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장애인과 보조공학기기

by 운틴

취업하여 일하는 장애인은 장애인 고용공단에서 여러 지원을 받을 수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보조공학기기 지원이다. 지금까지 쓰고 있는 기기는 쓴 지 3년이 지나 신제품으로 바꾸려고 알아보고 있는 중이다. 내가 쓰고 있는 보조공학기기는 스마트 패드에 깔려 있는 앱으로 이 앱 때문에 가격이 비싸다. 개인 돈으로 구매하기에는 지나치게 비싼데 장애인 고용공단에서 구매를 지원해준다. 이 기기는 음성을 문자로 바꾸어 주는 기능을 하는 것으로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듣지 못해도 문장으로 바로 읽을 수 있어 소통을 가능하게 해준다.


사용 초기부터 정확도가 조금 떨어지긴 했지만 아예 없는 것보다는 나아서 문자 통역이 제대로 안된 내용은 눈치코치로 이해하고 넘어간다. 핸드폰의 메모장에도 비슷한 기능이 있는데 오래된 핸드폰을 쓰면 통역이 잘 안되고 버퍼링이 생긴다. 문자통역이 잘 되는 매체는 단연 유튜브다. 어떤 방송이든지 하루만 지나면 자막이 달린다. 정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유튜브 덕분에 청각장애인의 삶의 질은 월등하게 좋아졌다. 청각장애인 뿐 아니라 이어폰을 계속 끼고 있기엔 귀가 아픈 비장애인도 자막만 읽고 싶을 때 잘 이용하고 있을 거다. 넷플릭스 영화는 한국 영화를 볼 때 청각장애인이 아닌 분들도 자막을 같이 보는 경우가 많은 걸로 안다.


새로 나온 보조공학기기는 이름 끝에 AI가 붙어 있어서 완벽하게 문자통역이 될 거라는 기대를 하게 된다. 강의를 듣거나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할 때 이 기기만 있으면 무슨 말이든 다 알아들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갖고 새로운 기기를 신청하려고 한다.


며칠 전 대통령이 바뀌면서 대통령실 대변인도 바뀌었는데 새로운 대변인의 말이 너무 빠르다고 기자들이 항의하는 영상을 유튜브에서 보았다. 기자들은 앞에서 하는 말을 노트북에 받아쓰기 바쁜 사람들이란 걸 뉴스에서 보아왔던 터라 잘 이해가 되었다. 그런데 요즘 같은 시대에 왜 말을 받아쓰고 있는지 모르겠다. 받아쓰기를 해주는 좋은 기기들이 널려 있는데 말이다. 거기다 문장으로 받아쓴 말들을 저장까지 해준다. 이걸 모르는 건 아닐텐데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기자들이 받아쓰기만 그만 두더라도 좋은 질문을 할 수 있는 에너지가 생겨나지 않을까 싶다. 앞으로는 기자실에 카메라를 더 많이 설치하여 질문하는 기자들의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준다고 하는데 더 이상은 받아쓰는 기자들을 보고 싶지 않다. 대변인은 자기가 할 말을 미리 프린트 해서 기자들에게 나눠주면 좋겠다.


이렇게 기술이 발달하여 청각장애인들이 살기 좋게 말도 실시간으로 문장으로 번역되는 세상이 되었다. 역시 장애인이 살기에 좋은 세상은 비장애인에게도 좋다.


신청할 수 있는 보조공학기기 중에는 스마트 안경 번역기도 있었는데 가격도 너무 비싸고 투박해보이는데다가 이미 내가 쓰고 있는 안경은 어쩌고 그걸 써야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어서 후보군에서 제외시켰다. 상용화 되어 가격이 싸지고 슬림한 모델이 나오면 써봐야겠다. 다른 사람을 앞에 앉혀 놓고 자막을 보느라 안경의 렌즈를 보면서 눈동자를 좌우로 굴리고 있는 내 모습을 상상만 해도 웃음이 나온다.


이전에 쓰던 보조공학기기의 유효기간이 2년인 걸 모르고 3년이 넘은 이제야 다른 기기를 신청하려고 보니 지금 다니는 회사에 재직할 기간이 2년이 채 남지 않았다. 그래서 회사에서 신청해주는 혜택을 받을 수 없고 개인적으로 신청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신청하면 퇴직 후 다시 취업해서 2년을 채워야 한다고 한다. 정부에서 장애로 인한 어려움을 덜어내고 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제도가 있어서 다행이다. 그렇지 않으면 듣지 못해 일할 수 없다고 미리 절망하여 일할 용기를 내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기울인 몸들: 서로의 취약함이 만날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