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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란 Aug 29. 2023

나는 말을 바꿨다

나는 말을 바꿨다

    

집중치료실에서 

 

“말이 이상하게 나와, 어눌해진 것 같아. 무슨 전조증상 같아….”  

   

자정이 가까워지고 있는 시간에 남편의 「전조증상」이라는 말을 듣자, 공포가 몰려온다. 주무시다가 갑자기 돌아가신 시아버님이 생각난다. 아버님 연세 57세 때, 손 한번 써 보지 못하고 급성 심근경색으로 돌아가셨다. 시골집 바로 옆에 사시는 작은아버님이 안동 시내 병원으로 급히 모시고 갔으나 어떻게 해 볼 수가 없었단다.


 창원에 살고 있던 우리는 이미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에야 연락받았다. 어머님은 중풍으로 쓰러지셔서 편찮으시고 연로하신 시할머님도 계시는데, 낮에 밭일까지 했던 아버님이 갑자기 그리되셨으니 우리 부부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남편은 운전해서 안동으로 가다 눈물이 앞을 가리자, 한동안 길옆에 차를 세워놓고 소리 내어 울다 가기도 했다. 그리고 시어머님까지 1년도 안 되어 돌아가셨다. 그 해는 우리 부부에게 너무 힘든 시련 그 자체였고, 가족력 걱정으로 남편 건강에 올인하겠다고 마음먹었던 해이기도 하다.      


남편도 건강을 위해 꾸준히 운동하고 있고, 나도 먹거리에 나름 영양의 균형을 맞추려고 애쓰고 있다. 아직 혈압도 정상이고 올해 초 건강검진에서 크게 두드러지게 염려되는 건 없는 듯해서 안심하고 있는데 「전조증상」이란 말을 들으니 온갖 생각이 다 든다. 나는 당장 남편을 응급실로 데리고 가려고 서둘렀다.      


“아니야, 내일 신경외과로 가지 뭐.”     

응급실로 가기 싫은 투로 남편이 말한다. 그건 아니다. 남편 입에서 「전조증상」이라는 말이 나온 상황에 병원에 가지 않고 기다린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냥 보기엔 멀쩡한 것 같긴 한데, 성당에서 기도문을 낭독할 때 말이 이상하게 나왔다고 한다. 혹시 ‘시각을 다투는 일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앞서, 오늘 밤에 그냥 자서는 안 될 것 같다. 무섭다는 생각조차 든다. 겉옷과 양말을 가져와 억지로 입게 하고 서둘러 응급실로 향했다. 응급실도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하다. **대 병원으로 갈까? **서울병원으로 갈까 우왕좌왕한다. 그래도 막연하게 응급실에만 가면 간단히 확인하고 약을 받아 집으로 올 수 있겠거니 하는 마음에 가까운 **서울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병원에 도착하고 나니 심폐소생술 해야 하는 긴박한 사람이 있어 우리는 뒤 순위로 밀렸다. 그건 당연하다. 남편은 말만 약간 어눌해졌을 뿐 다른 곳은 멀쩡하니까.      

잠시 기다리니 남편 이름을 부른다. 증세를 묻곤 의료진들이 서두르는 모습이다. 혹시 수술해야 할지 모르니 지금부터 금식이고, 곧바로 CT도 찍고 MRI도 찍어야 한단다. 남편을 응급실 안쪽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 침대에 눕히고, 일반 병실에서 잘 볼 수 없는 심박수, 맥박 상태를 알려주는 기계 모니터를 남편 침대에 같이 붙여 놓는다. 멀쩡한 남편 옆에서 ‘여긴 중환자 병실이오.’ 알려주는 기계 소리가 기분 나쁘게 들린다. 링거도 주렁주렁 매달아 놓는다.      


갑자기 “잘 걸어 들어와서 사고 났다”는 병원 이야기까지 생각나며 불안이 엄습해 온다. ‘내가 병원을 잘못 온 건 아니겠지?’, 새벽 1시가 넘는다. 누구에게 전화할 수도, 의논할 수도 없다. 남편과 내가 병원에 오기 전 다른 일로 작은아들의 전화받으며 대수롭지 않게 간단히 말하고 “어서 자거라.” 했던 게 후회된다. 더 이상 아무에게도 알리지 못한 것이 또 불안해진다. ‘조그만 일에도 온갖 걱정을 하며 불안해하던 내 모습이 또 발동했구나.’ 하며 지나가길 빌어본다.     


