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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은 감사의 달

by 로오렌

오월은 감사의 달이다.

미세먼지와 꽃가루가 한 몸이 되어 날아다니는 통에 비염인들은 고통스러울지언정,

매달 고정적으로 빠지는 대출금과 보험료 등으로 이미 숨이 막히는 직장인들에게 현금을 쥐어짜게 할지언정,

(왜 부모님 용돈은 카드결제가 되지 않는 건지)

학원 선생님들에게는 스승의 날이라고 온갖 성의 표시를 하면서 막상 학교 선생님들에게는 꽃 한 송이도 전달 못 하는 아이러니함이 있을지언정,

오월은 감사의 달이다.


내가 사십 년 넘게 살아오는 동안 그 삶이 오롯이 혼자만의 것은 아니었다. 미취학 아동시절에 동네 목욕탕에서 팬티스타킹 신는 것을 도와주던 이름 모를 아주머니부터, 숨어있던 감사 DNA를 일깨워 준 나의 글벗들까지. 수많은 이들의 고마움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것이다.


나 어릴 적에는 예쁜 치마에 팬티스타킹이면 제법 갖춰 입은 모양새였다. 쫀쫀한 쫄바지에 헐렁한 티셔츠를 입으나, 투피스의 예쁜 치마를 입으나 땅바닥을 구르며 노는 것은 같았지만 그래도 나는 치마 입는 게 참 좋았다. 다. 엄마랑 같이 갔었는지, 나 혼자 넣어진 것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여탕 탈의실에서 어설프게 몸을 닦은 후에 팬티스타킹을 신느라고 낑낑대는 나를 도와주셨던 여자분이 있었다. 그 여자분이 벌거벗었는지, 속옷만 입었는지 옷을 다 입은 것인지도 기억나지 않지만, 확실한 것은 그분은 기꺼이 나를 도와주셨다는 것이다.


여고시절에 동네 만화책 대여점에 일하던 군필자 오빠도 기억난다. 매일같이 만화책을 빌리러 가다 보니 꽤 친했었다. 걸리버 폰이 출시되어 너무 만족스럽다던 얼굴이 길었던 오빠는 어느 날 나에게 가출을 종용했다. 공장에 일자리도 알아봐 주고, 살 집도 구해 줄 테니 집이 싫으면 언제든 연락하라고 했다. 누구 좋으라고 내가 집을 나가겠냐며 나는 마음을 다 잡을 수 있었다. 감사하다. 그 뒤로 나는 어떤 유혹에도 빠지지 않고 훈훈하게 십 대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20대 초반의 나는 지금보다 15킬로는 더 가벼웠다. 적당히 성격 좋아 보이고, 리액션이 좋았던지라 제법 인기가 있었다. (절대 거짓말이 아니다) 이런저런 남자들과 이런저런 썸을 탔던 그 시절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그 설렘이. 그 나이에 충분히 누릴 수 있었음이 감사하다.


이미 오래전부터 지방은 4년제 대학을 졸업해도, 특히 여자는 구색 맞춰 취업할 만한 일자리가 많이 없던 시절이었다. 자취비용을 감당하며 서울경기권으로 취업하거나, 대학 졸업장을 숨기고 고졸로 공장을 가거나. 아니면 학습지 교사나 학원 강사 등을 직업삼기도 했다. 어학연수를 가기로 진로를 틀었는데 돈이 없었다. 그래도 가고 싶었다. 마침 콜센터에서 초대졸 여성들만 뽑다가 대졸여성까지 뽑기 시작하던 터라 나는 정규직에 성과급까지 받아가며 일할 수 있었다. 퇴사 후에도 이런저런 금액들이 정산되어 입금된 덕에 나는 무직시절을 잘 버텨낼 수 있었다. 감사하다.


이런저런 인생의 고비마다 감사하고 고마운 사람들이 있다. 나와 대면한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다. 예를 들면 콜센터에서 대졸여성을 뽑자고 결정한 사람들 같은. 혹은 너무 당연해서 감사하다는 것을 잊어먹기도 한다. 아이들이 건강하게 잘 지내주는 덕에, 배우자가 본인의 자리를 성실하게 지켜주는 덕에, 나 또한 지금의 내 자리에서 내 역할을 잘 수행하며 내 삶을 힘 있게 지탱하고 있음은 아주 감사한 일이다. 누구 한 명이 잠깐 주저앉더라도 나머지 사람들이 모자란 만큼 더 힘을 낼 수 있다고 생각된다. 지금의 내 삶은 충분히 풍요롭고 넉넉하다. 많은 사람들의 감사함으로 나는 이만큼 컸고, 이제는 나도 누군가에게 감사함을 나누고 있다고 확신한다.


가로수 아래 하얗게 빛나던 벚꽃이 진 자리에는 연한 초록만이 남았다. 맑디 맑은 초록은 싱그럽다. 살아있음을 느낀다. 오월은 그런 계절이다. 잘 살고 있음이 그저 감사하다.



#감사 #오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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