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생에 너에게 죄를 지었나 보다.
자식이 이렇게까지 미울 수 있을까.
내 배 아파 낳은 자식인데 어쩜 이렇게 싫을 수 있을까.
나는 그 시작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초등학교 1학년 시절의 어느 날, 아이가 밥을 먹고 있는 모습을 보다가 문득 저 밥그릇을 뺏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밥 먹는 모습이 밥 먹는 꼴로 보이면서 그 꼴을 보고 있기가 힘이 들었다. 나는 그때부터 아이가 싫었다.
아이의 전두엽의 발달이 느리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약물치료를 시작했음에도 아이가 싫어진 마음이 쉽게 다독여지지 않았다. 여러 가지 나를 미치게 하는 아이의 행동들에 고의성이 없다는 것은 잘 안다. 강연도 듣고 책도 보고 어느 정도는 아이의 상태에 대해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의 태도에 대해서도 여러 번 보고 듣고 공부했다. 하지만 마음은 다른 문제였다.
차라리 외동이었다면 여러모로 나았을 것 같다. 하다못해 아이 또래의 형제자매가 있었다면 또 괜찮았을 것 같다. 친구 대신으로 서로를 의지하며 미우나 고우나 함께 할 수 있었을 테니. 하지만 나는 한창 손이 가는 큰 아이와 6살 터울의 둘째가 있었다. 남편은 점점 일이 바빠져서 이틀에 한 번 꼴로 만나지는 일이 허다했다.
자신을 독립된 객체로 인지하게 된 둘째는 본인의 의지외에는 모든 것을 부정했다. "안돼!""싫어!"
전전두엽의 발달이 더디다는 첫째는 기다란 팔다리를 허우적대며 온갖 것을 어지르고 있었다. 특히 약기운이 떨어지는 저녁이 되면 며칠 굶은 사람처럼 허겁지겁 먹어치우는 모습은 정말 보고 있기가 힘들었다. 아침에 깨우는 것도 힘이 들었고, 멍하니 옷장 앞에 앉아 있거나, 상의를 입고 또 한참 후에 하의를 입는다. 눈은 흐리멍덩하고 입꼬리는 항상 힘이 빠져있다. 좁은 이마와 무쌍의 작은 눈이 답답해 보인다. 앞으로 모인 양쪽 어깨 덕에 등도 살짝 굽어 있고, 근육 없는 몸통에 배만 툭 튀어나와 있다. 팔다리의 비율만 보면 모델감이다.
밥도 느릿느릿 먹는데 국그릇과 밥그릇은 언제나 비뚤게 놓여있다. 허겁지겁 음식을 입에 집어넣고는 제대로 씹지도 않고 꿀꺽 삼키는 게 느껴진다. 김치 같은 건 한 입에 넣지 않고 찢어 먹거나 베어 먹는 편인데, 밝은 상의에 김치국물이 튀는 일도 허다했다. 김치를 일부러 꺼내지 않은 날에는 느릿느릿 냉장고 문을 열고 김치를 꺼내기도 한다. 밥을 억지로 먹은 후에 약 등을 챙겨 먹이는 것까지만 나는 욕심을 낸다. 아침밥 먹고 양치하고 스스로 가방을 싸서 제시간에 학교에 도착하게 하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학교에서 어떻게 생활하는지 친구들과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지 않다. 물론 눈치껏 잘하지 못 하겠지만, 약 먹여서 학교 보내는 것이 나의 최선이었다. 전화기에 학교 번호가 찍히는 것부터 나는 이미 기분이 상한다. 처음 학교에 애 보내놓고 학교 전화를 받던 시절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나는 최대한 챙겨서 아이를 보내고, 나머지는 아이의 몫이다. 그렇게 학교에서 돌아오면 신발주머니와 책가방은 거실 바닥 어딘가를 구르고 있다. 목이 마르거나 약기운에도 꼭 먹고 싶은 간식이 있다면 꺼내먹고 절대 치우지 않는다. 다행히 학원 시간 개념은 확실해서 학원차량을 놓치거나 수업에 늦거나 하지는 않는다. 상의는 앞뒤를 바뀌 입는 경우가 허다하고, 바지도 밑단을 제대로 정리하지 않아서 바보처럼 보인다.
