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건 성적이나 학벌이 아닌 진짜 실력이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하던 때는 IMF 구제금융을 받기 직전이라, 당시 학과사무실로 각 회사의 취업제안이 넘치던 때였다.
그래서 성적이 좋은 학생들은 원하는 회사를 골라가며 지원할 수 있었고, 비록 성적이 좋지 않더라도 어렵지않게 회사에 취업지원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지금으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호(好)시절이었다.
당시에 나도 몇 군데 취업지원을 하였고, 면접도 보게 되었다.
그러다 지금도 건재한 대기업 계열사에 지원을 하게 되었고, 운이 좋게도 합격하게 되었다.
그래서 직장생활을 위해 고향을 떠나 객지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방을 얻어 자취를 시작하였고 열심히 집과 직장을 오가는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나의 첫번 째 직장생활이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역시 대기업은 결코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업무의 강도가 셌고, 분위기도 엄청 경직되어 있었다.
그런 것들을 이겨낸 사람만이 이에 걸맞는 급여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당시에 받았던 월급이 대기업 중에서는 적은 편이었지만, 중견기업이나 중소기업에 비하면 많은 편이었다.
그리고 직급이 바뀌고 승진을 하면 월급은 또한 대폭 상승하였다.
사원에서 계장으로, 계장에서 과장으로, 그리고 과장에서 팀장으로, 시간이 지나면서 나도 승진을 하였다.
담당자일 때는 내 일만 하면 되었지만, 관리자가 되면 팀 전체의 일을 챙기면서 조율을 해야했다.
이제와서 돌이켜 생각해보면, 담당자일 때는 그렇게 들어나지 않았던 나의 실력이 관리자가 되면서 조금은 역부족이었음이 들어났던 것 같다.
나도 그렇고 나의 상사도 그렇고 업무처리에 있어 서로 만족스럽지 못함을 느끼고 있었다.
부족함을 해소하기 위해 나름 공부도 해보고 다양한 시도도 해보았으나 단기간에 이를 변화시킬 수는 없었다.
나의 상사뿐만 아니라 부하 직원들도 이 분위기를 눈치채고는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서로 함께 하고는 있지만 마음속에 불편함을 감추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상사가 부임했다.
그는 비록 고졸 출신이었지만 타고난 노력으로 많은 이들을 제치고 관리자로 발탁된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나는 그의 부임초기에 그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다.
"지가 아무리 잘나봐야 고졸 출신이잖아. 기껏해야 여기까지지 뭐."
그러면서 마음속으로 그를 조금은 얕보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실제로 업무를 하면서도 무의식중에 그런 언행들이 나오곤 했었다.
그때 그도 분명 그걸 눈치 챘으리라 생각되지만 그는 결코 내색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에 대한 나의 생각이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그는 정말 현명했고 업무처리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탁월했다.
내가 도무지 이길 수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자 그에게 진심으로 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나 자신에 대한 자괴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점 더 부하직원들의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다.
더 이상 올라갈 길이 없다는 생각이 들자 이를 회피할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회피하는 방법은 이 직장을 그만 두는 방법말고는 없는데, 그러기에는 급여나 복지가 너무 아까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렇게 상사와 부하직원들과의 불편한 동거는 한 동안 지속되었다.
그 가운데서 나의 스트레스는 점점 쌓여만 갔다.
그러던 차에 입사동기가 개인사업 제안을 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그와 의기투합하여 사업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쉽게 직장을 그만두고 개인사업을 시작한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든다.
그건 아마도 그 개인사업이 실패를 해서 더욱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객지에서 시작한 대기업에서의 직장생활은 약 12년만에 끝나고 말았다.
지나간 과거에서 배울 것이 있다면 기꺼이 배워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적용하는게 현명한 생각일 것이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를 정면으로 돌파하지 않고 회피하려 했던 나의 과거의 판단에 대해 진심으로 반성하고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을 것이다.
그리고 사람을 판단할 때 '선입견'에 사로 잡혀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하는 일을 경계할 것이다.
두 번의 실패는 없을 것이며, 이제 나는 분명히 이전보다 한 단계 더 성장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