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유세와 수어 통역

by 운틴

12.3 계엄 선포로 대선을 다시 치르게 되었다. 나는 오래 전부터 지지하던 후보가 있어 그 후보의 유세에 두 번 나가서 가까운 거리에서 행사를 지켜보았다. 내 글이 선거에 영향을 미칠 리는 없으리라 생각해 선거 유세를 지켜본 후기를 기록하여 역사의 현장을 남겨보려고 한다.


광화문에서 선거 유세 출정식을 할 때 가보니 경비가 삼엄하였다. 마침 유세장 옆에 은행이 있어 평소 회사일로 은행에 가기가 어려워 일을 보려고 은행에 들어가는데 경찰이 뭐하러 가는지 꼬치꼬치 캐물어 무서웠다. 은행이 2층에 있어 누가 나쁜 마음으로 해코지를 하려면 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오십 미터 쯤 떨어져 있는 연단에 올라온 후보자를 보니 긴장이 되었다. 후보자 옆에 수어통역사가 나란히 서서 후보자와 선거운동을 하는 국회의원들의 말을 수어로 통역하고 있었다. 연단에 선 사람들을 카메라가 잡아서 확대하여 뒤에 있는 스크린에 띄워놓았는데 수어통역사도 같이 화면에 들어 있어서 수어통역 내용을 같이 볼 수 있었다.

몇 년 전 코로나가 창궐할 때 나는 가끔 지역의 코로나 소식이 궁금하여 경기도청 홈페이지로 들어가 도지사가 브리핑하는 걸 찾아본 적이 있다. 그때 경기도지사였던 후보를 화면으로 보기만 해도 좋았는데 어느 날은 도지사 옆에서 통역하는 수어통역사가 카메라 화면 밖으로 밀려났는지 영상에서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이런 건 그냥 넘어가면 안되겠다는 마음에 경기도청을 상대로 민원을 냈다. 나는 청각장애인인데 코로나 브리핑 영상을 보니 수어통역사가 카메라 프레임에 도지사와 같이 잡히지 않아 수어통역 내용을 볼 수가 없다, 청각장애인은 수어통역으로 브리핑 내용을 이해하니 꼭 수어통역사가 보이게 촬영을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놀랍게도 내 민원은 처리되어 바로 다음날 영상에서 수어통역사가 도지사 옆에 바짝 붙어 서있는 걸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오늘 선거 전날 하는 유세를 보러 가니 무대에 수어통역사가 보이지 않았다. 너무 멀어서 잘 안보이나 싶어 고개를 빼고 아무리 찾아봐도 없었다. 아마 무대 아래 있었던 모양인데 경호 때문에 무대 위에 서지 못한 것 같았다. 나중에 농아인협회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에 가보니 처음에 무대에 올라서 있다가 내려왔다고 한다. 멀리서도 볼 수 있게 카메라로 촬영해서 띄우는 화면에 사회자와 함께 수어통역사가 꼭 보여야 한다. 왜냐하면 농인 중에는 사회자가 아무리 큰 소리를 내던지간에 수어통역이 없으면 내용을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내 경우는 스피커 볼륨이 너무 커서 귀가 아플 정도였다). 무대 앞으로 달려가 수어통역사를 무대 위에, 사회자 옆에 세워달라고 요구하고 싶었지만 사람이 빽빽해 앞으로 나갈 수도 없었다. 이번 같은 경우는 후보자의 안전이 우선이라 이해할 수 있다. 앞으로 새로 대통령이 되는 분은 전담 수어통역사를 두어 국민을 상대로 브리핑을 하거나 연설을 할 때 꼭 영상에 두 사람이 보일 수 있게 했으면 좋겠다.


이제 와서 돌아보니 12월 3일 계엄 선포 때도 그랬다. 나는 일찍 잠들어 방송을 못 봤지만 유감스럽게도 농인들은 대통령의 계엄 선포를 직접 접하지 못하고 뉴스나 지인을 통해 전해들어야 했다. 대통령이 수어통역사를 대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똑같이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세금을 내며 이 땅에 살아가고 있지만 국민 대접을 못 받은 것이다. 새 역사를 이끌어갈 새 대통령은 이전과는 달리 매사에 국민 중에 농인들이 있다는 걸 염두에 두고 국정에 임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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