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선생님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경란 Dec 19. 2023

찐 선생님

교실은 아수라장이다. 벽이 있는 쪽은 대부분 친구들이 벽에 붙어서 서로서로 물구나무서기 하느라 바쁘고, 잘하는 아이들은 교실가운데서 벽에 기대지 않고 물구나무서려고 연습하기도 한다. 우리는 아침 일찍 와서도 물구나무서기 하고 쉬는 시간, 방과 후에도 서로서로 잡아주면서 도움 준다. 집에 가서도 이불을 바닥에 깔아 두고 벽에 붙어서 발로 차며 안간힘을 쓴다. 나는 운동은 잘 못하는 편인데 애를 쓰니 조금씩 된다. 물구나무를 서게 된 날 마치 남들이 못하는 큰일을 내가 해 낸 듯 기분이 날아갈 듯하다. 부모님도 달리기는 매일 꼴찌 인 딸의 운동 모습에 흐뭇해한다.      

  특별한 줄넘기도 하게 되었다. 줄넘기를 배우는 기간에는 거의 매일의 시간을 줄넘기에 매달렸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줄넘기를 했고, 한 번에 두 번 돌리며 뛰는 2분의 1박과 엑스 자, 두 명이 같이 돌리며, 들어오며 나가며 뛰기도 쉽게 하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줄넘기를 했다.      

  수업을 마치면 우리는 교실에 왁스를 먹이며 청소하기도 한다. 조그만 초크로 교실 바닥을 문질러서 윤을 내는 청소이다. 아이들이 엉덩이를 치켜들고 두 손으로 걸레를 쥐고 교실 끝에서 끝까지 바닥을 닦으며 달리다시피 하면서 청소한다. 교실 바닥 곳곳에 않아 윤을 내기 위해 문지르기도 한다. 청소를 마치면 또 물구나무서기, 줄넘기를 한다. 오매불망 운동연습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일이었다. 진계술 선생님, 가장 잊지 못하는 선생님이다. 교실에서 교육과정에 맞추어 열심히 공부하게 한 선생님들이 많을 텐데 나는 늘 그분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칭찬을 많이 받은 것도 아니고, 나에게 특별히 대해 주지도 않았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그 선생님 이야기를 종종 한다. 6학년 때, 전학 갔더니 나는 그 학교에서 줄넘기 잘하는 아이에 속했다. 달리기를 못해서 늘 꼴찌이고 심지어 이어달리기를 하면 다른 사람은 앞으로 가는 데 뒤로 가는 것 같다는 소리까지 들었다. 선생님은 누구나 연습하면 잘할 수 있다며 격려해 주었고, 운동에 늘 자신 없었던 내가 실제로 물구나무서기를 하게 되고 줄넘기를 잘하게 되었다. 그분은 내게 잊을 수 없는 선생님이다.     

  그랬던 내가 선생님이 되었다. 5학년 때 나의 선생님처럼 아이들에게 운동을 많이 하게 해 주고 싶었다. 체육시간에는 운동장에서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했다. 선생님들이 하는 수업대회라는 것이 있고 나는 어떤 과목을 할까 고민하게 되었다. 진 선생님처럼 하고 싶었으나 자신이 없다. 내가 전공했던 과목 수업을 하기로 하고, 아이들에게 과학실험에 관한 기본 실험을 많이 했다. 모든 과목을 신경 써서 해야 하지만, 특히 과학수업은 사전 준비도 더 철저하게 준비해서 수업했다. 나와 함께 1년을 보낸 아이들은 과학 수업에 있어서는 관찰기록을 하거니 실험기구 다루는 활동을 자연스럽게 잘하게 되었다. 물론 수업대회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그다음 해 스승의 날, 내가 받은 편지에서 한결 같이 과학실험 많이 한 기억들을 말해 주었고 과학자가 꿈이라는 아이들, 과학 선생님이 되겠다는 아이들, 발명가가 되겠다는 아이들이 많았다. 나와 함께 보낸 1년으로도 ‘아이들에게 제법 영향을 줄 수 있었겠구나’하는 마음이다. 나로 인해서, 단 한 명의 아이라도 우리나라 과학에 기여하는 사람이 나오게 되었다면 나는 성공한 교사이지 않았을까? 그 아이가 어른이 되었을 때 내가 모를지라도 나와 함께 했던 활동들을 기억해 주는 아이가 있기 바란다.      

  교사로 살아온 나에게 영향을 준 진 선생님은 내가 선생님을 기억하면서 교사로서 살아간다는 것을 모르실 것이다. 나 또한 내가 모르고 있을지라도, 나의 제자들이 나를 기억하며 자기 삶에 좋은 영향을 주는 선생님으로 기억하고 있다면 그게 가장 큰 보람이다. 진 선생님은 찐 선생님이다. 나도 찐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전학생 라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