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장애와 상관없이 누구나 보는 수어영화

by 운틴

평소 극장에 자주 영화를 보러 가는 편인데 영화를 고를 때 한국영화인지 아닌지가 일차적인 기준이 된다. 한국영화 보는 것을 망설이는 이유는 난청으로 대사를 잘 알아들을 수 있을지 확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불안해하면서도 꼭 봐야겠다고 마음 먹으면 알아듣지 못할 것을 감수하고 본다. 누군가와 같이 보게 되면 영화가 끝난 후 못알아 들은 내용을 동행인에게 확인할 때가 많다.

한때 ‘가치봄 영화’를 보러 다닌 적이 있다. 이 영화는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이 같이 보는 한국영화였는데 시각장애인을 위한 화면 장면 해설과 자막이 나온다. 나같이 조금 듣는 청각장애인의 입장에서는 해설자의 음성이 영화를 보는데 방해가 되어 산만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해설 때문에 영화 음악이나 배경 음악의 볼륨이 줄어들어 몰입을 어렵게 하기도 했다. 그래서 청각장애인과 시각장애인이 같이 영화를 보는 건 불합리하다고 생각했다. 두 장애의 공통점은 장애가 있다는 걸 빼면 없기 때문에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이 별로 없다. 그래서 가치봄 영화를 볼 때마다 대사를 못 알아들어도 일반 극장에서 보는 게 낫겠다고 생각해 다시는 오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다른 청각장애인들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최근에 수어영화 상영이 시작되었다.

이번 주에 시작된 수어영화는 청각장애인뿐 아니라 청인도 볼 수 있다. 일반 상영과 다른 점은 화면 한편에 세로로 수어통역사의 영상이 있다는 점이다. 자막이 있는데 왜 수어로 통역하느냐 하면 한글 문자언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서다. 선천적 난청으로 어릴 때부터 수어를 사용한 사람 중에는 문장으로 써있는 내용을 보아도 이해하기 어려워 수어 번역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 수어영화에는 음성도 나오고, 자막도 있고, 수어도 있다. 그야말로 모든 사람을 위한 영화다.


엊그제 본 수어영화는 <소방관>이었는데 지인 중에 최근에 소방관으로 임용된 분이 계셔서 그분이 어떤 일을 하는지 영화를 보며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최근에 방화 사건이나 산불 등의 화재로 참사가 일어나거나 일어날 뻔한 적이 있어 그런 상황에서 소방관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가슴을 졸이며 보았다.


우측 화면의 수어통역은 두 사람이 위 아래로 나란히, 대사에 맞춰서 하는데 등장인물이 여럿이어도 모두 각각 다른 통역사를 쓸 수는 없어 다른 사람의 말이라는 걸 알아차릴 수 있게 두 사람으로만 구분해놓았다. 지금은 시범 상영 중인지 장애, 비장애 가릴 것 없이 아무나 와서 볼 수 있게 무료로 상영하고 있다. 7월에 상영하는 수어영화 <로비>는 전국 곳곳에 있는 영화관에서 볼 수 있다(1회 상영). 자세한 정보는 한국농아인협회 홈페이지 가치봄/수어영화에서 찾아보시면 된다.(https://www.deafkorea.com/sub_movie/guide.php)


수어영화가 진짜 극장에서 상영되는 날이 오다니 기적 같다. 정신없이 바쁘고 더위에 지친 나날들이지만 수어영화로 청각장애인들이 문화 생활을 할 기회가 많아져서 너무 기쁘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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