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어서 느끼는 무게들 가운데에서.
<사는 품>
누군가가 말했다. 별 게 행복이냐고. 아무 일 없이 무탈한 하루가 지나가면 그게 행복이지 않겠냐고. 살다 보니 정말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장기하의 노래처럼 별 일 없이 산다.라는 게 가장 좋고도 어려운 것 같다.
아이가 1학년이지만 휴직을 하지 않고 일과 육아 모두 해 내려하는 시점에서 여러 가지 삐걱거리는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40대에 들어서자 부모님의 건강에도 적신호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일도 내 맘처럼 쉽게 되지 않는다. 집을 둘러보니 정리해야 할 것들이 산더미다. 에라 모르겠다. 그냥 침대에 누워버린다. 덜렁 누운 내 모습이 거미줄에 포획된 개미 같기도 하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나만 힘든 것은 아니다.
아이는 아이대로 1학년에 적응하려 애쓰고 있다. 다소 내성적인 성향의 아이는 매일 있는 발표가 무서운 모양이다. 유치원이 그립다며 떼를 쓰기도 한다. 내가 봐도 창작보다는 수리나 정해진 규칙과 패턴을 파악해서 적용하는 쪽이 더 맞아 보이는 아이에게 발표 예시문을 잔뜩 뽑아 주었다. 제발 이게 도움이 되면 좋겠다.
부모님은 부모님대로 당신들의 새로운 시간을 매일 살아내고 계신다. 70대에 접어들면 세상의 이치에 통달할 것만 같지만, 오히려 몸은 노쇠해지고 삶의 마무리를 향해 달려가다 보니 마음을 더 가다듬어야 미쁘게 일상을 보낼 수 있으신 것 같다.
저절로 달려가는 기차는 없듯이 살아있다면, 모든 것은 품이 드는 것 같다. 살아내는 비용이랄까. 잔인하기는 하지만, 살아있기에 아픔도 힘듦도 슬픔도 느끼는 것 일터. 얼마 전 새벽에 잠이 오지 않아 아주 오랜만에 펼친 성경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적혀있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잠시 삶의 멍에와 무거움을 내려놓고 쉼을 얻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 이때 단비처럼 다가온 구절에 큰 위안을 받았다. 하지만 나의 짐을 어떻게 내려놓고 신의 멍에를 어떻게 져야 하는 건지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님께 배워 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면 쉼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걸까. 탄식과 질타가 없으면 하루도 버틸 수 없는 직장생활에서 이를 빼는 것은 아이언맨이 아크리액터를 떼는 것과도 같은 행위가 아닌가. 오, 주님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 두 손을 가만히 뒤집어 손바닥을 본다. 일터에서 컴퓨터를 할 때에 수도 없이 보았던 손등이 아닌 바닥을 보는 것은 오랜만이다. 주름이 생각보다 많다. 찬찬히 들여다보니 골짜기 같기도 하고 부모님의 손모양을 닮은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손바닥을 하늘로 향하고 깊게 호흡을 가다듬는다. 눈을 감는다. 침대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나는 마음속으로 작지만 분명하게 외친다. 저의 수고로움을 내려놓고 당신의 멍에를 메게 해 주세요.
-0522 새벽녘 림크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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