몸집이 작은 어린아이라면 좀 모자라게 굴어도 귀엽다. 하지만 나랑 발 사이즈가 똑같은 아이가 아침부터 밤까지 내 집에서 내 눈에 거슬리게 행동하는 꼴을 참아내기란 너무 힘이 든다. "엄마"소리가 들리면 "왜! 뭐!"라고 대답하는 편이다. 이러면 안 된다고 생각은 하지만, 별로 말을 섞고 싶지 않다. 두서없이 늘어놓는 자기만 재밌는 이야기들도 들어줄 여유가 없다. 4학년이나 된 아이의 뒤치다꺼리를 해 줄 만큼 다정한 성격도 아니다. 약기운이 도는 이른 저녁에 숙제 대신에 폰게임을 하겠다는 모습도 짜증스럽고, 조금만 게임이 멈추면 버그니 렉이니 이야기하면서 억울하다고 말하는 것도 듣고 싶지 않다. 사실 이 아이는 짜증스러움과 억울함을 구별하지 못한다. 대부분의 부정적인 감정을 억울하다고 이야기하고, 피해의식에 절어있다. 자존감은 낮은 편인 것 같고, 우울감도 있는 편이다. 명랑 쾌활과는 거리가 먼 성격인 것 같은데, 이 부분은 선천적인 것은 아니고. 매사에 인정을 못 받고 성취가 없어서 그런 듯하다. 학년이 높아질수록 adhd 남자아이들은 인정받거나 성취를 해내기가 힘이 든다. 아이가 모자라서가 아니라, 한국의 사회 시스템에서 이런 류의 아이들은 견디기가 힘들다. 여건이 되어서 해외에서 adhd 아이를 키우는 가정이 부럽기도 하다.
멀쩡한 아들도 키우기 힘들다고 하는데, 멀쩡하지 못한 아들을 키우려니 더 힘이 드는 것 같다. 아이가 밉고 싫은 마음을 이렇게 글로 표현하면 좀 나아질 수 있을까. 머리로는 아이를 이해하지만, 마음은 아이를 받아줄 수가 없다. 사회적인 나이에 맞지 않는 행동을 일삼는 아이가 창피하다. 어쩌다 내 지인들과 나와 아이가 한 공간에 있기라도 하는 날이면 아이가 또 어떤 이상한 말과 행동을 할지 불안하다. 남 탓을 일삼고, 주변정리가 안 되며, 본인만의 공상에 빠져있는 이 아이와 함께 하는 게 나는 너무 힘들다.
상담사는 내게 말했다. "빨리"라는 두 글자를 빼고 아이를 대하라고. 나는 "빨리" 아이와 헤어지고 싶다. 어서 "빨리" 아이가 미성년자 딱지를 떼고, 합법적으로 내 옆을 떠나기만을 손꼽아 바라고 있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 욕심내지 않는다. 교육비가 발생하는 만큼 결과가 있을 거라고 기대하지도 않는다. 내가 아이에게 바라는 것은 "끈기"와 "생각"이다. 말을 내뱉을 때, 어떤 행동을 할 때 "생각"을 좀 했으면 한다. 과업이 주어졌을 때 "끈기"있게 해내길 바란다. 나에게도 "끈기"는 꼭 필요한 능력치이다. "끈기"있게 하교 후의 생활루틴을 가르쳐야 한다. "끈기"있게 아이의 말을 들어주며 바르게 말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끈기"있게 아이를 참아내고 지켜보고 또 다독여야 한다. 사십먹은 나도 "끈기"있게 싫은 일을 해내기가 힘이 드는데. 아이는 얼마나 힘이 들까싶기도 하다. 나는 언제까지 이 아이를 견뎌야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