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인도 실시간 119 화재신고 가능한 세상

by 운틴

며칠 전 내가 가입해 있는 밴드에 '농인도 실시간 119 영상신고 가능'이라는 제목의 글이 떴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고 보니 그동안은 불이 났을 때 농인이 119로 신고하면 접수자가 수어를 통역해주는 손말이음센터 직원에게 연락하여 3자 대화를 통해 화재신고를 접수할 수 있었다. 불이 번지고 있는 급한 상황에 화재를 접수하는 것도 바쁜데 소통이 안돼서 통역사를 부르는 시간이 필요하면 그 사이에 화재가 더 크게 번질 수 있다. 이제는 농인도 바로 119로 신고가 가능하다고 하니 진작 시행됐어야 하는 일인데 늦더라도 가능해져서 다행이라고 본다.


화재를 당한 경험이 없어 119에 전화해본 적이 없는데 보청기의 도움으로 소리를 조금 듣는 나도 자고 있을 때나 보청기 배터리가 떨어졌을 때는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한다. 그럴 때 불이 나면 당황하여 허둥대기 마련일텐데 불이 났을 때 제일 먼저 할 일은 대피하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화재 신고를 해야 하는데 듣지 못하는 사람에게 119 신고를 해야 하는 상황은 늘 갖고 다니던 휴대폰을 잃어버린 때처럼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망연자실한 상태나 다름없다.


그래서 출장을 가서 혼자 숙소에 묵거나 사람이 없는 곳을 걸을 때면 만약 화재가 난다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빨리 곤란한 상황에 처할 거라는 상상을 하게 된다. 화재가 났을 때 뿐만 아니라 지하철의 개찰구에서 나와 잠깐 화장실에 가거나 하는 등의 이유로 임시 통과할 때도 난처하긴 마찬가지다. 그곳엔 마이크가 설치되어 있어 승차권을 찍지 않고 나가는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데 듣지 못하는 사람에겐 통과할 수 없는 거대한 장벽이다. 그래서 보통 그런 곳은 가까이 가지 않거나 동행인이 청인이면 대신 말해달라고 부탁한다.

생각해보니 우리 사회의 곳곳에는 마이크라는 장벽이 있다. 사람이 보이면 글로 써서 의사전달을 하거나 듣지 못해도 소통을 할 수 있는데 기계를 만나면 난처하다. 주차장의 인터폰을 지나갈 때, 방문한 곳의 아파트 인터폰 앞에 설 때 나는 될대로 되라는 심정이 되는 것이다. 그럴 땐 상대가 알아들을 때까지 내가 듣지 못한다는 것을 반복하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119 영상신고가 가능하다는 영상은 유튜브 <수어로 보는 대한민국 정부>에서 보았다. 수어를 사용하는 청각장애인들에게 정보를 알려주기 위해 정부에서 운영하는 이 채널은 2022년 3월에 처음 시작되었는데 3년이 지난 이제서야 처음 알게 되었다. '농인도 실시간 119 신고 가능'이라는 제목의 콘텐츠는 8월 8일까지 119명을 추첨하여 선물을 주는 이벤트를 시행하고 있으니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영상을 보고 행운을 거머쥐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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