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그 아이의 탁월함에 무릎을 치게 된다.
ADHD 기질을 가진다는 것은 꼭 단점인 것만은 아니다. 이런 기질의 사람들은 본인이 좋아하는 일에 쉽게 몰입할 수 있으며 끈기 있게 그것을 탐구하여 엄청난 성취를 이루기도 한다. 빌게이츠, 에디슨, 아인슈타인 그리고 모차르트까지도 그러한 기질을 가졌다고 한다.
사실 내 아이가 ADHD 임을 알기 전에 혹시 이 아이가 천재인가라고 자문한 적이 있긴 하다. 6세 때의 일이다. 당시 아이는 한글을 알지 못했다. 유치원 선생님께서는 <괴물들이 사는 나라>라는 동화책 한 권을 읽어 주셨는데, 선생님께서 읽어주신 단어들 외에 아이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부연 설명한 내용까지도 아이가 통째로 외워버렸다. 이야기책의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아이는 한 번 듣고는 다 외워서 내 앞에서 그대로 말해 주었다. 영상으로 기록하니 약 23분 정도였다. 선생님도 나도 그 사실에 엄청 놀랬다. 아이를 5년이나 키우면서 특별히 영특하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내가 대단한 아이를 키우는 건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보았다.
관찰력과 표현력이 남다른 아이란 건 이미 알고 있었다. 블록 조립을 잘했고, 본인이 생각한 것을 구현해 내는 능력이 탁월했다. 3살 무렵에는 덤프트럭을 만들었는데 트럭의 짐칸에 티슈를 씌우는 것을 보고 감탄한 적이 있다. 실제 덤프트럭들이 화물칸에 화물을 싣고 천을 씌우는 것을 그대로 표현해 냈다.
아이디어가 남다른 아이이기도 했다. 팬데믹 와중에 계곡에 원터치를 펼쳐놓고 피크닉을 즐길 때였다. 아이는 두 발에 진흙을 잔뜩 묻혀왔었다. 나는 아이에게 발을 씻고 수건으로 닦으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아이는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기다란 끈으로 흙을 긁어내고 있었다. 햇빛이 좋은 날이어서 진흙은 금방 말랐고, 또 금방 털어졌다.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하는지 신기했다.
여느 ADHD 아이들처럼 내 아이도 블록 놀이를 좋아한다. 몰펀, 십자블록 그리고 자석블록을 주로 가지고 논다. 어릴 때는 단순한 형체를 만들어서 설명을 장황하게 했다면 지금은 누구든 직관적으로 그 쓰임을 알 수 있을 만큼 정교하게 잘 만들어낸다. 최근에는 전쟁놀이에 꽂혀서(놀랍게도 이 아이는 열 살이다) 투구를 만들고 있다.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더니 이제는 본인 머리에 꼭 맞는 동그란 투구를 만들었다. 내구성을 확인하기 위해서 쓰고 부수고 쓰고 부수 고를 반복하는 중이다. 요즘 아이는 전쟁게임에 빠져있다. 웹게임에 기반한 것인데 모바일용이 출시되면서 휴대폰이 허락되는 시간마다 게임을 한다. 그리고 휴대폰을 쓸 수 없게 되면 집에 있는 블록 3종_ 십자블록, 자석블록, 몰펀을 이용해서 직접 게임을 구현하며 놀고 있다. 최근 투구를 만들어낸 것도 이 게임에서 비롯된 것이다. 게임 캐릭터가 투구를 쓰는 듯했다.
흥미 있는 것에 과하게 몰입하며 어떻게든 길을 만들어내는 것이 ADHD 기질의 큰 장점이다. 감정조절과 행동조절이 미숙한 ADHD 아이들에게 유능한 조력자만 있다면 그들은 굉장한 성취를 이루어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아이를 학교에 보내야 하고, 그 속에서 아이는 상처받는다. 내 아이의 상처만 봐 달라고 할 수도 없다. 단체 생활에서는 무엇보다 협력이 중요하고, 본인의 감정과 행동은 연령에 맞게 조절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내 아이도 아이지만, 다른 아이들도 아이라서 미숙하다. 다른 아이의 미숙함을 잘 품어 줄 이유가 없다. 어린 시절에 ADHD 진단을 받는 많은 사람들이 성인이 되면 더 이상 ADHD 진단을 받지 않는다고 한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점점 사회화가 되기도 하고, 조절능력도 발달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특히 남자들은 20대 중반까지도 뇌가 발달한다고 하니 내 아이의 미래도 기대해 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나는 한창 아이와 방학을 보내고 있다. ADHD 아이와 함께 24시간을 보내는 것은 짜증스럽고 재미없고 속이 뒤집어지는 순간이 많다. 약을 먹이면 먹이는 대로 속이 상하고, 안 먹이면 안 먹이는 대로 화가 난다. 그럼에도 나는 참을 忍에 육두문자를 섞어서 삼켜본다. 이 또한 지나가리니.... 버티다 보면 너와 나의 세상이 더 평화롭지 않을까. 나는 더 지혜로울 것이고, 너는 더 성장했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