남자 의료진과 CT 찍으러 들어가는 남편을 따라가려니 더 이상 보호자는 못 들어간단다. 잠시 후에 남편이 있던 처치실로 온몸이 시커멓게 멍든 듯한 사람이 의식 없이 들어왔다. 의사가 보호자에게 끝없는 질문을 한다. 보호자는 얼굴이 샛노랗게 굳어있다. 나는 그 사람을 외면하며 밖으로 나가 남편이 나간 쪽으로 가기도 하고 되돌아오기도 하면서 기다리고 있다. 바로 옆 또 다른 넓은 방에는 간단한 치료를 받으러 온 사람이 있는 듯, 그 사람들은 긴장감이 없고 편안해 보인다. 부럽다. 좀 전에 남편과 내가 있던 방의 위쪽을 보니 『중증 환자 처치실』이라고 쓰여 있다. 이번엔 완전히 중증 환자로 보이는 나이 많은 분이 또 그 방으로 들어간다. 남편은 저 정도는 아닌데….     


남편 침대가 있던 곳으로 불안해서 들어갈 수가 없다. 남편이 들어간 쪽을 바라보며 서서 기다렸다. 시간이 꽤 지났다. 4시가 거의 다 되어 간다. 간호사가 나를 보더니 MRI까지 다 찍어서 곧 돌아올 거라고 하면서, 의사 선생님 오시면 보호자에게 설명할 거란다.      


“보호자에게?”      


나는 또 가슴이 두근두근 댄다. 잠시 후 남편은 CT 찍으러 갈 때의 그 모습 그대로 돌아왔다. 안심이다. 밤을 꼴딱 새웠지만 전혀 피곤하지 않고, 오히려 생생해졌다. 나는 남편의 보호자다.     


뒤이어 의사 선생님이 들어오더니 누워 있는 남편의 눈도 감아보라 떠보라, 표정도 이렇게 저렇게 해 보라, 팔다리를 굽혀보기도 펴보기도 하면서 이리저리 움직여 보고, 구석구석 진료하더니 나를 따로 부른다. 남편 있는 곳에서 말 못 할 내용인가 하는 생각에 겁을 내며 불려 갔다. 다행히, 모니터를 통해 CT와 MRI 사진을 보여주며 설명하기 위해 부른 거다. 머리 사진의 한쪽에 콩알 같은 모양의 하얀 점이 있다. 이것 때문에 문제가 생겨 급성 뇌경색이 되었다 한다. 집중치료실로 가서 3일 동안 관찰하면서 치료해야 하고 보호자는 함께 있을 수도 없단다. 3일 후에 일반병실로 옮기지만 더 좋아진다고 장담할 수는 없고 더 나빠지지 않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왜? 집중치료실로 가나! 집중치료실로 가면 완전히 고쳐줘야지.’ 불안한 마음이 또 올라온다.     

남편과 함께 갔었는데 혼자 집으로 돌아왔다. 갑자기 이럴 수도 있구나. 생각지 못한 일이다. 소파에 그냥 앉아 있었는데 아침이 된다. 두 아들에게 아빠의 상황을 알렸다.      


큰아들이 담당 의사 선생님이 어떤 분이냐고 묻는다. 선생님 성함을 알려 주었더니, 그분보다 경험이 많은 뇌졸중 치료 센터 센터장님께 진료받으면 더 좋을 것 같다 한다. 나도 조금이라도 경험 많은 의사 선생님께 남편이 최상의 진료를 받기를 원한다. 온갖 생각들로 머리가 복잡해진다.      


‘어젯밤 응급상황일지라도 좋은 선생님을 물색(?)해서 더 큰 대학병원 응급실로 갔어야 했던 건가? 아니, 아니 아니지, 그렇게라도 빨리 간 게 잘한 거 아닌가?’     


나는 집중치료실 앞으로 달려가서 무조건 인터폰을 들었다. 상담하고 싶다며, 온갖 변명을 하곤, 급기야 담당 의사 선생님을 센터장님으로 바꾸어 달라고 했다.     

“퇴원 후 센터장님과 진료요일이 맞아서 그 요일에만 병원에 올 수 있으니 그분께 처음부터 진료받게 해 주세요.”     


이유 같지 않은 이유를 댄다. 감당이 안 되는지 잠시 후 연락하겠단다. 응급실에서 처음 진료해 주었던 응급의료 의사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병원 원칙이 입원 중에는 담당 의사 선생님을 바꿀 수 없어요. 의사 선생님 바꾸는 건 안 돼요. 퇴원 후에 그분으로 바꾸어 드리겠습니다.”     


원칙을 말하며 안 된다고 하니 어찌할 도리가 없다. 지금 당장의 진료가 중요해서 곧바로 병원을 나가 다른 병원으로 옮겨 갈 수는 없다. 담당 의사가 속상해하면 남편이 불편해질까 봐 오히려 ‘깨갱’하며 말을 바꾼다. 「전조증상」 놓치지 않은 것에 감사하자. 오랜 교직 생활로 나름의 원칙을 지키며 살았다고 자부했는데, 나도 이기적 인간이다. 남편이 아프니 내 마음 속살이 드러난다.     


“지금 의사 선생님이 잘 진료해 주시면 요일과 관계없이 무조건 그분과 계속 진료 받을게요.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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