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울인 몸들: 서로의 취약함이 만날 때

by 운틴


<기울인 몸들: 서로의 취약함이 만날 때> 전시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하고 있다. 원래 다른 전시를 보러 갔는데 줄이 백 미터나 될 정도로 길어서 포기하고 이 전시를 보았다. 장애에 대한 행사나 전시를 보면 마치 깊은 우물에 있는 물을 길어 올린 것처럼 글을 쓸 소재가 떠오른다. 그래서 장애와 관련된 전시회는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마침 큐레이터가 작품 설명을 해주는 시간과 맞아 해설을 들으며 전시를 보니 이해가 잘 되었다. 전시장에 서 있는 사람들 중에 가까운 이가 장애인이거나 본인이 장애가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궁금하다.


첫번째로 본 작품은 미국 작가가 수어 표현을 그림으로 그려놓은 건데 이걸 보니 수어에 대해 쓰고 싶은 내용이 떠올랐다. 수어는 수형, 수위, 수동, 수향에 따라 뜻이 달라진다. 작품에서 검지를 쭉 펴서 머리에 댔을 때는 센트(cent)를 의미하고 턱에 댔을 땐 나이(age)를, 손목에 댔을 땐 시간(time)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렇게 수어는 손의 모양에 따라, 그리고 어느 위치에 있는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에 따라 의미가 다르다. 예를 들면 ‘들어오다’는 의미의 수어를 방향만 반대로 하면 ‘나가다’라는 뜻이 되는 것이다.


전시물 중에 반투명한 천을 천장에서부터 늘어뜨려놓고 타원기둥을 높이가 다르게 설치한 작품이 있었다. 그냥 보면 무슨 의미인지 모르는데 설명을 들어보니 농인은 둥그렇게 원을 그리며 서있는 걸 좋아한다고 했다. 그렇다. 둥그렇게 서면 모두의 얼굴을 동시에 볼 수 있어 누구와도 이야기할 수 있다. 뒤나 옆에서 하는 말을 들을 수 없기 때문에 정면에서 대화해야 하는데 누가 뒤에서 불쑥 나타나면 위협을 느낀다. 전시장에서는 뒤에서 누군가 나타나더라도 미리 알아차리기 좋게 반투명 커텐을 쳐놓아서 마음에 들었다. 이곳엔 각진 거울도 세워져 있었는데 뒤에 누가 있는지 알기 위해서는 거울이 있는 게 제일 좋다. 그래서 나도 사무실에 내 뒤를 볼 수 있게 거울을 앞에 놓았는데 아마 다른 직원들은 내가 얼굴을 들여다보려고 놓은 거울이라고 생각할 거다.


이번 전시엔 작가이며 변호사, 무용가인 김원영이 다른 비장애인 여자와 ‘보철’이라는 주제로 무용 비슷한 퍼포먼스를 하는 영상이 있었다. 최근에 독일에서 현대 무용 이론을 공부 중인 후배가 연구하는 주제가 장애인의 몸으로 하는 무용이라는 얘기를 들은 이후라 관심있게 보았다.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해 보철물(의수나 의족 같은) 역할을 하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이는 영상이었는데 전시실 밖에 나오니 김원영 작가가 있었다. 밖에서 진짜 공연을 하고 있었는데 영상만 봐서 아쉬웠다. 전에는 하체가 불편한 사람이 무용하는 걸 보면 마음이 불편했는데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다. 아주 빠르게 움직이며 서로의 몸에 보조기구처럼 움직이는 게 놀라웠다.


옆 전시실은 농인 건축가가 설치한 입구를 다른 색으로 칠해놓았는데 보통 농인들은 옆 사람과 대화할 때 주의가 분산되기 때문에 현재 어디에 있는지 바로 알아차리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런 경우를 위해 입구를 다른 색으로 칠해놓으면 주의를 끌 수 있다. 나도 길에서 농인친구를 만나면 반가워 수어를 하려고 서로 얼굴을 쳐다보느라 전방 주시를 못할 때가 있는데 이렇게 색이 다른 건물이 나타나면 어디쯤 왔는지 바로 알 수 있을 것 같다.


전시를 다 보고 다른 전시장으로 이동해서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입구가 플라스틱 차단막으로 닫혀 있었다. 안내 직원이 와서 열어주었는데 갑자기 차단막이 닫혀 허벅지를 세게 부딪혔다. 너무 아파 화가 났는데 조금 전 전시실과 다르게 전시 환경이 덜 세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앞의 전시실은 시각장애인도 안심하고 다닐 수 있게 바닥에 볼록한 라인이 설치돼 있고 각진 돌 기둥 주위를 둥근 원형 플라스틱으로 가림막을 쳐놓은 데다가 점자 안내문까지 있을 정도로 관객을 배려해놓았기 때문이다.


한때 나는 미국의 팝 음악을 전혀 몰랐는데 친구 소개로 여러 곡들을 듣게 되었다. 처음에 뭐 이런 게 있나 싶던 음악도 자꾸 듣고 익숙해지니 좋아졌다. 일부러 장애에 대한 전시를 찾아다니는 건 아니지만 이런 전시를 자주 접하면 익숙해지고 익숙해지면 좋아지는 것 같다. 두 달 전에 광주에 갔을 때도 비슷한 전시를 본 적이 있는데 그때도 전시를 보고 나니 내 세계가 확장된 느낌이 들었다. 그동안 별 생각 없이 돌아다녔는데 오늘은 특별한 날인지 내가 미술관에 들어갈 때와는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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