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 카드 사용하는 첫날이다. 나의 호적생일은 원래 생일보다 9개월이나 늦다. 우리 때에 태어난 사람들은 출생신고가 늦어진 사람들이 많다. 그 당시는 어린 생명들이 태어난 후 아기 때에 많이 죽기도 했다고 한다. 과연 살 수 있을지 두고 보아 살 수 있다고 확신이 설 때 호적에 올리기도 했으니 내 호적이 좀 늦어진 것은 별문제 없다고 봐야 한다. 그 덕에 나는 정년퇴직을 6개월 더 늦게 하게 되어 원래 태어난 생일을 기준으로 했을 때보다 봉급을 6개월이나 더 받아먹은(?) 셈이다.
대신 지하철을 무료로 탈 수 있는 어르신 카드는 9개월 정도 늦어졌다. 그날이 오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르신 카드를 받는 것이 기쁘지 않다.
어르신 카드를 신청하는 것도 게으름을 부려 제때에 하지 않아서 일주일 늦게 사용할 수 있었다. 일주일은 어르신이 아닌 척하며 다닌 것이다.
오늘부터 어르신 카드를 사용해도 된다고 하니 그 카드로 남편이 입원해 있는 병원까지 가기로 했다. 남편이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보호자 역할을 하기 위해서다. 배낭에 간단한 물품을 넣고 핸드백과 과일 가방까지 들고 보니 작은 짐이 셋이다. 좀 번거롭기는 하다. 남편의 병명도 나이 들어오게 되는 병이다. 일찍 발견하고 곧바로 응급실로 가서 다행이었다. 일주일만 입원하면 퇴원이다. 감사한 마음과 건강에 대한 경고라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이 든다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하다. 그러나 인정하고 싶지 않다. 아직은.
개찰구를 통과하기 위해 파란색 어르신 카드를 꺼내어 처음으로 사용했다. 나의 카드는
“또딕!”
두 번 소리를 내었다. 젊은 친구들은 한 번의 소리
“딱!”
으로 통과다. 잠시, 나이 드신 분의 카드 소리를 들으며 살펴보았다. 나처럼 “띠딕!”한다.
어르신과 젊은이의 카드 소리가 다르다. 나도 지난주까지는 “띡!”하며 지나갔는데 모르고 있었다. 두 번 울리는 그 소리가 반갑지 않다. 그 표시가 싫다. 나는 젊은이처럼 가볍게 걸어서 지하철을 타러 계단을 씩씩하게 내려갔다. 마치 어르신 아닌 것처럼.
나는 지하철을 타도 자리에 잘 앉지 않는다. 되도록이면 서서 가도록 한다. 오랜 직장생활에서 서서 활동하던 습관도 있지만 퇴직 후 하이힐을 신지 않고 운동화를 신고 다니니 발이 편해서 얼마든지 더 서서 갈 수 있다. 몸의 근육을 살리기도 해야 하고 특히 다리 근육을 살리기 위함이기도 하다.
‘서서 젊은이들처럼 움직이자.’
다짐해 본다.
지하철이 전역을 출발했다고 하더니 막 들어온다. 타려고 보니, 아뿔싸 반대 방향이다. 차를 탄 후, 알았으면 어쩔 뻔했나? 남편이 입원한 병원은 내가 시내 방향으로 지하철을 타러 나갈 때 바쁘게 나가는 시내 방향이 아니라 가끔 해외여행을 하려고 공항을 이용할 때 가던 외곽 방향인데, 시내 방향 지하철을 타러 내려와 있었다. 정신 안 차리면 어르신 대접받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어르신 하기 싫다면서 행동은 어쩔 수 없구먼….’
서둘러 다시 올라가 반대 방향으로 다시 내려왔다. 깜빡깜빡하는 내 정신 좀 봐. 이젠 남편이 있는 **서울병원이 있는 곳으로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은 한산했다. 자리가 여유로웠다. 그러나 나는 선 듯 자리에 앉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모두 자리를 차지하고 앉을 동안 기다렸다가 자리가 많으면 앉는다. 그냥 서서 가고 싶다. 젊은이처럼.
내가 내려야 하는 역에 도착했다. 나도 사람들 속에 휩쓸려 내렸다. 나이 든 분들이 많아서인지 엘리베이터를 향해 몰려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또 어깃장을 놓는다. 나는 여유를 부리며 계단을 향해서 씩씩하게 걸어갔다.
‘걸어야 해. 걸으면 살고 앉으면, 누우면 죽는다.’
누군가가 말한 것 같다.
‘그래 어르신 아닌 것처럼 씩씩하게 걸어가자.’
개찰구를 통과해서 밖으로 나오기 위해 카드를 꺼내 터치했다.
“또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