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글빨

유월을 건너뛰다.

칠월도 가버리려고 한다.

by 로오렌

온 국민이 외출금지였던 코로나 시대에 나는 인스타와 부쩍 친하게 지냈다. 각종 챌린지가 난무하던 인스타 세계관에 따라 나도 다양한 챌린지에 도전했다.

미라클 모닝... 새벽 4시에 일어나서 하루를 알차게 사용해 보자던 한 변호사분의 말씀을 듣고 도전했다. 24시간을 촘촘하게 나눠 쓰다 보면 효능감이 밀려오며 자존감 또한 차올라서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양한 엄마표 전문가들에 의해 강제 계몽 당한 후에는 각종 필사와 영어낭독 등의 챌린지에 도전했다. 피드를 통해 드러나는 나의 필체도, 얼굴도, 목소리도 하나같이 감당하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4k급으로 마주하게 된 나의 민낯을 받아들이는 것도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한 과정이라며 나를 다독였다.


사실 대부분의 챌린지는 완주하지 못했다. 영어그림책 100권 읽기, 어린이영어연구회 테솔과정 그리고 에세이 글 쓰는 정도는 끝낼 수 있었다. 테솔의 경우 스승님 휘하에 선후배 동기님들과 여전히 인연을 이어가고 있으니 값진 시간이었다. 특히 에세이 쓰자고 모였던 사람들이 이제는 나크작이 되어 글빨을 발행하고 있으니 정말 성공한 챌린지다.


코로나의 위용이 유행하는 독감정도로 곤두박질치게 되면서 나는 인스타와 데면데면해졌다. 이런저런 공부계정이 자연스레 정리되고 본 계정도 비공개로 돌려놓으면서 현생이 바빠졌다. 물론 현생 또한 챌린지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이 챌린지들은 지금까지와는 목표와 성격이 달랐다. 우선 주체가 내가 아니다. 3년째 나는 1호를 데리고 내과를 방문한다. 비염이 심한 1호는 면역치료를 받고 있다. 처음 치료를 시작했을 때는 일주일에 한 번씩 병원을 방문해서 주사를 맞아야 했다. 그렇게 4주가 지나면 2주마다 한 번씩 병원을 찾아야 했다. 다행히 큰 부작용이 없는 편이어서 곧 월 1회 방문으로 스케줄이 조정되었다. 4주 텀으로 날짜를 맞추어서 주사를 맞아야 했고, 매일 같은 시간에 알레르기 약을 복용해야 했다. 1호에게 비염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챌린지는 아마도 이번 달로 종료될 것이다. 만 3년을 꼬박 나와 1호는 비염치료 챌린지를 완주했다.

마지막 치료를 받기 위해 1호와 병원을 방문하던 날은 아침부터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매달 만나는 익숙한 얼굴들에 일일이 인사를 하고 있는데 한 간호사가 왜 6월에는 오지 않았냐고 물어왔다.


- 어머니, 무슨 일 있었어요? 안 오셔서 전화 한 번 드린다는 게 깜빡했어요.


나는 6월에 병원에 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으레 그랬듯이 6월 셋째 주에도 방문했으니까 7월 셋째 주에 병원을 찾았을 뿐이다.


- 아.. 깜빡하셨구나. 매 달 꼬박꼬박 오셨는데 안 오시길래 궁금했는데... 너무 오랜만에 주사를 맞는 거라서 오늘은 약물 양을 좀 조절할게요. 혹시 문제 있으면 다시 내원하시고, 피검사하고 가세요. 그리고 이번 치료가 만 3년 차라서 피검사 결과 나오면 원장님과 다시 상담하셔야 하니까, 어머님 편하신 날 방문하시면 되세요.


