에도 이젠 아이들이 없다. 계단 쪽에서 발걸음 소리가 나서 그녀도 모르게 계단 쪽을 주시한다. 


  “후니니?”

  늦게 등교한 아이 한 명이 가방을 들고 털레털레 올라오고 있다. 후니가 아니다. 그 학교는 그녀가 발령받아 오는 해에 새로 신설된 초등학교다. 그전 해에 개교해야 했으나 등·하교할 때 학생들의 안전이 우려되는 지역이 많다는 이유로 학부모 항의가 거세어 개교가 한 해 미루어지기도 했던 곳이다.


  혹시, 아이가 학교 밖으로 나갔다면 우려가 된다. 1교시 수업도 수업이지만 아이들을 두고 교실 밖으로 후니 찾으러 나갈 수도 없고, 아침에 있었던 아이가 없으니 찾아야 하기도 한다. 후니 엄마께도 전화하니 전화가 안 된다. 


교무실로 인터폰 해서 교감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아이를 찾아야 한다고 도움을 요청했다. 깜짝 놀라 서둘러 대책을 세워준다. 일단 방송으로 아이를 찾는다는 안내를 하고, 교무실 인력을 총동원해서 학교 주변을 찾아보겠다고 한다. 


  “2학년 **반 *후니는 이 방송을 들으면 즉시, 교실로 가기 바랍니다.”


  ‘아이가 진짜 교실로 못 돌아오면 어떻게 하지?’하는 걱정과 온갖 뉴스들이 떠올라 수업을 제대로 할 수 없다. ‘제발 무사히 돌아만 와라.’ 기도하는 마음이다.  

  ‘그 녀석은 어떤 상황에서도 대처를 잘할 녀석이니 걱정 안 해도 되는 애야’하는 믿음의 마음과 초등학교 2학년 아이가 조급한 마음으로 혼자 큰길을 오가는 건 위험하다는 생각이 한꺼번에 올라온다. 


  반 아이들에게는 등교할 때 큰길을 건너는 아이들이 많기 때문에, 등굣길 안전 이야기도 하고, 교감과 기사가 후니 찾으러 학교 주변을 다니고 있으니 무사히 돌아올 것이라는 말을 하며 

  “여러분들은 우리나라의 소중한 보물이어요. 안전하게 잘 자라야 해요” 

  아이들 한 명 한 명,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고 있다.


  “선생님, 후니 왔어요.”

  교실 뒤쪽으로 그 애가 보인다. 슬금슬금 나의 눈치를 보며 녀석이 자기 자리에 기어들어 가듯이 앉는다. 혼날까 봐 걱정하는 표정이다. 아이들의 눈이 일제히 후니에게로 향하더니, 다음 순간 그녀의 입을 바라보고 있다. 그녀에게 혼날 후니를 생각하는지 긴장된 표정들이다.


  ‘무사히 왔구나.’ 머릿속으로 안심인데, 그녀는 애를 보자 말문이 막힌다. 가슴에서 울컥하는 기운이 올라오고, 눈에도 뜨거운 무엇이 올라온다. 위험지역을 뚫고 살아 돌아온 사람인 듯 감사하는 마음이 더 크다. 비실거리며 불편한 모습으로 앉는 녀석에게 순간 ‘욱~’하는 마음과 ‘다행’이라는 감정이 함께 올라온다. 화가 나지는 않는다. 감사의 마음이 더 크게 다가왔다. 안전하게 돌아온 녀석에게 편안함을 주는 말을 하고 싶어 진다. 


  “안전하게 왔으니 됐다. 후나!”

  “그런데, 후나, 혹시, 오면서 교감 선생님이나 편 기사님 만나지 않았니? 선생님이 너 걱정 돼서 찾으러 가시게 했지.”

  그녀가 최대한 부드러운 말씨로 이야기한다.

  “어딜 갔다 온 거야?” 

  “준비물 가지러요.”

녀석이 고개를 푹 숙인다. 혼날 것 같은 분위기로 교실에 들어온 후니는 반겨주는  그녀의 반응에 오히려 어색해한다. 아니 감동한 표정으로 미안함이 가득하다. 자기를 그렇게까지 걱정해 주리라 생각지 못했나 보다. 옆자리에 앉은 아이들이 방송도 하고 찾으러 다닌 이야기를 해 주고 있다. 준비물 이야기 자주 한 것이 그녀에게는 또 미안한 마음으로 다가온다.   

  

  그 후 녀석은 사춘기 겪는 아이 모습의 반응이 사라졌다. 오히려 그녀의 이야기에 더 집중해서 듣고 따라 주는 아이가 되었다. 후니가 이젠, 똑같은 의문도 부정적인 질문이 아닌, 긍정의 질문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그녀는 느낄 수 있다. 반항적인 아이가 아니라 순종적인 아이로 그녀에게 다가왔다. 


우리가 소중한 보물로 여겼던 아이들, 후니는 정말 보배가 되어 우리나라를 이끌어 가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녀는 화내지 않고 오히려 다정히 말했던 순간을 회상하니 교사로서 뿌듯하다. 그때의 일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이젠 어엿한 대한민국의 청년으로 살아가고 있겠구나. 잘 지내고 있니? 보고 싶다. 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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