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글빨

당신이 좋아하는 꽃은 만개했는데…

by YJ Anne


그때는 요즘 팔팔한 청년들처럼 감히 사랑한다는 말을 입 밖으로 내기 낯 뜨거운 시대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슬며시 내 손을 잡는 당신의 손길이 부끄러운 것은 아니었지만 왠지 얼굴이 화끈거려서 슬며시 그러나 단호하게 당신에게 잡혀 있던 내 손을 빼내었지요. 이제 와서 부끄럽지만 그러지 말껄 그랬습니다. 그까짓 손 좀 잡는 게 어떻다고… 이제는 당신 마음에 매몰차게 찬 바람을 불어넣었을 그대의 내 손이 더 부끄럽습니다.


내 맘이 힘들어 고통으로 요동치던 시절, 나를 위해 내려온 고향길.

당신은 아는 이 하나 없는 이곳에서 홀로 외로웠던 마음을 위로받고 싶었을까요? 육십이 다되어 욱신욱신 거리는 손가락을 부여안고 하루가 멀다 하게 당신은 흙을 돌봤습니다.

당신 손길이 스쳐간 곳에는 시간이 흐르기 무섭게 정갈한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꽃을 바라보던 당신은 무얼 떠올리며 살았을까요.

당신은 화단에서 으뜸가는 자리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란 프리지어가 피어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나는 당신이 피워 놓은 수많은 꽃 들 중에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꽃을 알지 못하는 것이 이제 와서 부끄럽도록 참 미안합니다.

칠십이 넘어 선 당신이 여태껏 어여쁘게 가꿔놓은 꽃들은 기다리던 봄이 찾아와 한껏 만개했는데…

당신을 닮아 고운 꽃들은 자신들을 어여쁘게 피어나도록 애를 쓴 당신을 볼 수 없습니다.

지난 세월 켜켜이 쌓여 만 갔던 마음의 앙금들은 날 선 칼날이 되었습니다. 그 칼날은 나를 향해 당신이 품고 있던 정을 가차 없이 끊어 내었지요.


내가 서 있는 이곳엔 더 이상 당신이 없습니다.

당신이 없는 여기에는 그리움에 애타는 어여쁨만이 각개 홀로 피어 바람을, 뜨거운 태양을 등지고 살아갑니다.


당신이 좋아하는 꽃은 만개했는데…

여기 있어야 할 당신의 마음은 이미 떠나버렸다는 사실에 지나온 내 세월이 참 가엽습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그대 가슴에 못을 치고
나의 가슴에 흉터를 남기고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나의 고집과 옹졸
나의 고뇌와 슬픔
나의 고독과 독선
…(생략)
그대 가슴에 자국을 남기고
나의 가슴에 후회를 남기고
모난 돌처럼 모난 돌처럼
혼자서 쓸쓸히

- 나태주 대표시 선집 중 <어쩌다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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