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한달살기 출국 하루 전 날 생긴 일
기다리던 퇴사날이 되었다. 여느때와 같이 같은 시간에 집에서 나와서 눈 감고도 갈 수 있는 같은 출근 루트로 사무실에 향했다.
첫 출근날을 회상해보면 그땐 회사가 참 크고 으리으리해보였는데, 출근하자마자 두 달만에 코로나가 터지고… 잘 나가던 시절부터 코로나로 골골 대던 회사의 흥망성쇠(?)를 보고나니 사무실이 꽤 아담해보였다.
나의 사회초년 병아리 시절을 떠올려보자면 직원들 얼굴도 채 외우기 전에 대부분이 휴직에 들어가서 직원수가 몇명인지도 모르고,,, 소수정예 학원같은 회사에서 코시국 내내 병아리처럼 하나하나 여행사 업무를 배워왔었다. 울고 웃던 시절들을 곱씹어본 후 퇴사하는 날의 나를 돌아보니, 나는 사무실 ‘인싸’ 또는 ‘고인물’ 소리를 듣는 어엿한 3년차 직장인이었다.
퇴사 바로 다음날 출국예정이어서 인지, 한달짜리 짐을 싸느라 정신도 없고 연차소진 하느라 사무실도 몇 번 안나가서 인지 아련함이나 아쉬움이 느껴질 새도 없었던 것 같다.
입사할 때부터 있던 원년멤버들은 전부 어디론가 가버리고 없지만, 바뀐 팀 구성원들과 마지막 점심을 함께했다. 최근 4개월 정도를 이직욕심에 불타 이력서 넣으랴 면접보랴 시간소비, 감정소비로 태웠는데 런 불안정했던 나와 함께 해준 우리 팀원들과 이별을 마주하니 미안한 마음도 들었고 후련한 마음도 들었다.
베트남 한달살이와 동반된 나의 퇴사는 그렇게 모두의 응원과 격려 속에 일사천리로 이루어지는 줄 알았는데! 이게 웬걸,,! 마지막 점심 메뉴를 기다리던 중 두어달 전 최종 면접에서 나를 탈락시켰던 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붙들고 나가 받고 온 통화 내용은 아니나 다를까 떨어뜨린 나를 다시 채용하고 싶다는 것! 하루라도 늦게 전화가 왔으면 해외에 있느라 못 받았을텐데 당시에는 그 통화가 정말 꿈만 같았다. 어쩜 퇴사하는 날이자 한달살기 출국 전 날에 이런 연락을 받다니,,마치 트루먼쇼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잦은 면접탈락으로 인한 자존감 저하가 나의 퇴사의 큰 이유였는데, 응어리 져있던 마음 속 고름이 싹 사라진 기분이었다.
나를 다시 채용하려는 이유부터 시작하여 입사날짜와 처우협의 등에 관한 이야기를 신나게 주고 받았다. 이직 욕심으로 병든 나를 치유하러 퇴사까지 하며 떠나는데, 출국 전에 이런 통화는 나를 흥분시키기 충분했다. 하지만 그러기를 잠시 그 회사에서 다시 전화가 왔고, 최종 입사 여부는 다음날 알려줘도 되겠냐는 이야기를 하며 나에 대한 입사 통보를 다시 보류했다.
혹시나는 역시나 였다. 다음날 나는 푸꾸옥에 도착하자마자 다시 한번 불합격의 쓴 맛을 보았다. 이틀동안 나는 퇴사자였고, 취업 예정자였고, 불합격자였고, 여행자였다.
도착하자마자 짐도 풀기 전에 참 많이도 울었던 것 같다. 꿈이었다고 치고 잊어버리기엔 그동안 나를 괴롭혔던 갈망만큼 아팠다. 두어달 전 떨어뜨린 사람을 한번 더 떨어뜨리다니.. 이 세상은 생각보다 훨씬 나에게 무례하고 가혹하다는걸 다시한번 느꼈고, 그래서 난 더 강해져야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