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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란 Dec 19. 2023

전학생 라니

 “지금 전학 오는 애들은 안동여고 입학 합격률을 떨어뜨릴 애들이야.”

  “…….”     

  교무실에서 너를 흘깃 훔쳐다 보며 한 말씀하고 가는 여교사의 이 말 한마디에 너는 깊은 상심이 되었을 거야. 한 마디도 대꾸하지도 못했고 고개만 숙이고 있었지, 어쩌면 못 들은 척했을 수도 있겠구나. 그날, 전학생이었던 라니야, 네가 전학을 간 중학교 3학년 2학기 첫날에 들은 그 말은 너의 뇌리에 꽉 박혀 있을 것 같아. 낯선 교무실에 들어 선 너는 당연히, 모두가 너를 반겨 주리라고 생각했을 거야. 초등학교 때 벌써 두 번의 전학 경험이 있었고 그때마다 친구들과 선생님들은 반겨주었으니 당연히 그러리라 생각했던 거야. 그런데 지나가던 여교사가 너에게 그런 소리를 했으니 얼마나 놀랐겠니? 그 후, 물론 안동여고에 당당히 합격했지만, 중학교 3학년 2학기가 너에게는 블랙홀 같은 기간이 되지 않았을까? 그날의 상심으로 너는 3학년 2학기에 찍는 졸업앨범 사진도 찍지 않았어. ‘이 학교 졸업생이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 그렇다고 그전 학교에 가서 졸업앨범 사진을 찍을 수도 없었는데 말이야. 전학하기 전에 함께 했던 친구들을 많이 그리워하여 오랫동안 연락하고 지내기도 했었지.

   중학생 라니야, 새 학교가 낯설었지? 낯 선 교무실에서 선생님께 그런 말을 들었으니 얼마나 마음이 힘들었을까? 그 교사를 대신해서 사과한단다. 아마, 그 당시는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를 갈 때 입학시험을 보고 합격, 불합격이 정해지니 교사들은 그 주변지역에서 가장 선호하는 학교인 안동여고 입학률을 높이려고 애를 쓰고 있었지 않을까 생각은 되는구나. 그러나 아무리 그렇더라도 전학 오는 학생에게 그런 말을 한 것은 교사로서 해서는 안 되는 말이고 행동이라고 생각된단다. 전학생이 겪을 수 있는 어려움을 해소해 주어야 할 교사가 전학생에게 어려움을 겪게 만든 결과를 가져다주었다고 할 수 있겠구나.        

  라니야, 너는 벌써 초등학교에서도 두 번이나 전학을 했었고, 첫 번째 전학은 3학년 때 이루어졌지. 3학년 때 만난 선생님은 남자 선생님이었는데 참 무서운 선생님이었어. 공부시간에 아이들이 말을 잘 듣지 않는다며 선생님이 자살하겠다는 말을 해서 반 친구들은 깜짝 놀랐고, 라니는 그 단어를 그날 처음 들었어. 그날의 기억은 아직도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 있고, 그 말을 어딘가에서 들을 때면 선생님이 떠오르니 그건  트라우마라 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잘 견디어 내었어.     

  두 번째 전학은 6학년 때였지. 6학년 1학기 3월 개학 첫날이었어. 상주 중앙초등학교 전학생이지만 라니는 전혀 어려움 없었고, 아이들과도 잘 지냈지. 중학교 입학시험을 보았던 시절이었으니, 학교에서 밤늦도록 수업을 하고 집에 오는 날이 많기도 했지. 우리 반 아이들은 담임선생님께 과외수업을 받는 아이들도 많았어. 라니는 담임선생님께 과외수업을 받을 만한 형편까지는 안 되었어. 6남매의 맏딸이니 집에 와서 동생들을 돌보기도 해야 하는 때였지. 네가 전학 온 그때 살던 집은 여러 가구가 모여 사는 마당이 넓은 집이었어. 그 집 집주인 딸은 너와 같은 반이었지만, 중학교 진학을 하지 않았어. 나는 셋방 사는 집 아이이지만 진학을 했지. 아버지는 네가 성적표를 받아오면 성적표를 꺼내어서 큰소리로 읽어 주었어. 과외수업을 하지 않아도 잘했다고 자랑하듯이 말이야. 너는 그 옆에서 촐랑촐랑 대며 아버지가 자랑스럽게 읽어주는 성적표를 들여다보곤 했지. 크게 잘한 것 같지 않았지만 아버지는 자랑해 주었어. 학교에서도 선생님이 어려운 비례 문제를 내어서 풀었던 날, 우리 반 아이들이 모두 잘 못 풀었다고 차례대로 회초리로 손바닥을 맞았어. 네 차례가 되어 공책을 들여다보시고 라니 혼자 맞았다고 큰 소리로 말해 주며 지나가셨어. 어쩌다 맞은 것 같은데 너무 긴장하고 있어서 너도 잘 모르는 듯하더라. 그날도 과외 안 하고도 잘한다며 칭찬 들었지. 너는 전학생이었지만 전혀 어려움 없이 다른 반 아이들과도 친해지며 잘 지냈어. 그때의 전학도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겠어.     

   그런데 말이야, 중3이 되었을 때 아버지가 안동으로 전근을 가셨어. 부모님은 중3이니 전학을 안 시키고 바로아래 초등학교 5학년 여동생과 둘이 자취를 하게 했어. 자취를 하며 밥도 잘 안 해 먹고 학교도 힘들게 다녔던 것 같아. 너는 만화책을 좋아해서 맨날 만화방에 가곤 했지. 만화방만 가는 불량학생으로 보일 수 있는데 말이야. 한 학기를 자취하게 해 보니 도저히 힘들 것 같아 부모님이 결단을 내리셔서 중학교 3학년 2학기이지만, 너와 동생을 안동으로 전학시키게 된 거지. 너는 중학교 3학년, 동생은 중학교 1학년이었어. 네가 전학을 한 날, 교무실에서 기억에 생생히 남는 그 말을 듣게 된 것이지. 충격이었다고 해야 할 것 같아.


  전학생 라니야. 교사가 된 내가 사과할게. 그리고 다짐할 게. 아무리 학교, 학급이 바라는 목표달성에 어려움이 있는 아이 일지라도 나는 아이들 개개인을 소중히 여기고 마음에 상처 주는 말을 않는 교사가 되겠다고 말이야. 그리고 일시적인 질서유지나 통제를 위한 위협적인 말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한단다.      

  너는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고. 좋은 선생님이 되기 위한 많은 노력을 했어. 좋은 선생님들의 모습을 본받기도 했지만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인 교사들의 모습에서도 그렇게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며 실천한 것은 참 잘했다고 생각되는구나. 항상 아이들 앞에서 극단적인 언어, 상처 주는 말을 사용은 하지 않아야 한다는 다짐 하며 교직생활 한 것 같구나. 라니의 힘들었던 경험이 더 나은 라니샘을 만들게 하는 밑거름이 되지 않았을까? 다가오는 너의 삶에서도 너의 언행 하나하나가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잘 생각하고 말해야 해. 지금 여기, 함께 하는 모두가 라니의 삶 속 주인공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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