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언제 보청기를 끼기로 결심하는가

by 운틴

내가 참여하는 단체에 나처럼 한쪽 귀는 아예 안들리고 남은 한쪽 귀의 청력으로 사는 분이 계시다. 잔존 청력도 그리 좋지 않아 보청기를 끼어야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것도 나와 똑같다. 심지어 보청기 없이 지내다가 보청기를 끼기 시작한 후 사람들과 어울리고 직장 생활을 한 것마저 비슷해서 신기했다.


그 분을 A라고 칭하자. A는 당연히 인문 사회 계열을 전공하리라고 믿었던 아들이 고3이 되자 미술을 전공하겠다고 해서 깜짝 놀란다. 자식의 의견을 존중하는 분이라 원한다면 해보라고 지지해주었고 아들은 재수를 거쳐 원하는 대학에 진학했다. A의 말을 듣다보니 아들에게 조금 미안해하는 눈치가 보여 아들이 고3이 되기 전에 충분한 대화를 나누었는지 여쭤보았다. A는 자신이 잘 듣지 못해 자녀들과 대화를 많이 나누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A는 일상에서 비장애인처럼 잘 듣고 대화하기 때문에 그녀가 청각장애인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서 어떤 계기로 보청기를 끼게 되었냐고 물어보았다. 보청기가 없을 때는 ‘원래 세상의 소리는 이 정도 밖에 들리지 않나보다’라고 생각하며 살다가 더 잘 듣고 싶다고 욕심을 낸 이유가 궁금했다. A는 딸의 결혼식을 앞두고 상견례를 해야 하는데 사돈이 하는 말을 못 알아듣고 실수할까봐 보청기를 사서 끼기 시작했다고 했다. 진작 그런 결단을 내렸으면 삶이 더 빨리 수월해졌을테지만 늦게라도 결심해서 다행이다. A의 말을 듣고 집에 돌아와 내 과거를 돌아보았다.


나도 A처럼 잘 안들리는 말은 그냥 원래 그려려니 하고 살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대학에 처음 들어갔을 때 사범대학에 합격하였음에도 중간고사를 보기 전에 그만 두고 나온 것이다. 무사히 졸업해서 교사가 되었다면 내 인생이 어떻게 풀렸을지 모르겠다. 청각장애 때문에 학교를 옮긴 건 아니었지만 재수를 하여 전공을 바꿨고 청중을 상대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구했다. 그때는 잘 들었지만 청력이 점점 나빠질 줄은 몰랐다. 무의식 중에 결정했는데 그때 진로를 바꾸지 않았으면 뒤늦게 후회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니 아찔하다.

젊을 때 다녔던 직장은 육아를 핑계로 퇴직했는데 진짜 속마음은 산꼭대기에 있는 집에서 사람들을 만나지 않으며 밖에 나오지 않고 사는 거였다.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렇게 살았는데 집에서 아이들과 지내고 교육과 관련된 소수의 사람만 상대할 수 있어서 마음이 편했다. 가끔 아이들 학교에 가서 회의를 참석해야 하면 고역이 따로 없었다. 회의가 빨리 끝나길 기다렸고 회의에 참석하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었다.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 계기는 보청기 덕분이었다. 장애가 없다고 생각했던 교회의 청년이 보청기를 끼고 있는 걸 보고 보청기 매장을 소개해 달라고 했다. 그동안 세상은 좋아져서 보청기 품질이 월등히 나아졌고 이전에 끼어본, 소리만 커서 머리를 아프게 했던 보청기와는 달랐다. 나도 소개 받은 매장에서 맞춘 보청기를 끼면 그 청년처럼 들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그래서 난청을 드러내지 않고 면접을 보고 일자리를 구했다. 하지만 보청기 성능이 좋아도 한계가 있었다. 직장의 책임자들은 내가 못 듣는다는 걸 알아차리고 나를 해고했다. 그 이후 보청기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내가 비장애인이 아니라는 현실을 인정하기로 했다. 그러자 상황이 반전되었다. 못 듣는 비장애인이 아니라 조금은 들을 수 있는 장애인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것이다.

나도 과거에 그랬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뜻밖에 사람들은 보청기에 대한 거부감이 심하다. 보청기를 끼면 잘 들을 수 있다는 기대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보청기를 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에 대해 먼저 생각한다. 남이야 뭐라고 하건 잘 들리는 게 중요하다. 남의 시선보다 더 가치있는 게 있다는 걸 알게 되면 그만큼 더 자유로워진다. 내 삶이 그렇게 업그레이드된 걸 보면 듣지 못하는 게 꼭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난청이어도 보청기를 착용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가격이 비싸서 사겠다고 결정하기도 쉽지 않다. 난청이 서서히 진행된 다른 사람들은 어떤 일을 계기로 보청기를 끼기로 마음먹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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