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부딪히는 아이와 신경전을 벌이면서 몸도 마음도 지쳐있던 때라. 문제의 원인을 아이가 아닌 내게서 찾아보기 시작했다.
혹시 내가 문제 있는 건 아닐까?
아이의 일반적인 문제행동에 내가 과하게 반응하는 것은 아닐까?
긴 가뭄에 갈라져버린 논바닥처럼 거칠고 메마른 내 마음을 내가 돌봐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병원 검사결과지와 저명하신 의사 선생님의 결론은 같았다.
"당신은 (다행히) 미치지 않았습니다."
개학을 했고 2학기를 보내면서 역시 많은 일들이 있었다. 아이는 약 먹기를 거부했고 그런 날이면 꼭 문제가 생기고는 했다.
운동회날에는 오전시간 내내 아이가 혼나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봐야 했다.
선생님으로부터 아이가 수업시간에 노래를 부르고, 친구들과 격하게 싸운다고 연락을 받았다.
약을 먹이고,
긍정의 피드백을 주기 위해 애를 쓰며
2학기를 버티고 나니 다시 방학이 되었다.
주 3일은 수학학원을 다녀야 하고,
오전에는 스피드스케이팅 방학특강을 신청했다.
매일 한 시간 정도 나는 아이와 함께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내 지갑을 열기에 충분했다.
아이와 오롯이 둘이서만 보내는 하루가 생겼다.
다른 학원일정도 없고 그저 마음 편히 지내면 되는 하루여서 약을 먹이지않기로 했다.
집에서 차로 1시간 30분 거리의 체험시설을 미리 예약해 두었다. 교관의 설명을 듣고 체험을 해보면 끝나는 일정이다.
약을 먹지 않은 아이는 교관의 설명에 집중할 수 없다. 설명이 길어지니 몸을 꼰다. 앉아있는 자세부터가 구부러진 피사의 사탑처럼 삐뚤 하다.
또래의 다른 아이들은 얌전히 앉아서 겨우 귀를 만지거나 코를 긁는 정도의 꼼지락이라면 이 아이는 긴 몸뚱이를 이리 비틀 저리 비틀 산만하기 그지없다. 그래도 귀는 열렸는지 대답에는 열심인 모습이다. 하지만 나는 아이의 총명함과 씩씩함에 반응하기보다 산만한 태도에 더 반응하는 편인 것 같다.
어쨌든 시간은 흘러갈 것이고 아이는 점점 자랄 테지만. 과연 이 아이가 남의 집 아들들처럼 듬직하고 의젓하게 성장할지 의문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