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덕역에서 지하철 환승을 하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핸드폰을 들고 왔다 갔다 하는 외국인이 보였다. 환승 노선이 많이 있는 곳이라 갈아타는 곳을 확신할 수 없는지 고개를 갸웃거리고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지하철을 기다리며 맨 뒷줄에 서 있었는데 그가 눈에 띄어 신경이 쓰였다. 영어야 아는 만큼만 하면 될 테고 정 안되면 써서 보여주거나 몸짓으로 소통하면 되기 때문에 두렵지 않았다. 게다가 그는 다리가 조금 불편해 보여 내가 탈 지하철이 들어오고 있을 때 도와주기로 마음먹고 그에게 다가갔다. “Where are you going?" 하니 ”six line 어쩌고“라고 한다. 그가 내미는 핸드폰을 보니 목적지가 삼각지역이라고 쓰여 있는 게 보여 바로 앞에 들어오는 지하철을 타자고 했다.
같이 지하철을 타서 마주 보고 앉았는데 그는 마음이 놓였는지 핸드폰을 가방에 넣었다. 두 정거장을 지나 삼각지역이 가까워져 오자 여기서 내리면 된다고 손으로 신호를 보냈고, 그는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체로 도움을 청하는 다른 사람을 잘 도와주는 편이다. 걸음걸이가 불편해 보이거나 흰 지팡이를 짚고 있으면 사람들은 그 사람이 잘 가는지 아닌지 관심 있게 지켜본다. 그런데 청각장애인은 겉으로는 장애가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쉽게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기 어렵다. 아주 적극적으로 내 귀가 안 들린다는 걸 표현해야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요즘 농인들을 자주 만나다 보니 이분들은 일상에서 얼마나 답답할까 하는 생각에 어떻게 생활하는지 궁금해졌다. 편의점에서 1+1으로 파는 상품을 살 때 다른 상품으로 대체해도 되는지 물어봐야 하는 경우라면 아예 묻기를 포기하고 그냥 똑같은 걸 고를 것 같다. 얼마 전 오랜만에 만난 농인 친구와 마트를 지나가다가 바나나를 싸게 파는 게 보여 들어갔다. 청인 친구 같으면 “너도 바나나 필요하면 가져와”라고 말할 것을 그냥 수어로 짧게 “바나나 가져와”라고 했더니 바나나를 가져와서 자기가 내 것까지 계산한다고 우겼다. 전에 내가 커피를 사준 적이 있어 내게 바나나를 사주고 싶었나 보다. 그냥 필요 없다고 안 산다고 하면 될 것을 그 내용을 수어로 내가 이해하지 못할까 봐 귀찮아서 내 것까지 계산했는지도 모른다.
한국어도 사람마다 구사하는 정도가 조금씩 다른 것처럼 수어도 그렇다. 나처럼 단어만 겨우 아는 사람과 대화하려면 수어가 아주 유창한 사람도 소통이 잘 될 리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농인이 청인과 대화하려면 거의 외국인과 대화하는 정도의 단계를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쩌면 그래서 내가 길에서 외국인을 만나도 낯설지 않은가 보다. 아무리 말이 안 통해도 농인과 대화하는 것처럼 하면 된다고 생각할 뿐이다. 일본처럼 가방에 농인 표지를 달고 다니면서 상대가 알아서 종이에 할 말을 써주면 어떨까 싶지만 때로 위험할 수도 있어서 문제다. 듣지 못하는 걸 약점으로 잡고 공격하는 나쁜 사람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구구절절 이런 이야기를 쓰는 이유는 길에서 말을 걸었을 때 바로 반응하지 않는 사람을 만나면 그가 농인일 수도 있다는 걸 알리고 싶어서다.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소리가 나도 듣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모두가 염두에 둔다면 농인들이 살기에 훨씬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 평생 그런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도 있겠지만 2023년말 기준으로 등록된 청각장애인은 433,000명이나 되니 오늘 아침 당신 곁을 지나친 사람이 청각장애인일 수도 있다.