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서울>과 호수의 청각장애

by 운틴

드라마 <미지의 서울>을 재미있게 보고 있다. 드라마 볼 시간을 내기 어려울 정도로 바쁘지만 식당에 가도 <미지의 서울>이 나오고 뉴스에서도 연일 화제라 미지와 미래가 뭐길래 저렇게 난리들인가 궁금했다. 쌍둥이가 자리를 바꿔가며 상대방의 역할을 대신한다는 주제는 워낙 유명해서 식상하지만 드라마는 재미있다. 역시 박보영이다.


미지의 남자친구는 청각장애인이다. 아버지와 차를 같이 타고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했고 그 후유증으로 난청이 되어 한쪽 귀는 아예 안들린다. 내가 아는 지인 한 분도 오십대쯤 되었을 때 교통사고가 나서 난청이 되었는데 호수처럼 이명이 심했다. 잘 들어도 이명이 있으면 정신이 산만해지고 다른 사람의 말을 알아듣기가 힘든데 호수도 그런 것 같다. 안타까웠던 건 돌발성 난청으로 진행되어 그나마 들리던 귀까지 안들리기 시작한 장면에서부터다.


누구라도 그랬을텐데 호수는 전화를 받다가 상대방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자 크게 당황한다. 평소에 들리던 음식점 출입문의 풍경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지만 소리가 없다. 보통은 핸드폰이 고장났는지 끊고 확인한 후에 다시 걸어보거나 했을텐데 귀가 안들리는 날이 올 거라고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바로 귀가 먹통이 된 걸 알아차린다. 곧바로 미지가 식당에서 나와, 들어오지 않고 뭐하냐며 물었지만 미지의 목소리마저 들리지 않자 자신이 할 말만 하고 케잌을 전해주고 가버린다.


나처럼 천천히 난청이 진행될 경우에는 적응할 시간이 있어서 난청이 얼마나 진행되었는지 바로 알아차리기 어려운데 어느날 갑자기 들리지 않으면 많이 당황스러울 것 같다. 조금 전까지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나눴던 가족이나 친구가 갑자기 낯설어진다. 여럿이 같이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눌 때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잘 알아듣는데 나만 못 알아듣는다면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다시는 그 사람들을 만나고 싶지 않고 혼자 있고 싶다.


청각장애인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 중 하나는 명절 풍경이다. 명절에 친척들을 만나고 싶지 않고 어쩔 수 없이 만나게 되더라도 방에 들어가 혼자 있다가 온다고 한다. 그래도 일 대 일 대화는 가능하다. 여럿이 동시에 대화를 나눌 때 같이 있는 청각장애인은 지금 누가 말하고 있는지 알아차리기 어렵다. 이해심 많고 호수를 사랑하는 미지 같은 친구가 있으면 지금 누가 말하고 있고 대화의 내용이 뭔지 옆에서 알려줄 수 있다.


드라마에서 다행스러운 점은 청각장애인이 됐어도 호수는 변호사라는 점이다. 귀가 안들린다고 변호사 자격을 박탈하지는 않는다. 우리나라에는 시각장애인 변호사는 있지만 청각장애인 변호사는 없다. 청각장애인 변호사라면 누구보다 청각장애인의 입장을 더 잘 이해하고 잘 변호해줄 수 있을 것 같다. 호수 같은 사람이 있다면 대한민국 1호 청각장애인 변호사가 될 것이다. 호수는 바뀐 상황에 금세 적응해서 수어를 배웠고 청각장애인 의뢰인과 수어로 대화를 나눈다.


법정에서 피의자나 피고인이 청각장애인일 때 재판 전에 수어통역을 신청하면 서비스를 무료로 받을 수 있다. 그렇다면 변호사가 청각장애인일 경우를 상상해보자. 호수 같은 상황이라면 언어장애인이 아니기 때문에 법정에서 재판할 때 자유롭게 말할 수 있다. 검사나 재판관 혹은 증인들이 하는 말을 들어야 할 때는 다른 통역사가 듣고 변호사 호수에게 문자로 번역해주면 된다. 장애인고용공단에서는 장애인이 직장에서 일하는 걸 도와주는 근로지원인을 지원하고 있다. 청각장애인 변호사의 재판업무를 보조해주고 못듣는 내용을 알려주는 근로지원인이 있으면 업무의 어려움을 덜 수 있다.


드라마 마지막회에 잠깐 비친 호수의 오른쪽 귀에는 보청기가 꽂혀 있다. 돌발성 난청이어도 다행히 잔존 청력이 있어 보청기로 충분히 들을 수 있는 것 같다. 근로지원인 같은 타인의 도움이 필요없고 이전과 달리 수어까지 할 수 있어서 농인들이 직접 사건을 의뢰할 수 있는 변호사다. 대부분의 농인들은 수어통역사가 없으면 변호사에게 사건을 의뢰하기도 어렵다.


다른 사람이 들으면 안되는 대화를 할 때 호수와 미지가 수어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감동이었다. 미지까지 호수를 따라 수어를 배울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정말 아름다운 커플이다.


별 생각없이 보기 시작한 드라마에서 호수가 청력을 잃는 걸 보고 내가 브런치에 청각장애에 관한 글을 쓰는 이유를 다시 떠올렸다.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 난청이라는 반갑지 않은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내가 쓴 글이 도움이 되길 바란다. 난청인이 된다는 게 죽을만큼 힘든 일은 아니다. 이미 알고 지내던 사람들과 소통이 되지 않으면 소통이 될만한 다른 사람을 찾아나서면 된다. 일하기 어려우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보자. 아마 잘 들을 수 있던 시절만큼 편하지 않을 수 있지만 모두 나쁘기만한 건 아니다. 이 글이 소리가 들리지 않아 고통스러워하는 분들께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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