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 이후 첫 ‘무직’ 생활에서 느끼는 것들
퇴사 후 한 달 동안의 베트남 여행 후 서울에 돌아와 열심히 백수의 삶을 누리고 있다. 모아둔 돈이 점점 떨어져 가는 게 무섭긴 하지만 그래도 인생 중 어느 때보다 알차고 여유롭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어리다면 어리고 많다면 많은 나이 스물여덟, 나이가 먹을수록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는 말을 실감하며 요즘에서야 나는 회사를 위한 시간이 아닌 나를 위한 시간으로 하루를 채우고 있다.
1. 평일 낮 시간의 소중함
나는 대학교 졸업하자마자 한 달 안으로 취업을 했다. 취업이 빨랐던 이유는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빨리 취업을 하고 싶어서였다. (사실 눈만 낮추면 어디로든 취업은 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무직’인 상태에서 취업준비를 하는 게 성인이 된 이후 지금이 처음이다.
비로소 이렇게 백수가 되어 남들 일하는 평일 낮 시간을 내 시간으로 채우다 보니 문득 내가 이 시간을 알차게 보낼 수 있는 이유는 몇 년 간 다져온 직장인 생활패턴 덕분임을 느낀다.
기상과 취침 시간은 물론 학교 시간표까지 내 맘대로 짜도 되는 대학생활 직후에 이런 기간을 보냈다면 나는 과연 평일 낮 시간의 소중함을 알았을까? 남들은 바쁘게 일하는 한적한 평일의 낮 시간이 사실 얼마나 짧고 소중한지는 직장을 몇 년간 다녀봐야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시간의 소중함과 규칙적인 생활패턴을 온몸에 익힌 후에 무직 신분이 되어 다행이다.
2. 내가 좋아하는 것들 : 운동, 글, 음주
세 가지가 내 요즘의 일상생활이다. 원래도 내가 좋아하는 줄은 알았는데 매일 하고 있는 나를 보니까 그런 내가 귀엽고 재밌다.
아무리 늦게 자도 아침에는 눈이 떠져 운동을 간다. 아침에 운동하는 패턴은 사실 금방 흐트러질 줄 알았는데 아직까지는 잘 유지되고 있다. 운동하고 오면 글을 쓴다. 블로그도 쓰고, 일기도 쓰다가 한 가지 주제에 빠져 웹 서핑을 즐기다 보면 어느새 퇴근시간. 퇴근시간 이후에는 직장 다닐 때 습관이 남아서 인지 모든 걸 다 접고 놀거나 쉬고 싶어 진다. 그러면 어김없이 시작되는 즐거운 음주. 아직까지는 앞으로의 미래에 대해 초조해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이런 일상을 잘 즐기고 있다.
3. 그래도 얼른 하긴 해야겠다.
백수생활이 시작된 지는 2주 정도 되었는데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한국에서 장기간 돈벌이 없이 무기력함에 빠져 시간만 축 내고 있는 사람은 불쌍한 게 아니라 한심한 게 맞다. 사실 눈 낮추고 몸만 힘들면 대한민국에서 돈은 얼마든지 벌 수 있으니까.
나는 서울에서 자취한다는 이유로 숨만 쉬어도 달에 70 정도가 나간다. 물가 비싼 이곳에서 밥도 먹어야 되고, 젊음을 즐겨야 하니 친구도 만나고 여행도 가야 한다. 그래서 나는 무직 기간이 길어질수록 초조해져야 한다.
하지만 나를 비롯한 MZ세대들은 눈 낮추고 몸 힘들며 일하기를 대개 싫어한다. 지금이야 아직 이 기간을 즐기겠다만, 확정된 출근 일자 없이 돈 나갈 일자만 적혀있는 달력을 보고 있으면 내가 생각하던 한심한 무기력증 백수가 내 자신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조금은 무서워진다. 앉아서 키보드를 두들기든, 나가서 알바를 하든 특히나 서울에서 살아가기 위해선 무엇이 됐든 얼른 하긴 해야 한다는 현실이 무섭지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