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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란 Nov 14. 2023

사랑하는 금순 씨

 사랑하는 금순 씨

 

금순 씨 이야기다. 오늘도 그녀는 경로당으로 향한다. 자식들이 사 준 보행기가 동무다. 동무는 일전에 큰 딸이 사 준 두유와 과자 몇 개를 품고 있다. 품고 있는 것을 경로당 벗들에게 풀어놓을 생각을 하니 어쩐지 신이 난다. ‘나도 베푼다’는 마음이다. 쥐어짜며 살아온 금순 씨도 요즘은 넉넉한 마음이 생기고 있다. 집에 뭔가가 있으면 무조건 들고 경로당으로 간다. 


금순 씨는 4남 2녀 육 남매 첫째다. 그녀의 아버지는 일본에서 큰돈을 벌어와 부농이 된 분이고, 어머니는 작고 왜소해서 늘 어딘가가 아팠다. 그녀는 아픈 어머니 대신 살림밑천 맏딸 노릇하느라 공부보다 집안일에 더 매달려야 했다. 여자는 공부할 필요 없이 집에서 살림 잘 배워서 결혼 잘하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그녀의 아버지는 초등학교 5학년이 된 그녀에게 갑자기 많이 아파 사경을 헤맬 정도가 된 엄마부터 살려야 된다는 말로 학교도 다닐 수 없게 했다. 그녀의 희생으로 남동생들은 모두 대학 공부까지 하게 되었고, 학교 가는 친구들 먼발치서 보고 부러워했던 그녀는 두고두고 공부에 대한 아련한 마음을 가슴에 남겨 두게 되었다.  '나도 학교 다니고 싶다.' 


다행히 아버지의 바람대로 결혼 잘한다는 소리 들으며 결혼했고, 신랑은 그 당시 신식교육을 받은 사람으로 이웃 동네 부잣집 막내아들이고, 경북대학까지 졸업했다. 살림 잘하는 금순 씨에게 초등학교라도 졸업 못한 것이 아쉽지만 육 남매를 낳아 키우다 보니 아무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더구나 집안 한쪽 벽에 걸려있는 남편의 사각모 쓴 커다란 졸업사진은 마치 본인이 졸업한 듯 뿌듯하고 아쉬울 게 없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 

그러나 가끔 부부싸움을 하면 남편이 혹시 무시하는 것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하고, 아이들이 자라며 학교에서 가정환경조사서를 써 오라고 가져오면 애써 모르는 체한다. 필체 좋은 남편이 쓰도록 기다려야 한다. 

“나도 초등학교 졸업이라도 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딸들이라고 공부시키지 않은 아버지가, 아파서 사경을 헤매던 엄마의 그 당시 상황이 싫다. 그리고 애꿎은 아이들을 잡는다. 공부하라고 소리소리 지른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아먹는다’ 고 하니 일찍 일어나라고 또 소리 지른다. 

“나는 너희들 모두 다 원하는 대로 공부시키리라.”


사랑하는 어머니, 금순 씨

엄마가 하던 말이 떠오르는 날입니다. 

“너희 외할배가 나를 초등학교라도 졸업하게 해 줬으면 내가 이렇게는 안 산다.”

“일어나라. 고만!”

“해가 중천에 떴다, 고만!”

엄마의 잔소리가 참 싫었습니다. 싫어하던 마음이 모여 이렇게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면서도 엄마의 말 한마디가 떠오르면 글을 쓰게 됩니다. 글을 쓰며 위안이 되기도 하고 엄마를 이해하게도 됩니다. ‘나는 절대 내 새끼한테 잔소리 안하리라.’ 결심했었습니다. 제 자식을 키우며 절대 잔소리 안 할 줄 알았는데 잔소리하고 있는 제 모습을 보며 엄마 모습이 보이기도 합니다. 제 안에 엄마가 있어 엄마를 이해하게 되는 건가요? 

그제 회갑을 맞은 대구 동생 집에서 만난 엄마는 많이 약해져 계셨습니다. 예전의 기세 등등(?)하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 모습은 저의 미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애잔한 마음이 듭니다. 제가 엄마 이야기를 글로 써 보려고 하니 떠오르는 게 너무 많습니다. 큰 딸과 엄마, 엄마 이야기를 쓰다 보니 엄마는 4남 2녀 육 남매 맏딸이고, 저는 2남 4녀 육 남매 맏딸이네요. 엄마는 육 남매 맏딸로 희생하셨습니다. 다른 형제들 공부시키기 위해 희생하신 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육 남매를 위해, 아버지를 위해 희생하시기도 했습니다. 


제가 학교에서 근무하는 동안 「할머니 할아버지 한글학교」를 운영한 적이 있습니다. 졸업식장에서, 그분들의 희생에 고마워하며 그분들이 형제들을 대신해서 희생하신 분이시고,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있게 하신 분들이시라고 존경의 말씀 올렸습니다. 그분들 중 여느 한 분과 같은 분이 엄마였어요. 이 글을 쓰며 이제야 깨닫습니다. 


저는 맏딸로서 희생하지 않았습니다. 혹시, 희생하게 될까 봐 더 열심히 공부했던 것 같습니다. 가정이 어려운 줄 알면서도 교대를 졸업하고 또 대학을 가겠다고 들이대었습니다. 저를 돌아보니 저는 제 욕심대로 모두 해 왔습니다. 엄마의 잔소리를 싫어해서도 안 될 것 같습니다. 엄마를 이해합니다. 사랑합니다. 엄마, 감사드립니다. 

                                                                                                         2023. 11. 13. 

                                                                                                                                                             큰 딸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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