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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로오렌 Jul 19. 2023

ADHD 아이 관찰일기

공차던 날

내가 사는 아파트 상가에는 큰 수퍼가 있다. 대기업 마트지만 동네 수퍼 형태의 작은 매장으로 꼭 필요하면서 자주 구매하는 것들로 꽉 채워져 있는 곳이다. 오전시간에는 사람이 뜸한 편이고, 오후 4시에서 5시는 피크 타임이다. 어린이집 하원시간 이후에 놀이터로 가거나 혹은 놀이터에서 집으로 가거나 할 때 꼭 들러야 하는 동네 아이와 엄마들의 방앗간과 같은 곳이다. 이 상가 건물에 이런 수퍼가 들어올지 미리 알았는지, 아파트내 교통약자들을 위한 엘리베이터도 수퍼 뒤쪽에 위치해 있다. 그리고 그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면 단지내 놀이터로 이어진 외길이다. 이러한 사실들이 수퍼의 매출향상과 관련있다고 나는 굳게 믿고 있다.


언제나처럼 나는 둘째를 데리고 수퍼로 향했다. 수퍼에 들러서 아이가 좋아하는 과자나 젤리를 구매하고 겸사 겸사 저녁 찬거리도 장 봐서 집으로 갈 심산이었다. 이 마트는 일주일에 한번씩 특정 품목만 할인을 진행하거나 1+1 찬스를 제공한다. 그날은 젤리뽀 1+1 행사 중이었다. 나는 생각없이 냉장고에 전시되 있는 젤리뽀를 꺼내서 계산했다. 둘째는 바나나킥을 입에 물로 신나는 발걸음으로 나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다.


앞 서 소개했듯이 엘리베이터는 단지 내 놀이터와 연결되어 있고, 이 놀이터를 무사히 통과해야 우리집 가는 출입구가 보인다. 일부러 놀이터를 빙 두르고 있는 오솔길로 아이를 재촉한다. 재생타이어로 마감 된 놀이터 바닥에 발을 딛는 순간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 때 첫째가 자전거를 타고 놀이터를 어슬렁 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J!"


둘째가 흥분해서 첫째의 이름을 부른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 했던가. 오빠와의 우연한 만남에 둘째는 흥분했다. 첫째는 심드렁하게 자전거를 몰고 와서 내가 내미는 물 한병과 젤리 한 봉지를 받아든다.


"놀다올래?"


첫째는 경증 adhd 진단을 받았다. 약을 복용하고 있다. 벌써 3학년이고 단지 내 아이들이 모두 같은 학교를 다니는 상황임에도 친한 친구가 없었다. 약을 복용해서 인지, 나이가 들어서인지 알 수 없지만 아이의 충동성이 많이 줄었다. 현행학습도 결손없이 따라가는 편이고 다행히 기질이 순한 편이라 요즘은 또래들과 제법 어울리는 모양이다. 놀이터에서 축구를 하기도 하고, 술래잡기도 하며 논다. 가끔은 친구들에게 전화가 오기도 하고, 또 반대로 전화를 걸기도 하는 모습에 나는 안도감을 느끼고 있었다.


때마침 놀이터 한 켠에서는 첫째의 또래 친구들이 축구를 하고 있었다. 아이는 놀다오겠다며 그 무리에 끼여서 축구를 시작했다. 둘째가 오빠를 따라가고 싶어하기도 해서 겸사 겸사 자리를 잡고 앉은 나는 아이들이 축구하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바람 한 점 없는 덥고 습한 여름 날씨였다.


남자아이들은 여럿이서 엉켜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공을 이리 차고 저리 차고 뛰어다녔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모습만 봐도 가슴 뭉클하고 기특하고 고맙던 마음은 온데간데없고. 나는 축구를 정말 못 하는 내 아이를 바라보면서 또 마음이 복잡해졌다. 벌써 약을 1년 넘게 복용하면서 위가 쪼그라든 아이는 소식을 한다. 잘 먹고 발육 좋은 아이들 틈에서 왠 젓가락같이 마르고 길쭉한 아이가 달리는 모습이 안쓰럽다. 공을 눈으로만 좇고 당췌 달리지 못 한다. adhd 아이들의 특징 중 하나가 본인의 의지대로 몸을 못 쓰는 것이다. 물론 운동신경이 남다르면 운동을 엄청 잘 하는 아이들이 있기도 하다. 첫째의 마음은 날라오는 공을 이리 저리 막고, 패스하는 공을 받아서 막아서는 아이들을 요리 조리 피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몸이 따라오지 못 한다.


문득 수퍼에서 생각없이 담아 왔던 젤리뽀가 생각났다. 한 봉지에 6개가 들어 있고 1+1이니까 총 12개였다. 놀고 있는 아이들은 9명 정도. 어떤 타이밍에 개입하면 좋을지 몰라서 아이들의 게임을 계속 지켜보았다. 젤리뽀의 봉지를 만지작 대며 망설이는 와중에 첫째가 내게 다가왔다.


"나 집에 갈래."

"벌써? 왜?"

"나 너무 덥고 힘들어."


나이스 타이밍! 지금 젤리뽀를 건내주고 아이들과 나눠먹으면서 잠시 쉬었다가 다시 놀면 어떻겠냐는 나의 제안을 아이는 단칼에 거절한다.


"싫어. 나 혼자 먹을 거야."

"너랑 같이 축구한 친구들 모두 더울건데. 이거 젤리뽀 너네 다 나눠먹어도 남아."

"아, 됐어. 내가 더우니까 내가 많이 먹을꺼야."

"이렇게 간식 나눠먹으면 친구들과 더 친해지고 좋지 않을까?"

"괜찮아. 얘들아 나 간다!"


그리고 첫째는 유유히 사라졌다. 갑자기 사라지는 친구가 신경쓰였는지 축구를 하던 아이 한 명이 큰 소리로 첫째를 불렀지만, 아이는 해맑게 안녕이라며 사라졌다.


오해를 부르는 화법과 행동... 이것이 adhd아이의 일반적인 사고이다. 신나게 잘 놀던 친구들에게 제대로 인사하지 않고, 말도 없이 게임에서 나와 버리고, 본인은 집에 가야하니 굳이 아이들에게 본인 간식을 나누고 싶지 않은 마음. 이때 이미 아이의 마음은 집에서 휴대폰하면서 편히 누워있었을 것이다.


첫째가 사라지고 나는 축구하던 아이들을 불러모았다. 아직 차가운 젤리뽀를 하나씩 나눠주면서 부탁했다.


"다음에도 우리 철수랑 재밌게 놀자~"


본인의 아티스트를 위해서 방송관계자들에게 박카스와 cd를 돌리는 매니저의 마음이 이랬을까? 하지만 축.알.못.인 내가 봐도 정말 축구를 못 하던 아들과 함게 놀아 준 아이들에 대한 고마움이 더 컸다. 습하고 더운 날 공놀이 하는 아들들이 그저 짠한 아들맘의 마음도 있었다. 그 와중에 딸기맛은 자기가 먹어야 한다며 울부짖은 둘째에게 또 그것을 양보하는 이 아이들이 너무 기특했다. 이 아들들의 엄마들은 이렇게 멀쩡한 아이들을 키워서 너무 좋겠다는 부러운 마음도 들었다.


사실 내 아이만 놓고 보면 잘 모르지만, 이렇게 여러 아이들과 함께 있는 첫째는 정말 이상한 구석이 많다. 그때마다 마음이 투욱 하고 바닥에 떨어지는 느낌이 든다. 많이 무뎌졌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갈 길이 멀구나 싶었다. 얼마나 먼 길인지 알 수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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