지난 3년은 결코 쉽지 않았다. 이 병원은 8시 50분부터 진료가 가능한데 8시 20분부터 접수를 받는 곳이며, 예약은 안 된다. 오후 6시에 진료마감이지만, 보통 4시면 접수마감이 돼버리는 아주 바쁜 곳이다. 도시에서 가장 차 막히는 걸로 일등인 사거리에 위치한 병원은 오고 가는 데만도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2학년에서 5학년이 된 1호도 점점 바빠지면서 병원 방문은 밀리고 밀려 결국 토요일 오전으로 고정되었다. 곧 이 챌린지가 끝날 것이라 더욱 신경을 쓰던 스케줄이었다. 하지만 6월을 건너뛰었다는 것에 왠지 마음이 상했다.


다른 간호사가 1호를 주사실로 불렀다. 아이는 주사실에서 주사를 맞고 작은 밴드를 붙이고 밖으로 나온다. 그러면 나는 "괜찮니?" 하고 물어보고 계산을 끝낸 후 아이와 함께 병원을 벗어난다. 매달 하던 일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마지막이다. 드디어 끝냈다는 마음보다 6월을 건너뛰었다는 것이 자꾸 내 마음을 괴롭혔다. 아무리 곱씹어 보아도 나는 6월에 뭘 하며 지냈는지가 떠오르지 않았다. 월화수목금은 언제나처럼 바쁜 하루를 살았을 것이다. 6월 일정을 확인해 보고 싶어도 방법이 없다. 나는 일기를 쓰지 않는다. sns에 일상을 남기지도 않는다. 최근에는 사진도 찍지 않아서 갤러리를 확인해도 답이 없다. 카드 명세서를 보면 기억이 돌아올까 싶었는데 (나는 현금을 쓰지 않는다_TMI) 카카오페이 이체 내역과 카드 2개의 이용 내역서를 보려니 막상 귀찮아졌다. 상호명이 다른 경우도 허다하다. 쿠팡의 구매목록을 살펴볼까? 네이버 쇼핑이력을 뒤져볼까?



2025년 6월에는 무려 4번의 토요일이 있었고, 나는 세 번째 토요일에 아마도 병원을 방문했어야 했다. 현충일 연휴가 있던 첫 번째 토요일은 가족 모두가 각자 바쁘게 보냈던 게 기억났다. 두 번째 토요일은? 세 번째 토요일은? 그리고 네 번째 토요일은?


자동차의 와이퍼가 쉬지 않고 움직였다. 때 아닌 폭우에 곳곳에서 물난리가 났던 참이다. 광주와 산청등에서 물난리가 제대로 나서 각종 영상이 돌았다. 도심이 물에 잠긴 채 스타벅스 2층에서 사람들이 고립돼있다거나, 한 시골마을이 그대로 물에 잠겼다거나, 경북 어디에서는 목장의 소들이 떠내려갔다거나. 맨홀에 빠져서 죽을 뻔한 노인을 구한 시민들의 기개 넘치는 이야기까지. 휴대폰에 안전문자가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지금의 이 난리를 나는 앞으로도 잊지 않을 것 같다. 어쩌면 그때부터 기후변화가 시작이었다며 과거를 회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의 지나버린 6월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일요일이 되었다. 비구름이 걷히고 햇빛이 쨍하고, 기온이 33도까지 올랐다. 습한 날씨에 에어컨을 틀어야 할지, 아이들과 외출을 해야 할지 고민하던 찰나에 지인에게 연락이 왔다. 물놀이장에 평상을 잡았는데 함께 놀기로 한 사람들이 안 와서 자리가 남으니 와서 놀자는 제안이었다. 1호는 집에서 쉬고 싶다고 했고 남편은 출근하고 없었다. 2호와 급하게 짐을 꾸려서 물놀이장으로 향했다. 지인은 4시까지만 놀고 5시에는 가족식사가 있어서 가야 한다고 했다. 아이의 생일은 21일이고 친정아버지의 생신이 23일이라 겸사겸사 같이 생일파티를 한다고 했다.


- 아이 생일은 21일인데 벌써 생일파티를 해요?

- 오늘 20일이야.


나는 7월도 벌써 20일이나 지나버린 것도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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